▲『15조원의 육체산업 - AV시장을 해부하다』 이노우에 세쓰코 지음/임경화 옮김 ©
책 제목만 보고 필요할때마다 은밀히 꺼내서 즐기던 그때 그 장면과 배우를 떠올리지 않길 바란다. 일본의 프리랜서 작가인 이노우에 쎄쓰코의 <15조원의 육체산업 - AV시장을 해부하다>는 일본 AV의 경제적, 사회적 측면을 해부한 르뽀집이다.

이 책의 가치는 AV를 사회적 논의의 장으로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사실 AV는 개인 성적욕망을 해결하기 위한 보기드문 합법적인 수단으로써 대중, 특히 남성들에게 암묵적이면서 맹렬한 지지를 받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여성들은 AV에 대해 “자본으로 여성의 성을 예속시키는 매체”라고 반발하며, AV를 남성만의 사적인 전유물로 여겼다.

하지만 필자 이노우에는 “AV산업은 성인비디오를 대여하거나 구입하는 사람들(수요자)이 있기 때문에 성립되는 점을 감안하면, ‘성인 비디오는 여성 멸시 그 자체!’라고 화만 낸다고 문제는 아닌 것 같다”라고 전제한다. 이미 일본은 AV산업 시장규모가 1조엔으로 평가돼 남성 뿐만이 아니라 대중 전체에 미치는 파급력이 만만치 않다. 또한 AV가 단지 남성들만의 것이 아니라 여성들 또한 공개적으로 성인 비디오를 매매하는 현상이 일상인 시대에 AV는 사회 전체적인 구조 안에서 바라보고 해석해야 할 것을 필자는 주문한다.

이 책은 일본 AV산업의 확대과정을 미디어 발전과정에 대입해 풀어내고 있다. 전체적인 목차나 구성은 한 편의 논문 같은 틀이지만 막상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딱딱한 느낌의 자료도 필자 특유의 유려한 문장과 결합해 독자들이 읽기 쉽도록 쓰여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여성의 입장에서 쓰여진 결과로 AV산업의 규모분석 보다는 실제 AV시장에 몸담고 있는 여성들에 대한 ‘배려’가 눈에 띈다. 목차에서 한 파트씩 차지하는 ‘성폭행과 AV여배우’, ‘성폭력과 AV'는 AV시장안에서 활동하는 여성에 대한 착취가 얼마나 심각한지 생생히 전달하고 있다. 책은 AV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당하는 성적 착취에 대한 인터뷰 자료를 공개하는 것과 함께 왜 여성들이 ’성 상품‘으로서 취급당할 수밖에 없는지 사회적·경제적 구조를 파헤치는데 집중한다. 또한 AV를 통해 연기로 보여지는 장면들이 실상 이면에는 ‘성폭력’이 내재해 있음을 폭로하는데 서슴지 않는다. AV산업 규모와 달리 산업을 대하는 대중들의 인식의 질적 저하를 비판한다.

 ‘AV의 미래’를 언급한 부분에서 필자는 1조엔 규모의 거대산업이면서도 기본적으로 시민들이 원하는 욕구가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시장조사’의 부재를 꼬집고 있다. 또한 필자는 “왜곡된 성관념 속에서 남성들은 자위행위용으로 남성 우위의 ‘남근주의’적인 영상을 성인 비디오에서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것이 일본 남성이 생각하는 에로스라면 일본의 성문화는 참으로 빈약하기 짝이 없다”라고 주장한다. 현재 AV의 성황은 결국 본질적으로 남성들의 ‘왜곡된 에로스’ 관념이 동력으로 작용했다는 해석이다. 결국 이 책은 AV시장과 그 속에서 피해를 입는 여성 노동자들을 통해 이 시대의 천박한 성문화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성 상품화’, ‘인간 소외’, ‘성차별’ 등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려 애쓴다. 여기에 대중 개개인의 성찰을 강조하고 있다. 문제를 알면서도 무의식적인 욕구에 따라 즐기게 되는 AV가 불꺼진 한 개인의 방을 넘어 사회구조의 모순을 가속화시키는 기제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잊지말라고 조언한다.

이영윤 특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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