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영화 <석양의 무법자>,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포스터 ©
김지운 감독의 2008년 작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이하 놈놈놈>(The good, The bed, The werid)을 살펴보기에 앞서 스파게티 웨스턴 장르의 거장인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1966년 작 <석양의 건맨 2 - 석양의 무법자, 이하 석양의 무법자>(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1966)를 말할 필요가 있다.

김지운 감독은 <놈놈놈>이 <석양의 무법자>에서 모티브(motive)를 얻어왔으며, 거장 레오네 감독에게 바치는 오마쥬(hommage : 프랑스어로 존경, 경의를 뜻하는 말. 흔히 영화에서 어떤 작품의 장면을 차용함으로써 그 감독에 대한 존경의 표시를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된다)라고 밝힌 바 있다. <놈놈놈> 스토리 라인은 <석양의 무법자>과 거의 흡사하며 영화 곳곳 장면은 <석양의 무법자>에서 빌려왔다.

두 작품 모두 추격전이 핵심이다. 보물을 두고 세 남자가 광활한 벌판에서 얽히고 설켜 숨가쁜 추격전을 벌인다. 두 작품 모두 추격전의 결과가 기다려진다. 마지막 보물의 향방이 판명되는 놈, 놈, 놈이 마주하는 삼각구도가 중요한 영화다.

영화 마지막 삼각구도만 본다면 <놈놈놈>의 명확한 패배다. 레오네 감독의 <석양의 무법자>가 40여년 전에 만들어졌음에도 스타일이나 카메라 구도, 장르적으로 <놈놈놈>보다 훨씬 짜임새있고 훌륭하다. 긴장감에서도 <놈놈놈>을 압도하며 장면이 말하는 의미도 훨씬 진보적이다.

레오네 감독은 미국 서부극 장르가 알리고자 했던 미국 개척 신화를 정면으로 거부한 사람이다. 미국 서부극을 비판하며 태어난 장르가 '스파게티 웨스턴'이다. <석양의 무법자>에서도 레오네 감독의 시각이 잘 드러난다.

특히 영화 마지막 ‘놈놈놈’의 대결장소는 전쟁에서 숨진 병사들이 묻힌 공동묘지다. 카메라가 세 남자의 삼각구도를 만들때 공동묘지 십자가 묘비가 화면을 가득 채운다. 결국 세 놈이 찾고자 하는 보물은 이름 모를 수 많은 사람들 희생의 댓가임을 상징한다. 미국의 경제발전을 신화화 할수록 이유없이 숨져간 수 많은 이들의 목숨은 외면당하는 현실을 개탄하는 거장의 날카로운 시선이다.

반면 김지운 감독의 <놈놈놈>은 아쉽게도 레오네 감독 만큼의 시선은 느껴지지 않는다. 레오네 감독이 창조한 명장면을 빌리고 싶은 욕심만 있었지 거장의 세상에 대한 웅변까지 담아내지 못했다.

레오네 감독은 <석양의 무법자>를 통해 관객에게 성찰을 요구한 것과 달리 <놈놈놈>은 관객에게 성찰은 뒤로하고 '추격전'에 참여토록 요구한다. 그것도 한국을 대표하는 정우성, 이병헌, 송강호가 참여한 추격 게임. <놈놈놈>이 흥행에 성공한 이유는 적극적으로 관객이 추격전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정우성, 이병헌, 송강호 세 배우 중 자신의 취향대로 한 배우를 골라 보물을 향한 ‘추격전 게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결과다.

레오네 감독의 <석양의 무법자>는 미국의 현재와 미래를 근심으로 빚어낸 영화지만, <놈놈놈>은 한국의 현재와 미래를 단순화하고 '게임화'한 영화다. <놈놈놈>에서 관심은 누가 보물을 획득하느냐다. 한국 영화산업에서 가장 관객 자본을 끌어들이는 능력이 좋은 세 배우가 모여 자본을 누가 획득하는지 맞히는 게임. 성찰과 비판은 사라지고 자본을 향한 집념과 판타지가 남는 게임이다. 관객 역시 자본 획득 게임에 적극 참여했다. 자본을 많이 획득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현실. 영화에서나마 현실의 근심을 회복하고 싶은 판타지. 그 판타지의 반영이 <놈놈놈>의 흥행으로 나타난 것이다.

<놈놈놈>은 멀지 않은 미래의 제주를 진단가능하게 한다. 다양한 인종과 세력이 혼합한 <놈놈놈>의 배경인 무정부상태의 만주벌판. 제주에는 다양한 자본이 진출하고 있으며 이미 제주 곳곳에 그 영역을 확장하는 중이다. 제주도는 제주에 보물이 묻혀있음을 알리며 다국적 자본의 추격 욕망에 불을 지핀다. 보물지도를 직감한 다국적 자본들은 슬슬 제주에 안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자본들 추격전이 머지 않아 벌어질 태세다. 이미 추격전은 시작됐을지도 모른다.

40여년전 레오네 감독은 <석양의 무법자>를 통해 명확히 경고했다. 경제발전 신화는 결국 많은 이름없는 서민들의 희생만 낳을 것이라고 말이다. 40여년 후 현재 우리는 대답하고 있다. <놈놈놈> 처럼 경제발전 신화는 판타지를 통해 이어지고 있고, 게임화 되고 있다. 레오네 감독의 경고처럼 현재 벌어지는 광경은 무수한 서민들의 희생을 낳고 있다. 무정부상태를 향한 폭주다. 돈을 향한 추격전 뿐이다. '경제발전 신화'를 꿈꾸기에 앞서 <놈놈놈>이 말하는 자본에 가려져 민주주의가 사라지는 현 상황을 명확히 읽어야 한다. 더불어 경제발전 신화의 패악이 담긴 한 거장의 준엄한 경고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이영윤 특별기자

저작권자 © 제주대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