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의 마음은 밭이다.
그 안에는 기쁨, 사랑, 즐거움, 희망과 같은 긍정의 씨앗이 있는가 하면 미움, 절망, 좌절, 시기, 두려움 등과 같은 부정의 씨앗이 있다. 어떤 씨앗에 물을 주어 꽃을 피울지는 모두 자신의 의지에 달렸다.
베트남의 승려이자 시인, 평화운동가의 틱낫한 스님이 한 말이다.
<화 anger>라는 책을 접한 것은 작년 여름, 30도가 넘는 폭염 때문에 짜증이 밀려오던 날이였다. 더운 날씨 탓인지 왠지 모를 화가 밀려오는 그 때, ‘화’라는 제목은 나의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했다.
사실 나는 화를 잘 내는 편에 속한다. 화가 나면 먼저 얼굴이 굳어지면서 거친 말이 퉁명스럽게 나온다. 나중에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렇게 화낼 일이 아니였는데도 불구하고 쉽게 짜증을 냈던 그 모습에 얼굴을 들기가 민망할 때가 종종 있다. 부끄럽지만 그렇게 조그만 일에도 분개하고 화내고 화풀이하는 사람이었다. 이런 나에게 이 책은 ‘구약성서'와 같이 하는 말이 너무나 많았다.
하지만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책표지에 쓰인 광고 문구 ‘화가 풀리면 인생도 풀린다', ‘당신은 화가 나 있지 않습니까?' 이런 구절은 출판사엔 미안한 말이지만 길거리에서 피하고 싶은 도인들의 첫 마디 “도를 아십니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재미있는 책은 결코 아니였다. 산뜻한 말도 없고, 내용도 단순히 열거해 놓았다. 음식으로 표현하자면 심심한 ‘간이 안된 두부'같은 책이였다. 하지만 ‘간이 안된 두부'는 심심함에도 불구하고 씹으면 씹을수록 느껴지는 고소함이 있다. 이 책도 마찬가지로 읽을수록 고소함과 그 안에서의 달짝지근한 맛까지 느낄 수 있었다.
저자는 ‘화’를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화'는 신체장기처럼 우리 몸의 일부여서 억지로 떼어낼 수 없으며, 이겨내기 위해서는 화를 우는 아기와 같이 생각해 보듬고 달래야 한다고…
정말 특이한 발상이란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우는 아기처럼 화를 돌봐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 지를 조금씩 알게 됐다. 우는 아기를 품에 안고 있는 어머니는 아기의 고충을 이내 파악하고 아기의 몸에 열이 있으면 약을 먹이고 배가 고파서 울었다면 우유를 먹인다. 이 어머니와 같이 화를 감싸고 달래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다.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푸는 사람들에게도 틱낫한 스님은 과식을 하면 에너지가 너무 많이 생산되며 이 과도한 에너지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이것은 분노의 에너지, 폭력의 에너지로 변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또 이 책을 읽는 동안에 내가 화를 냈던 기억들, 나를 화나게 했던 것들, 지금도 마음 속에 차곡차곡 쌓인 ‘화의 씨앗'들 때문에 닫힌 가슴에 대해 책을 잠시 접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우물 속을 들여다 보듯 말이다.
자잘한 화를 다스려 마음이 평안을 얻는 것보다 더 우선해야 할 일은 정말 화를 내야 하는 상황에서 화를 참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그 화를 넘어서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평화운동가인 틱낫한 스님은 <화 anger>라는 책을 통해 명상법이나 호흡법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어떻게 화를 요리할 것인가'를 암시해 주고 있음을 책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야 알게 됐다. 그가 제시하는 방법에 따라 화를 요리해 보자. ‘어떻게 요리하느냐'는 우리 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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