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의 실천, 상생으 미학] 김현돈(철학과)교수 평론집 ©
대지(大地)가 피우는 꽃은 아름답고, 미(美)이다. 삶도 꽃을 피우는데, 그 꽃은 예술이고, 미(美)이다. 대지가 꽃을 키우듯이, 삶은 예술과 미를 잉태하고 자라게 하는 토양이고 모태(母胎)이다.

그렇다고 삶이 미는 아니다. 초목은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대지로부터 줄기를 세우고 난 다음에야 꽃을 피울 수 있다. 미의 창조자도 삶에 뿌리를 내리지만, 삶에 매몰되지는 않는다. 초목의 줄기처럼 대지인 삶으로부터 일어설 때에야 예술가는 미의 꽃을 피울 수 있다. 그 꽃은 대지의 꽃이지만 대지인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회화도 삶의 꽃이라고 할 수 있지만, 회화가 바로 삶은 아니다.

예술가들, 화가들도 삶을 산다. 그러나 잘 살 수가 없다. 삶을 잘 산다는 것은 미가 될 수 없다. 잘 산다는 것은 대지와 삶에 머무르는 것과 같다. 그의 삶이 회화가 되고, 미가 되기 위해서는 초목의 줄기처럼 상승해야 한다. 상승한다는 것은 대지를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대지로부터 빛을 향해 위로 상승하고 대지를 초월해야 한다는 것이다. 잘 산다는 것은 삶에 도취되고, 마비되고, 드디어는 삶에 매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를 위해서는 삶으로부터 고립되고 삶과 대립되어야 한다. 삶으로부터의 떨어짐과 삶에서의 추방은 화가에게 필수적이다. 웰빙이 미가 아니듯이 미는 삶으로부터의 상승이고, 이 상승은 고독과 고립이다.

아무것도 없는 공중에서 꽃이 피듯이, 삶으로부터 버려진 곳에서 미의 꽃은 피어난다. 삶은 흐른다. 삶의 공간도 흐르고 삶의 시간도 흐른다. 흐름은 사라짐이다. 사라짐 속에 안주할 때 삶의 꽃은 금방 시든다. 삶의 꽃이 미의 꽃이 되기 위해서는 흐름과 사라짐 위로 상승해야 한다. 삶의 꽃은 시들지만, 삶의 외딴 곳에 피어난 미의 꽃은 영속한다. 미와 회화는 삶에서 피어나지만 삶을 넘어선 곳에 있다.

삶과 미, 삶과 회화의 이 어려운 관계를 미술평론은 설명을 해야 한다. 꽃을 피워내는 삶과 삶이 아닌 꽃을 같이 설명해야 한다. 美의 높은 산정(山頂)을 오르기도 하고 삶의 들판을 걷기도 해야 한다. 이편에 있는 삶과 저편에 있는 작품 사이에 다리도 놓아 주어야 한다. 대지와 꽃, 삶과 예술, 감상자와 작품을 이해의 다리로 이어주어야 하는 과제를 평론가는 안고 있다. 그래서 평론 작업과 예술비평 작업은 험한 골짜기를 뛰어넘는 다리 놓기가 된다.

이번에 제주대학교 출판부에서 출판한 김현돈 교수의 미술평론집 「미술의 실천, 상상의 미학」은 그러한 어려운 과제를 껴안으면서, 삶과 미의 문제를 해명하고자 하는 진정한 고뇌에서 나온 저서이다. 제1부 “미술과 삶의 화해”, 제2부 “역사와 예술의 만남”, 제3부 “삶, 인간, 예술”의 제목들이 말해 주듯이, 그리고 저자 스스로 “나의 미술 비평의 주된 관심사는 미술과 삶, 미술과 현실의 관계였다”라고 책의 서문에 밝히고 있듯이, 삶에서 피어난 온갖 꽃들, 푸른 꽃, 검은 꽃, 악의 꽃들을 바라보며 사유하는 저자의 섬세한 정신이 우리를 감동하게 한다.

대지의 꽃은 대지에 뿌리를 내린 사람만이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제주의 삶에서 자라난 제주의 미술 작품들을 누구보다도 깊이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제주의 평론가이다. 미술 평론이 그렇게 활발하지 않은 제주에서 김현돈 교수의 미술평론 작업은 참으로 귀한 것이다, 바다와 바람, 흙과 눈물의 제주의 삶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꽃을 바라보는 우리의 감성과 지성을 일깨우고, 그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한 삶 속에서의 새로운 실천과 상생의 이념을 끌어내려는 저자의 이번 저작은 미술평론을 넘어, 미학자로서의 저자의 면모를 엿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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