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언론시장이 유례없는 군웅(群雄)할거시대에 돌입했다. 신문은 물론 방송사까지 속속 틈새를 파고들며 새로 생겨나 과부하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폭발적 양상이다.
다양한 매체의 등장은 언로(言路)의 확충이란 점에서 바람직하다. 그러나 언론학적 접근에서 언론의 역할은 견제와 조정, 정보의 제공이란 측면에서 실효를 거둘 수 있느냐의 문제이지 단순히 다양한 매체의 등장이 곧 매체환경의 질적 성취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제주지역 언론의 다양화에 따른 경쟁확산은 일견 경쟁력 있는 상품, 즉 뉴스거리를 창출할 것이란 기대감도 있지만, 경영압박 해소를 위한 무기로서 정보왜곡 등 문제발생 소지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현재 제주언론의 환경은 중대 기로에 선 셈이다.

지방언론은 1987년 언론기본법 폐지와 ‘정기간행물등록등에관한법률’ 재정으로 신문등록이 자유로워지면서, 시장진입의 규제상황이 크게 완화되는 등 경쟁적 환경이 부분적으로 조성되었다. 이러한 신문산업시장의 변화는 국내신문의 폭발적인 수적 증가에서도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과거 5공화국 하의 ‘1도1사제’가 폐지되고 지방에서도 신문사들의 창·복간의 과정을 거치며 지방언론 과잉상태로 치달았다.
제주도 역시 마찬가지로 많은 지방언론사가 존재한다. 방송은 KBS 제주방송총국, MBC 제주문화방송, JIBS 제주방송, 아세아 방송 제주지사, 기독교 라디오 방송, 한국케이블 TV 등의 방송이 있고, 제민일보, 제주일보, 한라일보, 제주타임스, 서귀포 신문 등이 있다. 이와 함께 최근 2년새 제주투데이, 제주관광신문, 아리랑TV 등의 언론사가 만들어졌다. 다음달부터는 주간지였던 제주타임스 역시 일간지로 바뀔 거라고 하니, 날이 갈수록 도내 언론사의 경쟁이 치열해질 조짐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매체의 등장요인은 무엇인가. 원론적으로는 기존 언론이 여과시켜버린 역할에 대한 틈새공략이다. 또한 분별력 있는 여론형성을 통해 새로운 언론의 위상을 심겠다는 복안이다. 결국 다양한 구미에 맞는 다양한 언론의 환경을 제시하겠다는 것인데, 여기에는 두 가지 견해로 갈린다.
지역매체의 수가 늘어나 매체간의 경쟁이 점차 치열해 지면 중요한 지역현안과 갈등적 이슈가 발생했을 때 각 언론사마다 서로 상반된 시각에서 다룸으로써 독자들에게 다양한 시각이나 의견을 제시하고 토론의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는 점에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미국과 유럽, 혹은 일본이 한 지역에 1개의 지방지가 있다는 점에 비춰 우리나라 혹은 제주지역의 언론환경이 보다 나을 수도 있다. 물론 지방지가 1개라고 해서 그 신문이 지역의 여론을 독점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역 방송을 비롯해서 그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매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문 매체가 다른 매체와 다르게 가질 수 있는 특수한 역할을 생각해보면 신문사 수가 적은 것도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언론할거, 과당경쟁 불러”
반면에 현재의 제주언론의 경쟁적 등장을 좋은 본보기로만 삼기에도 부족함이 역력하다. 과다한 언론사 등장의 문제는 과당 경쟁과 함께 이해당사자간에 갈등을 증폭시키고 지역사회를 분열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지금까지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도 지방언론들은 독자가 보기에 부적절한 입장을 자주 내보였다. 한마디로 정치권력과 언론권력의 담합행위가 적잖이 지면에 투영됐다. 그 뿐인가.
최근 제주 지역언론의 큰 문제 중 하나는 자본력이다. 방송사는 차지하고라도 지방 3대 일간지로 꼽히는 제민일보, 제주일보, 한라일보 모두 막대한 빚을 떠안고 있다. 이 가운데 몇군데는 수백억대 부채가 누적돼 심각한 지경이다.
많은 지방언론사들이 중앙에 비해 자본금, 인력, 시설규모에서 큰 격차를 보이고 있으며 경영상태가 허약한 편이다. 지방의 협소한 광고시장에 비해 과당경쟁구조는 부실경영과 파행적 인사, 사이비 논란을 필연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다. 일부 건실한 지방언론사들마저 지방언론이란 이유로 신뢰도와 권위면에서 부당한 대접을 받고 있는 형편이다.
한정된 독자와 광고 시장에 그 시장의 용량을 초과하는 다수 언론사의 존재가 결국 언론사의 질을 하락시키고 비정상적인 경영방식을 유발하게 되는 것이다. 건전한 경영 여건을 확보하지 못한 다수 신문사의 경쟁은 의견의 다양성을 담보해 주기보다는 저널리즘의 기본 기능마저 훼손시키게 된다는 것은 단순한 우려가 아니라 한국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현실로 입증되었다고 볼 수 있다.
지방언론 발전과 지역사회 공익을 위한다는 순수한 목적으로 창간을 해도 외부의 압력이나 이윤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 것이 지방언론이다.
한국의 지방언론사들 사주를 살펴보면 애당초부터 모기업의 방패막이나 지역유지의 명함용도로 창간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킨다. 그 이유는 지방언론사 사주들 중 유독 건설·시설사 대표가 많다는 것이다. 부패와 비리의 온상으로 알려진 우리나라 건설사, 유통회사 등의 사주가 중앙과 달리 지방에서 언론사를 창간하는 형태가 두드러지고 있다.

“언론의 본분 살려야”
기존언론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고 할 때 계속 새 언론의 출현으로 그 공간을 메워야 하는가.
지방언론사간 자율적인 통·폐합이 거론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언론의 자율 통폐합이 거론되는 시점에서 되려 언론이 할거하는 것을 두고 언론계 일각에선 현재 언론시장의 포화상태를 엑소더스로 인식하는 입장도 있다. 지금이 언론의 구조조정을 위한 전단계라는 해석 때문이다. 대형자본의 중앙언론사의 지방판 확대개편에 따른 경쟁심화와 지역신문의 약진에 따라 지방언론은 이중,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지방언론이라는 한정된 시장에 15개 내외의 지방사가 난립하는 과잉경쟁상황에서 지방언론의 미래는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
군사정권의 강제통폐합의 결과물인 ‘1도1개사’제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율적인 통·폐합이 절실해진 시점이다. 그러나 왜 속속 ‘대안’ 언론들이 명함을 내미는지 오랜 세월 터줏대감 노릇해온 기존의 언론들이 고민을 해 볼 대목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만큼 과거의 언론들이 ‘한쪽’의 소리만 전해왔다는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언론 통폐합도 좋고 언론 할거도 좋다. 하지만 무엇보다 언론이 본분이 무엇인지, 어디로 가야 할 지를 먼저 생각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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