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명철(지리교육전공 교수)

나는 매년 강의 첫 시간에 나의 수업 모토 두 가지를 학생들에게 알려준다. ‘잘난체 하기’와 ‘선배 맞먹기’. 내가 10여년간 우리 대학에서 강의를 해오면서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이 두 가지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우리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논의 중인 주제에 대해 나름대로 매우 독창적이거나 논의 전개에 도움이 되는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드러내놓고 이야기하기를 주저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처음엔 학생들이 자신만의 비판적 견해가 없거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기엔 뭔가 부족함이 있다고 생각해서 발표를 주저하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수업이 끝난 후 학생들이 제출한 리포트를 읽어보면 자신만의 독특하고 의미 있는 견해가 많이 제시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만 혼자서 읽어보고 덮어두기엔 너무 아까운 내용들도 종종 발견된다. 이런 내용이나 견해들을 수업 시간에 발표하면 다른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다듬어가는데도 도움이 될뿐만 아니라, 논의 내용이 다양해지고 수업도 훨씬 활기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도대체 왜 학생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견해를 수업 시간에 잘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 것일까? 수업 시간에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발표하면 뭔가 잘난 체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고, 그러면 주위 동료들로부터 질시를 받거나 심하면 왕따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나는 첫 강의 시간에 아예 수업 모토로 서로서로 ‘잘난체 하기’, 그리고 그것을 서로서로 ‘기꺼이 수용하고 칭찬하기’를 강조한다.

두 번째 모토는 ‘선배 맞먹기’이다. 나는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가부장적이고 수직적인 인간 관계에 고착되어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연령이나 직책, 직급이 일상적인 인간 관계를 너무 강하게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연령이 낮거나 직급이 낮은 사람은 윗 사람 앞에서 자신의 의사나 감정표현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고, 대개는 윗 사람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기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는 강의 시간에 선배 의견에 기죽거나 무조건 추종하지 말라고 권고한다. 자신의 생각은 뭔가 부족하고 하찮은 것이라 여겨 이야기하기를 회피할 것이 아니라, 나는 그 주제에 대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고 나는 세상을 이렇게 본다고 당당하게 말하도록 유도한다. 그런데 강의실에서의 선배란 단순히 상대적으로 학번이 높거나 나이가 많은 학생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강의실에서 가장 학번이 높고 나이가 많은 사람은 바로 강의를 담당하는 교수, 바로 나(손명철)이며 더 나아가서는 수강생들이 함께 읽고 토론하는 저서나 논문을 집필한 저자일 수도 있고, 논의와 관련된 저명한 학자나 성인(聖人)일 수도 있다. 이들의 주장이나 견해에 대해 일방적으로 수용하려는 태도보다는 그들의 주장을 경청하고 자신의 생각과 비교해봄으로써 자신의 의식의 지평을 넓혀가는 과정이 곧 대학에서의 공부라고 일러준다. 이것이 바로 나의 수업 모토 중 하나인 ‘선배 맞먹기’의 참다운 의미라도 것도.

이번 학기에도 내가 담당한 모든 과목에서 나의 수업 모토를 더욱 크게 외쳐야겠다. 그리고 기회 있을 때마다 수업 모토를 널리 알려야겠다. 그것이 사범대학 선생으로서 내가 우리 사회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작은 몫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징검다리를 만들기 위해 깊은 강에 돌멩이를 하나 던져 놓는 심정으로….

 

저작권자 © 제주대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