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규일(국어교육과 명예교수)

인류 역사상 최고의 성인(聖人) 군자를 들라면 당연히 순(舜) 임금을 든다. 그 순 임금이 밤중에 아버지를 등에 업고 바닷가로 도망을 간 적이 있다. 어쩌다 살인을 한 아버지의 잘못을 감추고, 자기 아버지를 살리기 위한 행위였다. 순 임금 아버지의 이름은 ‘고수’다. 그가 어느 날 살인을 했다. 잡히면 사형을 면할 수 없었고, 순 임금으로서는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더구나 아버지는 장님이었다. 남몰래 이 소식을 들은 순 임금은 곧바로 자기 아버지를 등에 업고 바닷가로 도망갔다. 세상이 그 일을 잊을 때까지 숨어 지냈다. 말하자면 공소 시효가 지나기를 기다린 것이다.

충(忠)을 내세우는 쪽에서는 순 임금을 비난할 수 있다. 그러나 충이 효(孝)에 앞설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장님인 자기 아버지에게 닥친 일이었으니 말이다. 요즘의 개념과는 그 근본이 다르다.

순 임금이 바닷가로 도망갈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순 임금은 아버지를 들쳐 업고 바닷가로 도망가면서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자기 아버지가 붙잡히면 죽으니, 무조건 아버지의 생명을 구해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고 한다. 더구나 왕으로서 아버지의 죽음은 자기의 불효(不孝)라는 생각뿐이었다. ‘효의 지극함’이란 바로 이러한 마음이다.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순 임금이 바다로 도망을 갔다는 고사를 읽는 순간, 나는 ‘불양부지악(不揚父之惡)’이란 말을 떠올린다. ‘부모의 허물이나 나쁜 점을 남에게 말하지 아니한다’는 뜻이다. 아무리 자기 부모가 못나고 밉더라도 내 부모의 허물과 나쁜 점을 특히 남에게 말하지 말라. 그저 부모의 허물을 자기 스스로만 알고 깨우치며,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면서 효도하면 된다. 못나도 내 부모요, 잘나도 내 부모이다. 오죽하면 부모와 자식 사이를 천륜(天倫)이라 했던가! 천륜이란 부모 자식, 형제 사이의 변치 않는 떳떳한 도리이다. 천도(天道)는 심원(深遠)하고 인도(人道)는 천근(淺近)하다[天道遠 人道邇]. 그래서 천도는 사람이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무는 조용히 있으려 하나 바람이 가만 두질 않는다’는 뜻의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란 말이 『한시외전』에 나온다. 이 말은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고 싶으나 이미 부모는 세상을 떠나고 안 계신다’는 속뜻을 담고 있다. 사람이 살면서 한 인간이 부모를 제대로 알려면, 자식이 혼인(婚姻)을 하여 직접 자기 자식을 낳아 길러보아야 부모의 마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부모의 마음을 알 수 없다. 부모와 자식 간에서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속담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임을 알아야겠다. ‘나이 들어 철들자 망령든다’는 말도 있다. 부모를 모시고 싶어도 이미 그때는 부모가 돌아가시고 안 계시니 탄식하며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오늘날, 이 땅에 사는 젊은 대학생들이여! 인간 만행(萬行)의 근본인 효가 무엇이며, ‘효도(孝道)하는 길’이 무엇인지? 다 함께 살면서 다시 한 번 깊이 헤아려 볼 일이다.

중국 당나라 때 이하(李賀)라는 사람이 있었다.「이하전(李賀傳))」에는 이런 말이 전한다.

“당나라 이하(李賀)가 매일 아침에 나갈 때 조랑말을 타고 비단 주머니를 등에 진 아이놈을 따라가며 시를 짓는 대로 그 주머니에 넣고 저녁에 돌아와 완성하곤 했다.”

옛날 진나라 죽림칠현의 한 사람인 유령(劉伶)이 자기 관(棺)과 삽을 종에게 짊어지고 따라오게 하면서 자기가 죽는 그곳에 묻으라고 했다는 얘기만큼 기이하다. 이하가 죽을 무렵, 하루는 낮에 비의(緋衣)를 입은 사람이 붉은 용을 타고 나타났다. 그의 손에는 무슨 치부책이 들려 있었는데 태고전(太古篆) 같기도 하고 벽력석문(霹靂石文) 같기도 했다. 그 사람이 이하에게 말했다.

“당신을 데려가야겠다.”

이하는 그 글을 다 읽지도 못하고 갑자기 말에서 내려 머리를 조아렸다.

“옥황상제께서 백옥루(白玉樓)를 지어두고 당장 그대를 불러 시를 지으라고 하시니 빨리갑시다. 하늘나라는 좋은 곳이라 괴로움이 없는 곳이오.”

“저는 어머니가 늙고 병들었으니 갈 수가 없습니다.”

깊어가는 가을, 낙엽을 밟으면서 효에 관한 시 한 수를 읊조려본다.

 

아이가 천 마디를 하면 그대가 듣기에 싫지 않고

부모가 한 번 입을 열면 한가로워 간섭한다고 하는구나.

한가로워 간섭하는 게 아니라 어버이 마음에 걸리고 끌리는 게 있어

백발이 되도록 알고 단련된 것이 있어서 그런 게다.

여보게, 노인의 말을 성심껏 받들고

젖비린내 나는 입으로 장단을 다투지 마라.

아이의 오줌과 똥을 그대는 싫어하는 빛이 없으되

노인이 침 흘리는 것은 도리어 증오하는구나.

육척의 몸뚱어리 어느 곳에서 왔는고.

부모의 정기(精氣)가 네 몸을 만들었노라.

여보게, 늙어 가는 사람을 공경해 받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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