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이스탄불의 역사속으로

▲ <내 이름은 빨강> 오르한 파묵 지음/민음사

제주의 하늘이 찬란하게 드높은 가을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고향에 돌아온 지도 어느덧 2년이 되어 간다. 아름다운 자연 한 폭을 늘 마음에 들일 수 있는 제주에서는 보다 맑은 정신으로 좋은 책들을 실컷 읽겠다고 다짐했지만 생각처럼 생활의 여유가 쉽지 않다. 

얼마 전 우연히 손에 잡게 된 <내 이름은 빨강>은 삶에 바쁜 나에게 청명한 휴식처럼 다가온 책이다. 저자 오르한 파묵은 1952년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태어나 부유한 대가족 속에서 성장했다. 이스탄불 공과대학에서 3년간 건축학을 공부했으나 23세에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그 외의 모든 것은 포기한 채 아파트에 틀어박혀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7년 후 첫소설을 출간한 그는 꾸준하고 정열적인 집필활동을 통해 대중적이면서도 실험적인 작가로 터키와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문명 간의 충돌, 이슬람과 세속화된 민족주의 간의 관계 등을 주제로 작품을 써 온 파묵은 2006년 “서로 다른 문명 사이의 충돌과 얽힘을 나타내는 새로운 상징들을 발견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중 <내 이름은 빨강>은 저자에게 “진정한 이야기의 대가”라는 칭호를 붙여준 작품이다. 어린 시절 화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파묵은 일찍부터 이슬람 화가들의 세밀화를 모사하며 미술에 대한 안목을 키워 왔다. 이 책은 다큐멘터리를 능가하는 이슬람 회화사의 생생한 기록이다. 

이야기는 술탄의 명을 받아 비밀리에 베네치아 스타일의 회화집을 만들던 화가들 중 한 사람이 살해되면서 시작된다. 회화집 제작 책임관은 12년 동안 이스탄불을 떠나있던 조카 ‘카라’의 진상을 규명할 탐정으로 불러들이지만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마저 살해된다. 복잡한 심경으로 귀향한 카라는 오랜 세월 사무치게 그리워하던 자신의 옛 연인이자 희생된 제작 책임관의 딸 세큐레의 마음을 다시 얻기 위해서라도 범인을 반드시 잡아내야 할 처지가 된다. 소설은 등장인물들이 번갈아 가며 화자로 등장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사건이 전개되어 가는 구성으로, 살해당한 시체, 주인공인 셰큐레와 카라, ‘나비’, ‘올리브’, ‘황새’라는 예명을 가진 세 명의 세밀화가는 물론, 금화, 나무, 죽음, 소설의 제목에 쓰이기도 한 빨간색, 악마, 그림 속 개까지 말을 한다. 이러한 서사기법은 독자들로 하여금 각각의 인물들이 처한 정황과 생각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이들 중 과연 누가 살인범인지 궁금증을 증폭시켜 나간다. 동시에 각각의 이야기들은 넓은 화폭 위에 정교하게 그려진 오브제들을 연상시키는데, 궁극적으로 이 소설은 한 폭의 섬세한 이슬람 세밀화를 감상하는 것처럼 다가온다.

파묵은 역사소설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서사 방식에 추리소설의 기법을 가미하고 이슬람의 역사와 문화, 문명의 흥망성쇄에 대한 심오한 통찰력을 발휘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지적이면서도 문학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획득한 흥미진진한 소설을 읽는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새삼 실감하게 한다. 이 소설에서 세밀화가들 사이의 갈등은 문명과 문명의 충돌이라는 층위 외에도 신에게 보다 다가가려는 근대 이전의 예술론과 작가의식이 싹튼 이후의 예술론 사이의 충돌을 다루고 있다. 개인의 ‘창의성’과 ‘창작’을 놓고 빚어지는 대립이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을 지켜보노라면 역사 속의 개인들, 즉 ‘인간’이 왜 투쟁하며,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희생하는지, 그 과정에서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는지 다시금 성찰하게 된다.

점차 깊어가는 이 가을, 가슴을 울리는 좋은 책을 만나서 주변에 권할 수 있는 호사를 누리고 싶다. <내 이름은 빨강>, 캠퍼스의 젊은 벗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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