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마을 사람들은 왜 서로를 죽였나”

▲ <마을로 간 한국전쟁>박찬승 지음 / 돌베개

제주 4·3연구에도 방법론 도입을

 

한국현대사는 한국전쟁이라는 구원을 기다리는 과거화하기 어려운 과거를 가지고 있다. 전시 상황에 대한 실증 연구와 일차 자료에 기초한 ‘사실’이 발견되고 있으며 그 결과물들이 나오고는 있지만 아직도 명확히 밝혀져야 할 것들은 많다. 이 책은 미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한국전쟁, 마을에서 벌어진 작은 전쟁들 혹은 보통 사람들이 겪은 한국전쟁의 역사서이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해방 이후부터 한국전쟁기까지의 좌우 대립과 충돌이 현상적으로는 좌우의 이념 갈등에서 말미암은 것이며, 더 근본적으로는 지주-소작인 간의 계급적 대립관계에 그 뿌리가 있다고 보는 경향이 많았다. 하지만 과연 농촌마을에서 벌어진 좌우대립과 충돌이 이념과 계급의 차이에서 말미암은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면서 출발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이다.

이 책은 총론과 5개의 장으로 이루어졌다. 1장에서 4장까지의 사례지역들이 한국전쟁기에 주로 평야지대, 혹은 도서지방의 마을들에서 있었던 사례를 다루고 있는데 반해, 5장은 산간지역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마을 사례들 간 비교접근을 통해 마을들 간의 갈등과 충돌이 배경이 달랐다는 것, 집안과 가문 그리고 인척관계가 국가나 이념보다 더 중요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한국전쟁기 민간 사이에 커다란 충돌을 불러온 또 하나의 중요한 배경으로 종교와 이념 간의 갈등이 중요하였음을 천주교와 공산주의자들 간의 충돌에 대한 연구로 보여준다.

대체로 한 마을사람들이 겪은 전쟁과 폭력에 대한 경험일지라도 개인들이 처한 과거의 위치와 현재의 상황에 따라 ‘기억’되거나 ‘망각’되기도 한다. 그들의 사회적 기억과 공유하고 있는 지식의 많은 부분은 말해지지 않거나 기록되지 않은 채 ‘격리’되어 암묵적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억’과 ‘망각’은 과거의 사건에 대해서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초점을 둔 공동체적 정체성 형성에 중요한 부분으로 작용하며 특정한 사회적, 그리고 역사적 상황 속에서 발생한다. 기억이 권력구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개인적 기억일지라도 개인의 사회적 위치와 대중들이 주장하는 해석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전쟁기억의 이념적 불균형, 공식적 기억과 비공식적 기억간의 괴리, 그리고 세대적 단절 등이 한국전쟁의 기억의 중요한 특징을 이룬다. 또한 전쟁기억은 지역사회의 구체적 지형 속에서 재구성되는 것이어서 투쟁의 당사자나 그 가족들이 생존해있고 또 서로 아는 지역사회에서 같이 살아가는 상황에서는 ‘담합적 침묵’이 발생하기 쉽다. 이런 회피적 담합을 뚫고 과거의 사실을 명확하게 파악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심층면접을 통해 확보되는 전쟁경험에 대한 구술은 공식적 역사와 사적 기억의 차이를 확인하거나 권력에 의해 은폐된 사실을 복원한다는 의미에서 중요하며, 동시에 분단체제 하에서 살아온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로서의 존재론적 의미를 파악하는 데에도 필요하다. 이때 사적 기억들과 동일한 사건에 대한 기억과 해석은 젠더, 계층, 연령(혹은 인생주기에서 해석자가 처한 상황), 직업, 교육 등 여러 요인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2010년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60년이 되는 해이다. 이 책에서 취한 관점이나 방법론으로 제주4.3에 접근한다면 그동안의 제주4.3연구를 좀 더 확장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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