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현(사회학과 교수)


 <이타적 인간의 출현>이라는 재미있는 책을 쓴 경제학자인 고려대학교 최정규교수한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경제학자가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이라는 경제학의 전제를 검토하기 위해 게임이론을 이용해서 실험을 했다고 한다. 실험의 내용은 2인 1조를 짜고 그 중 한 사람에게 10만원을 주고 다른 조원과 서로 나눠 갖게 하는 것이었다. 10만원을 받은 사람이 자기 조의 다른 사람에게 나눠 갖는 액수를 제안하고 그 제안을 상대방이 받아들이면 각자 돈을 가질 수 있지만, 반대로 상대방이 거절하면 10만원을 몰수하는 것이 실험의 조건이었다.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이라는 가설이 맞는다면, 제안자는 상대방에게 1원을 제안해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제안자는 자신이 0원이 아닌 어떤 액수를 제안하든 그것을 상대방이 거절했을 때 상대방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없다는 것을 알고 또 상대방도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학적인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이라는 전제와 그에 따른 논리에 따르면 이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은 99,999:1의 비율 또는 그에 근접하는 비율로 나눠가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실험을 해보면, 보통 사람들은 55,000:45,000원 정도의 비율로 나눠 가지더라는 것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가정했던 것처럼 80,000:20,000원 정도의 비율로 나눠 가지는 예외적인 집단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실험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보통의 사람들은 단순히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계산적이고 이기적이기보다 공정과 정의에 대해 도덕적 관념을 가지고 있고 거기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주류 경제학은 이러한 도덕적 인간을 비합리적이라고 비웃는다. 그리고 비도덕적이나 대신 합리적인 태도를 학생들이 갖도록 훈육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대학은 도덕적이고 공동체적인 시민을 양성하는 곳이 아니라, 계산적이고 부도덕한 장사꾼을 양산하는 곳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하는 걱정이 든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이른바 CEO 대통령으로 인해 경쟁이 칭송되고, ‘이익과 굶주림(gain and hunger)’라는 ‘경제적’ 동기에 의해 우리 사회가 움직이고 있다는 점에서 비도덕적이나 합리적이고 유능한 인간을 배출하는 곳으로 학교가 변하고 있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경제학 전공자인 교과부 장관께서는 교수들을 ‘이익과 굶주림’으로 다스리기 위해 교수연봉제를 도입했는데 이 또한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학생도 교수도 시장에 맞게 탈태환골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류 경제학, 시장만능 경제학은 염치보다는 계산에 밝은 인간이 되라고 하고 대학은 “취업”을 위해 이런 인간을 양산하는 것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다. 하지만 동양에서는 염치없는 인간은 금수만도 못하다고 했다. 소학도 아니고 대학이 계산은 잘 하나 염치없는 학생을 양산해서 재벌 기업에 취업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뭔가 크게 잘못된 것이다. 동양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계산하는 인간 또는 직업인을 양상하는 것이 대학의 임무는 아니었다. 정보사회에 대한 탁월한 이론가인 다니엘 벨이 1966년 컬럼비아대학의 교양교육 개혁을 위한 보고서에서 정보사회를 대비한 대학교육의 목적은 “지적 시민”을  양성하는데 있다고 한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CEO대통령이 경제학과 교육공학으로 무장한 교과부 장관을 임명한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우리 대학까지 이에 장단을 맞춰서는 안 될 것이다. 정권은 짧고 제주대학의 교육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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