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儒學)을 위한 변명

▲ 김치환(철학과)교수

1. 유학은 재조명되고 있는가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63)을 통해서 조선 성리학과 서양에서 들어온 학문의 관계를 조명해온 한형조(韓亨祚, 1959-)는 “근대화를 위해 전통이 부정되었고, 근대화 이후에 전통이 다시 조명되고 있다.”고 말한 일이 있다. 그러면서 “서구화론자들은 전통을 일방적으로 부정하고, 전통론자들은 전통을 일방적으로 찬양한다. 두 주장이 부딪칠 때, 진실은 언제나 가운데쯤 있다.”고 말한다. 진실이 가운데쯤 있다는 말은 ‘동양적인, 너무도 동양적인’ 말로 들린다. 그런데 근대화와 전통이라는 문제에서만큼은 진실이 가운데 있다고 보기 어려울 것 같다.
 물론, 1980년대 민주화와 함께 우리 사회에서는 전통을 재조명하는 일이 유행처럼 번졌다. 그런데 이 일을 주도한 것은 근대화의 세례를 받은 젊은 세대들이다. 이들은 근대화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기성세대의 과오를 비판했다. 그렇다면 전통의 재조명은 근대화를 성취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니면 서구적 근대화를 강요한 기성세대의 과오를 비판하려는 과정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래서 이 글에서는 ‘유학(儒學)이 전통을 대표한다’는 전제하에 전통과 근대화가 대립하는 것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공맹학(孔孟學)은 경학(經學)인가

  서양철학의 방법론을 배웠던 중국철학사가 노사광(勞思光, 1927-)은 공맹학을 인간학으로 정의한다. 그래서 유학, 더 나아가서 중국철학이 주(周)나라 말엽의 공자(孔子, B.C.551-B.C.479)에게서 시작되었다고 말하면서, 공자를 인문주의를 회복하고자 한 인물로 서술한다. 하지만 조기빈(趙紀彬, 1905-1982)처럼 공자를 시대착오적인 귀족전제정치의 신분제도를 옹호한 인물로 서술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자와 맹자를 말하고, 유학을 말하는 것이 ‘옛사람들의 어록 모음집으로 철학을 오해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적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노사광에 따르면, 공자는 인(仁), 의(義), 예(禮) 개념을 바탕으로 하여, 정명(正名)과 직(直), 그리고 충서(忠恕)와 성덕(成德) 공부의 문제를 제기했다. 그런데 이것들을 관통하는 공자의 문제의식은 바로 ‘인간’이다. 공자는 인간과 그 관계에 주목했다. 그렇기 때문에 인(仁)은 인간다움을 말하는 첫 번째 출발점이요, 의(義)는 고대사회의 종교적 천(天)을 대신해서 인간관계 속에서 사태와 사물을 규정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요, 예(禮)는 인간다움에 필요한 요건들을 구체적으로 행사하는 방식, 또는 행사하는 그 자체가 된다.
 물론, 타인을 사랑하고 백성을 잘 다스린다거나, 자기의 욕구를 억눌러 예(禮)로 돌아간다는 그럴 듯한 해석이 후대의 유학자들에 의해 날조된 것일 뿐, 실제로는 노예주를 사랑하고 노예를 부리며, 노예제 질서를 스스로 감당하라는 지배 이데올로기를 고착화시킨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공자와 맹자의 ‘어록 모음집’인 『논어』와 『맹자』를 말하는 것은 인간과 세계의 근원 또는 본질을 탐구하는 철학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비판들을 염려했기 때문에 노사광은 거두절미하고 공맹학을 ‘인간을 지향하는 학문’으로 정의하고, 적어도 한자문화권에 있어서는 근대적 의미의 철학이 공맹학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 영화 <공자-춘추전국시대(2010)>의 한 장면

3. 성리학은 전근대적인 학문인가
 주자가 집대성한 성리학(性理學)이 도덕적 이성을 자각하고, 그것을 확립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지나치게 형이상학화 했다는 것이 청대(淸代) 실학자(實學者)들의 공통된 인식이었다. 같은 관점에서 김충렬(金忠烈, 1931-2008)은 전목(錢穆, 1895-1990)의 말을 빌려, ‘그들이 수립하고자 한 학문의 중점이 대체로 추상적인 본체론 쪽으로 치우쳐 있었기 때문에, 공소(空疎)한 이론만이 발달하여 마침내 이민족의 침입을 막아내지 못하고, 서구 과학 문명의 도전 앞에 무기력한 존재가 되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 원인이 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
 공자 이래 유학적 전통에서 우주의 물질적 구성이나 존재 양식에 대한 논의는 별로 없었다. 왜냐하면 그러한 것들을 자연(自然), 곧 ‘조작과 안양(安養)이라는 인간의 손길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대(漢代)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지배이데올로기의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유학의 심성론적 전통을 왜곡시키고 단절한 채, 세계의 구성 원리에 대한 목적론적 신학화가 이루어졌다. 그래서 성리학자들은 전통에 입각하면서도 새롭고 고급스러운 철학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시마다 겐지(島田虔次, 1917-2000)는 주자학의 성립, 곧 성즉리(性卽理)의 체계가 성립한 것을 두고 “동아시아 세계에 있어서 세계사적인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이미 유학 내부에 깊이 들어와서 이제는 분리해내기 어려운 우주론적 요소들을, 잘만하면 도교와 불교의 고급스러운 형이상학적 체계와 맞설 수 있는 것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착상에서 출발, 인간의 본성론을 중심으로 한 공맹의 철학체계를 부흥시키려고 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주자는 가치의 문제[心性]가 사실의 문제[理氣]에 기대어 있다고 설명해서 유학 전통을 온전히 되살리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리학이 추상적인 본체론에 치중했기 때문에 서구 과학 문명에 무기력하게 대처하게 되었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4. 유학은 유학이다

역설적이지만, ‘근대화를 이룬 우리’는 다시 유학을 ‘전통’으로서 재조명하려고 한다. 그리고 묘하게도 그것은 서양철학에서의 ‘근대’로 정의되는 인간학적인 면에서 구상되고 해명된다. 예컨대 다산 정약용만 하더라도 그의 인간관이 중세 기독교의 영혼론과 비슷하고, 그의 이른바 실학이 서양의 자연과학적 탐구를 기초로 하기 때문에 근대적이라고 평가 받는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양명학이나 주자학도, 그리고 공맹학도 서양의 근대적 인간중심주의가 흘러들어오기 전에 인간과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의 문제를 탈종교적, 탈중세적으로 체계화한 것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고마운 말이지만, 이렇게 읽어나가다 보면 문득 우리가 사용하는 두 가지 중요한 개념, 곧 ‘근대’와 ‘인간학’이라는 말이 본래 우리의 것이 아니었던 것 같은 의구심이 든다. 도대체 근대는 무엇이란 말인가. 탈레스 이후로 데까르트에 이르기까지 서양이 성취해온 바로서의 근대를 말하는 것인지, 우리가 경험하는 민주적인 정치형태와 자본주의적인 경제 형태를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인간학이나 인간 중심주의도 마찬가지다. 근대라는 의미에서 인간중심주의는 종교를 벗어나 인간 이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기초로 한 것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인간에 대해 진즉부터 관심을 가져온 유학이야말로 인간중심주의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과연 누가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문득 더 이상 유학을 위한 변명은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서세동점(西勢東漸)이 시작되던 시기에 중세 기독교적 질서를 전파하러 온 선교사들이 기원전 2천년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중국의 역사와 문화, 사상에 경외심을 느껴 중국말을 배우고, 중국의 경전 속에서 자연신론의 흔적을 찾아내던 일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요컨대 유학은 서양의 개념을 빌지 않아도 철학이요, 인간학이다. 아울러 같은 점에서 유학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폐기되었던 적도 없지만, 그것이 오리엔탈리즘에 기초한 것이라면 다시 인간학이라는 이름으로 재조명받을 필요도 없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저작권자 © 제주대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