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간호사 도입취지를 살리자

▲ 김민영(간호학과) 교수

 과거에 비해 간호사는 보다 전문적인 이미지로 바뀌었고, 전국적으로 간호사가 부족한 현실에서 졸업 후 취업이 잘 되는 과로 인식되면서 간호학과의 경쟁률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전문간호사’라는 타이틀에 대해서는 서울에 소재한 대형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경험이 있거나, 의료기관과 관련되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생소한 용어일 수도 있겠다. 전문간호사로 근무했던 한 사람으로서, 전문간호사를 알리고 이들이 제공하는 간호서비스의 효과를 학문적으로 입증하여 이 제도가 좀 더 빠른 시일 내에 효과적으로 정착하는데 기여하는 것은 일종의 사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국내에서 방영되는 드라마에서 비춰지는 간호사의 이미지는 간호사의 한 사람으로서 보았을 때 아쉬운 부분이 있다. 최근 다소 긍정적인 변화가 보이기는 하지만, 단편적으로 어느 한 부분만 그려지는 간호사의 이미지는 몇 십 년 전 상황과 크게 달라지지는 않은 듯하다. 그러나, 몇 해 전 병원을 배경으로 한 국내 한 드라마에서, 전문간호사의 현실이 생동감 있게 묘사된 적이 있다. 의사들이 학회로 잠시 부재한 상황에서 중환자실에 입원 중인 환자는 위급상황을 맞게 되었고, 의사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몇 십 분 정도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이 환자는 생사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전문간호사의 응급 처치로 이 환자는 위급한 순간을 넘기고 해피엔딩을 맞이하였지만, 그 후 벌어진 의료진의 상황은 해피엔딩은 아니었다. 전문간호사가 높은 수준의 지식과 기술을 가진 충분히 준비된 인력이며, 같은 상황이 반복되어도 전문간호사에게 그 상황을 맡길 것이라는 의사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의사의 지시 없이 독자적인 판단을 근거로 처치를 수행하였다는 이유로, 관련 의료진들은 매우 힘든 상황에 처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쉽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197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전문간호사제도는, 1990년대 들어서 빌 클린턴 정부가 수행하는 의료개혁의 일환으로 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전문간호사는 3차 의료기관에서 중환자나 암 환자 등과 같은 고위험 대상자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일차 의료기관에서 일차 진료를 담당하고 있다. 이들은 의사의 일부 권한을 위임받거나 동등한 권한을 가지고 환자를 관리하면서, 부족한 의사인력을 대체할 수 있는 효과적인 대안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를 위해 석사 과정에서 깊이 있는 지식을 습득함과 더불어 최신 기술 습득을 위한 임상 실습이 강조된 교육을 받은 간호사만이 전문간호사가 될 수 있으며, 복잡한 의사결정이 요구되는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업무를 수행하는 인력으로 양성되어 왔다.

▲ 성균관대학교 임상간호대학원(삼성서울병원) 전문간호사 과정 중 미국 실습 사진.

 중환자 전문간호사를 운영하는 경우 인공호흡기 적용 일수가 감소하여 의료비 절감의 효과가 있었다거나, 전공의 대신 전문간호사가 전문의와 한 팀이 되어 환자를 관리하는 경우, 수행하는 업무량은 더 많으면서 환자의 재원일수는 감소하였고, 환자의 치료 결과나 합병증 발생률은 비슷하였으며, 환자나 보호자의 만족도나 삶의 질 등에 긍정적인 영향이 있었다는 결과들은 전문간호사가 의사에 비해 비용-효과적인 인력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결과들이다. 즉, 전문간호사는 상급간호 실무를 제공함으로써 환자의 증상 개선 및 의료비용, 만족도, 삶의 질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력임이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전문간호사에 대한 법제화 이전부터 대형병원 중심으로 의료기관의 필요에 의해 이미 전문간호사가 운영되어 왔다. 일부 사립 대형병원들에서 시작된 전문간호사제도는 각 기관별로 운영이 확대되면서 요구가 높아지게 되었고, 정부는 이러한 요구를 수용할 의도로  법제화를 추진하였다. 법제화 추진 시 정부는 전문간호사 제도를 도입한 근본적 취지를 ‘ 전문분야에서 의사인력과 비교할 때 보다 비용-효과적인 인력이며, 전문적인 간호서비스의 제공을 목표로 실무표준화와 질적 수준의 유지 및 관리를 통해 소비자를 보호함과 동시에 전문직의 권익을 보장하고, 국가보건의료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도모하기 위함’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의료법 제 56조는 간호사 면허 이외에 전문화된 분야별 간호사를 인정한 것으로, 2006년 ‘전문간호사 자격인정 등에 관한 규칙’을 제정하여 총 13개 분야(보건, 마취, 정신, 가정, 응급, 산업, 노인, 호스피스, 중환자, 감염관리, 아동, 임상, 종양)로 확대하였다.
 현재 전문간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각 분야별로 제시한 임상경력을 충족하는 간호사가 석사과정인 전문간호사 과정을 이수한 후 국가에서 시행하는 전문간호사 자격 시험에 합격하여야 한다. 전문간호사 과정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고도의 이론과 실기를 요구하는 과정으로 실습이 강화되어 있으며, 자격증 취득까지 최소한 3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매년 약 800명 이상의 간호사들이 전문간호사 과정에 입학하고 있으며, 최근 2년 동안에도 매년 300-400명 이상의 전문간호사들이 배출되고 있다.
 외국에서는 전문간호사들이 비용-효과적인 인력임이 계속적으로 제시되면서 그 제도가 발전하여 왔다. 그러나, 의료 환경이 다른 국내에서는 전문간호사가 가질 수 있는 권한이 외국에 비해 작고, 의사의 권한에 대한 위임의 정도 등이 기관마다 다르므로, 환자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우리의 의료 환경에서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현재 간호서비스의 효과를 입증하는 결과연구는 국내에서는 초기 단계이다. 필자의 연구에서는 전문간호사의 간호서비스가 암환자의 통증 및 피로를 감소시키고, 만족도 및 삶의 질을 증가시켰으며, 예기치 않은 응급실 방문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음이 나타났다. 그러나, 경제성만을 중시하는 의료 환경에서는, 환자에게 미치는 이러한 긍정적인 효과가 간과될 가능성도 있다.
 현재, 암환자의 체계적인 관리를 위해 정부에서는 각 지역별로 지역암센터를 지정·운영하고 있고, 필수 인력으로 종양전문간호사를 고용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향후 만성 질환 관리나 감염 환자 관리 시 가정전문간호사를 운영하여 퇴원 후 지역사회에서도 지속적인 관리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정책이 나오고 있다. 이는 국가 차원에서 전문간호사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인정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에 의해 필수적으로 고용되어야 하는 이러한 전문간호사 인력은 극소수이며, 대부분의 전문간호사들은 고용의 주체인 각 의료기관의 필요에 의해 고용 여부가 결정되고 있다.
 경제성만을 중시하는 시각에서 보면 간호사는 소비의 주체이지 생산의 주체로 보이지 않는 경향이 있어, 현재 상태로는 전문간호사들을 고용한다고 해도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인건비만 오를 뿐이지 눈에 보이는 경제적 이득이 없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매년 수백 명씩 배출되는 전문간호사들을 고용 주체인 각 의료기관에서 경제적 이득이 없다는 이유로 고용하지 않는다면 어찌될 것인가? 따라서, 간호서비스가 환자의 증상이나 삶의 질 등과 같은 간호결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와 더불어, 비용-편익에 대한 연구들이 계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전문간호사가 제공하는 간호서비스의 건강보험 급여화는 가능한 것인지, 국내 현실에서 전문가적 상급 실무의 수준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 의사·전문간호사·간호사 간 행위의 중복 시 행위의 주체를 누구로 정할 것인지, 현재 의료기관별로 다양한 전문간호사의 행위를 어떻게 표준화 할 것인지 등이다. 할 일은 많고, 갈 길은 더디다. 그렇지만, 할 일이 많기에 더욱 힘이 날 수도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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