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를 기다리며>사뮈엘 베케트 지음 / 오증자 옮김

▲ <고도를 기다리며> 사뮈엘 베케트 지음 / 오증자 옮김

  사뮈엘 베케트(Samuel Beckett: 1906~1989)의 ‘고도를 기다리며(En attendant Godot)’는 1952년 파리에서 출간된 희곡으로 2막으로 구성된다. 이 희곡은 이듬해에 무대에 상연되면서 현대극의 흐름을 바꾸어 놓는다. 즉 이 연극은 전통적인 사실주의극에 반기를 든 전후 부조리극의 고전이 되고 이런 면을 높이 평가받아 사뮈엘 베케트는 1969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이 작품은 분량이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대화 형식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독자들이 쉽게 읽어나갈 수 있다. 그러나 작품에 담긴 의미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작가는 제목을 통해서 고도가 누구인지 그리고 왜 고도를 기다리는가라는 의문을 독자에게 던진다. 물론 고도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작품 속에 드러난다.
  그러나 왜 그들이 고도를 기다리는가를 밝히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작가는 고도의 정체를 철저한 익명성을 통해서 은폐시킨다. 따라서 고도는 독자들에게 그만큼 다양한 해석의 폭을 가진다. 독자는 등장인물들이 왜 고도를 기다리는가를 알기 위해서 작품 속으로 들어가 봐야 한다.
  작품의 내용을 등장인물들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등장인물은 모두 5명인데, 그들은 바로 블라디미르, 에스트라공, 포조, 럭키, 소년이다. 작가는 이 등장인물들을 1막에 등장한 순서대로 2막에도 등장시키며 고도를 기다리는 행위가 무한한 반복이었으며 앞으로도 끊임없이 수행되어야 할 노력임을 암시한다.
 인물들의 등장 순서는 짝을 이루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먼저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등장하고 이들은 막이 끝날 때까지 무대에 함께한다. 반면에 포조와 럭키는 막의 중간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며 소년은 막의 끝 부분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이를 사건의 흐름에 따라 나열하면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저녁 무렵에 어느 시골길 버드나무 밑에서 고도를 기다리다가 밤이 되면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포조와 럭키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고도를 기다리면서 대화를 나누며 무료함을 달랠 때 그 앞을 지나가는 행인들이다. 또한 소년은 포조와 럭키가 퇴장하고 나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에게 고도의 소식을 전하는 고도의 심부름꾼으로 고도의 염소를 지키는 인물이다.
 한편 등장인물의 관계를 살펴보면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매일같이 동일한 시간과 장소에서 고도를 기다리는 친구 사이인데 반하여 포조와 럭키는 주인과 하인의 관계를 이루는 인물들이다. 또한 소년은 이 희곡 속에서 등장하지 않는 고도의 심부름꾼으로서 고도가 실재함을 증명하고 나아가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에게 내일이면 고도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의 소식을 전하여 그들의 무료하고 지루한 기다림을 부여하는 매개자이다.
  독자는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통해서 살펴봄으로써 작가가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의미를 포착할 수 있다. 작가는 블라디미르의 대사를 통해서 인간의 삶에 대한 자세를 투영한다. 블라디미르는 포기하려는 자에게 ‘안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떨쳐버리려고 아직 다 해본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것을 통해서 독자는 고도를 기다리는 데에는 끈기가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작품 내에 작가가 심어놓은 의미이고 작품 밖에서 볼 때 독자가 찾을 수 있는 의미는 대화이다.
 에스트라공은 극 중에서 낮잠을 여러 번 자고 꿈을 꾸는 데 반하여 블라디미르는 낮잠 대신에 사색을 많이 하지만 결국 외로워서 에스트라공이 자는 것을 방해한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작가가 희곡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대화를 고독에서 해방시켜주고 존재하게 만드는 장치로 삼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작가는 데카르트의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주장을 변형하여 ‘대화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입장이다.
  얼핏 보면 이 작품에 지껄여진 대사들이 아무 의미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왜 고도를 기다리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을 책을 읽고 나서 독자 스스로 해석해 봄으로써 대사들에 담긴 다양의 의미를 반추하는 것이 이 책의 묘미이다. 물론 이러한 의미 부여는 각자의 몫이다. 그런 점에서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고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 읽는 것도 이 작품을 해석하는 하나의 방식임은 틀림없다. 여러 번 읽어 보면 볼수록 여러 의미를 포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독자에게 이 작품이 단순한 기분전환이나 심심풀이 이상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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