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 우주: 우주론의 황금기

▲ 고석태(과학교육과)교수

 2009년 한국에서 나로호의 성공적 발사를 위하여 한창 준비하고 있을 즈음 같은 해 5월 14일에  유럽우주항공국(ESA)은 남미 프랑스령 가이아나(French Guiana)에서 PLANCK 위성을 성공적으로 궤도에 쏘아올린 후 샴페인을 터뜨리고 있었다. PLANCK 위성은 대폭발(빅뱅) 이후 퍼져나온 초기 우주의 빛 (우주배경복사)를 측정하기 위한 것으로 미국 NASA에서 성공적으로 수행한 우주배경복사 관측(COBE와 WMAP) 이후 유럽에서 관측을 수행하는 첫 위성이다. 우주배경복사는 1965년 펜지아스와 윌슨에 의해서 최초로 측정된 이후 정상상태 우주론을 대신하여 대폭발(빅뱅) 이론이 표준우주모형으로 자리를 잡게 만든 초기 우주의 유물이다.
 현대우주론 연구의 본격적인 시작을 펜지아스와 윌슨의 우주배경복사 관측으로 본다면 WMAP과 PLANCK 위성의 우주배경복사 관측 실험은 “정밀 우주론시대” 혹은 “우주론의 황금기”를 여는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우주에 대한 관심은 인류가 하늘을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시작됐을 만큼 오래됐지만 관측과 측정 기술의 한계로 형이상학적인 담론을 나누는데 그쳤다. 지금부터 겨우 40~50년 전만 하더라도 우주론 연구를 한다는 것은 과학을 한다기 보다는 뜬구름을 잡는 식의 연구로 치부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우주론 연구의 부흥기를 맞이하고 있다. 톰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핀의 모험으로 잘 알려진 마크 트웨인은 “사실(Fact) 앞에서 이론(Theory)은 그저 공허할 뿐이다”라고 했는데, 과학의 발전에 있어서 관측과 실험의 조화없이 단지 이론적인 모형 연구를 했을 때의 한계를 지적하는 말로 받아들여진다.

▲ PLANCK 위성이 측정한 첫 우주배경복사 지도

 우주(宇宙)의 宇는 공간(space)를 뜻하고 宙는 시간(time)을 뜻한다. 서양에서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나온 이후 상대적인 시공간 개념과 시공간의 휘어짐이 중력을 기술함을 알게 됐고 이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우주론 연구가 시작된데 비해서 동양에서는 오래전부터 우주론(cosmology)이란 시공간을 기술하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이 발표된 후, 먼 은하들일수록 우리 은하로부터 더 빨리 멀어진다는 허블의 관측과 비슷한 시기 프리드만과 르메뜨르의 아인슈타인 방정식으로부터 얻은 팽창하는 우주의 해 등은 정적인 우주보다는 팽창하는 우주를 선호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팽창하는 우주 모형의 가장 큰 문제점은 초기 우주로 거슬러 올라가면 특이점을 만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 멀어지는 은하를 설명하는 방법으로 본디, 골드, 그리고 호일 등에 의해서 제안된 정상상태 우주론이 설득력을 얻게 된다. 이 모형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기 때문에 특이점과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상상태 우주론은 멀어지는 은하와 균질-등방 우주를 설명하기 위해서 물질들이 계속 빈공간에서 생겨나야 한다.
 대폭발 모형과 정상상태 우주론 모형이 서로 경쟁을 하다가 펜지아스와 윌슨의 우주배경복사 관측을 통해서 두 모형 사이의 경쟁은 대폭발 우주 모형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정상상태 우주론은 우주 전역에 펼쳐져 있는 우주배경복사를 설명할 수 없다. 우주배경복사의 관측은 우주론 연구에 대한 물리학자들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는데, 주된 이유 중의 하나는 대폭발 우주 모형이 갖고 있는 근본적 문제점들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i)왜 우리 우주는 편평한가? ii) 왜 처음에 인과관계에 놓여있지 않던 두 지역의 복사 온도가 지금은 똑같은가? iii) 어떻게 균질하고 등방적인 우주에서 은하와 같은 거대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는가? 등 대폭발 모형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었다.
 대폭발 모형의 문제점은 1980년 알란 구스가 인플레이션 모형을 제시하면서 해결되었다. 인플레이션 모형에서는 우주 초기 짧은 시간 동안 급격한 가속팽창을 일으키는 시기가 존재했었고 그 후 다시 대폭발 우주모형에서 얘기하는 감속 팽창하는 시기로 전이된다는 것이다. 이후 많은 물리학자들이 인플레이션 모형 연구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지구 상공에 위성을 띄워 직접 우주배경복사의 온도를 측정하는 실험을 기획하게 됐고 1989년 COBE 위성이 최초로 우주배경복사 온도를 측정하게 되었다. 인플레이션 모형은 COBE 관측의 결과를 잘 예측하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현재까지 표준우주모형은 인플레이션 모형 + 대폭발 모형의 조합임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주론 연구의 끝이 보이는 것 같았던 20세기 말-정확히 말하면 1998년- 또 한 번 전세계 우주론 연구자들을 놀라게 하는 초신성 관측결과가 발표된다.1) 초신성 관측을 통해서 밝혀진 사실은 현재 우리 우주는 인플레이션 시기처럼 다시 가속팽창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한 번 표준우주모형을 정비할 필요가 생겼다. 당시까지 우주는 95%의 암흑물질2)과 5%의 관측 가능한 물질로 구성되었을 것이라고 알려졌었는데 이와 같은 물질분포로는 가속팽창을 일으킬 수 없다는 것이 새로운 딜레마였다. 새로운 가속팽창을 설명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에너지원을 도입할 필요가 생겼고 그 정체를 모르는 에너지원을 암흑 에너지로 부르고 있다. 현재 우주의 가속팽창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70%의 암흑에너지, 25%의 암흑물질, 그리고 5%의 관측가능한 물질 분포를 가져야 한다. 즉 95%의 우주 구성물질은 아직 그 정체를 알 수 없고 관측도 안되는 물질이다. 이런 이유로 현재 우주를 ‘암흑 우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현재 이 새로운 가속팽창 현상을 더욱 정밀하게 검증하기 위해서 많은 관측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거나 예정 중에 있고 이론적으로 암흑 물질은 물론 암흑에너지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서 다양한 분야(초끈 이론, 입자물리, 양자장 이론, 천문학, 우주론 등)의 물리학자들이 참여하여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을 “우주론 연구의 황금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한 사실(Fact)이 없는 이론(theory)이란 얼마나 공허한가를 경험하게 해준 시기라고 볼 수도 있다.
 우주론 연구의 중요성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증가해갈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현재 지구상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높은 에너지는 유럽 CERN의 거대양성자가속기(LHC)에서 얻을 수 있는 14TeV3) 이다. (현재까지는 7TeV까지 도달했다.) 이 에너지는 양성자가 거의 빛의 속도로 움직을 때 얻을 수 있다. 이보다 높은 에너지는 당분간은(아마도 앞으로도 상당히 오랫동안) 지구상에서 구현하기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이보다 높은 에너지에서 나타나는 입자들을 연구하기 위한 대안은 초기 우주를 연구하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양자 중력이론이나 초끈 이론같은 물리의 근본이론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고에너지가 필요하고 초기 우주에서는 이런 근본 물리 이론들이 역할을 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근본 물리 이론을 검증하기 위해서 초기 우주에서 시공간의 요동으로 생긴 중력파를 측정할 수 있다면 다른 입자들과 상호작용을 하지 않기 때문에 대폭발 시점의 정보를 우리에게 전달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력파의 세기가 너무 미약해서4) 아직까지 직접적인 측정엔 실패했지만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점점 정밀도를 높여가면서 중력파를 측정하기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우주의 크기는 유한한 빛의 속도로 인해서 인과율로 제한되어있다. 하지만 최근의 근본물리 이론연구에서는 단일 우주(Universe) 외에 다중 우주(Multiverse)가 존재할 수도 있다고 제안하고 있는데 과연 이 이론이 맞다면 어떻게 인간의 인식한계를 벗어나는 다른 우주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을것인가 하는 문제제기를 할 수도 있다. 만일 빛의 속도가 일정하지 않고 에너지에 의존한다고 하면 (즉 로렌츠 대칭이 깨진다면) 우리 인식영역에 어떤 현상이 벌어질 것인가? 현재 우주의 가속팽창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주에 특정한 중심은 없다는 코페르니쿠스적 원리를 버리고 우리 은하가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을 가져와야 할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질문들은 현재 우주론 연구를 통해서 제기되는 것이며 이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은 단지 물리학의 문제만이 아님을 보여준다.


1)과학전문잡지인 SCIENCE지 1998년 12월호 표지에 “올 해의 대발견”으로 소개되고 있다.
2)암흑 물질은 다른 입자들과 전자기 상호작용을 하지 않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검출할 수 없다.
3)1eV (전자볼트)는 1V의 전위차가 걸려있는 곳에 전자가 놓여있을 때 얻을 수 있는 에너지이다.
4)중력파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1m 길이의 정도의 길이 변화도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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