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길현 교수

 평화의 섬 제주가 갈등의 섬 제주가 되고 말았다. 강정 해군기지 때문이다. 애초에 정부가 제주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하게 된 배경과 취지는 제주에 군사기지를 건설하겠다는 목표와는 상치되는 것이었다. 강정 해군기지를 둘러싸고 미래 비전과 가치관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견해 차이는 2002년부터 9년이 지나는 동안 전혀 해소되지 않은채 흘러오고 있다. 
 세계평화의 섬 제주는 21세기 탈냉전과 세계화 시대에 제주가 관광-교역-정상회의 등 비군사적 방식으로 국제적 교류협력에 적극 나서는 과정에서 동아시아 평화와 공동번영을 도모하는 데 일익을 담당하겠다는 거대 비전이다.
 이에 비해 제주 해군기지는 미래전에 대비하는 대양해군 기치에 준거하여 첨단장비로 해군전력을 강화해 나가는 해양안보의 한 방식이다.
 세계평화의 섬 제주나 해군기지 모두 정부가 제주의 지정학을 활용하려는 21세기 국가전략이지만, 그 차이는 적지 않다. 제주 해군기지보다는 세계평화의 섬 제주가 더 솔깃하고 품격이 있어 보이는 이유는, 제주가 세계로 나아가는 방식에서 제주를 기점으로 하는 대양해군력보다는 제주의 사람-자본-상품-아이디어-문화가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서는 활달함이 더 21세기 미래에 어울리는 제주의 비전일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9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가능하면 제주가 해군기지가 아닌 동아시아 정상회의의 장소이자 남북한 교류협력의 선봉지이고 각종 문물이 자유롭게 오가는 국제자유도시로 자리 잡기를 기대해 왔다.
 제주에 해군기지가 들어서지 않을 경우 대한민국의 안보가 얼마나 위태로울 것인가의 의문에 대한 답이 지난 9년 동안 널리 수용되지 못한 것도, 강정 해군기지 논쟁의 한 요인이다. 남태평양이나 말라카 해협 등의 해양수송로에 대한 위협이 존재한다면, 이러한 위협은 대한민국 해군 혼자의 힘으로 처리하려고 하기보다는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간의 국제협력을 통해 해결하는 게 더 21세기 제주 비전에 어울려 보인다. 왜냐하면 제주는 그러한 국제협력을 위한 논의와 회의 및 지혜 창출의 장으로 역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1년 6월 강정 해군기지는 마지막 고비를 맞고 있다. 이미 일정한 수준으로 진행된 해군기지 공사 절차를 어떻게든 마무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해군을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강정마을회와 평화·생태 애호가들은 물론이고 뜻있는 문인-문화예술가-종교인-교수들은 강정 해군기지 추진의 절차적 하자와 합당성 결여를 이유로 들어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고 있다.
 제주의 야5당과 제주도의회, 많은 제주시민단체들도 2014년을 목표로 무리하게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밀어붙이는 해군에 대해 일단 숨고르기를 요구하고 있다. 몇 달 혹은 몇 해 늦는다고 대한민국 안보가 긴박한 위협에 노출되는 게 아니라면, 다수의 제주도민들이 이의를 제기하는 강정 해군기지 추진을 잠시 멈추고는, 제대로 숙의를 해 보자는 것이다.
 특히 2011년 5월 국방부가 ‘북한의 비대칭 위협 등 국지도발 및 전면전 위협 대비에 주력’하는 방향으로 국방개혁을 변화시키고 있는 움직임에 발을 맞춘다면, 이지스함 등 대형함정 건조와 연결된 강정 해군기지 건설도 잠시 중단하고는 앞으로 이를 어떻게 할 것인지 지혜를 모으는 게 더 민주정부의 도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마침 화순항에 해경부두를 건설하고 있기에 이 부두를 더욱 확대해서 유사시에는 언제든 해군이 이 부두를 군용으로 쓸 수 있도록 하면 어떤가의 제안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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