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늘한 바람이 귓가를 스치고 한라산의 첫눈 소식이 들린다. 겨울이 다가옴을 알리는 자연의 신호라 할 것이다. 인간의 과학문명이 아무리 발달했다고 하더라도 자연의 흐름을 잠시 피할 수 있을 뿐 이를 늦추거나 막을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의 삶에서 자연의 질서와 인간의 질서간의 관계설정은 서양의 규범학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단적으로 말하면 자연의 질서는 기계적으로 그리고 본능적으로 움직여 가는 질서이며, 인간에게는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해가기 위해서는 자연의 질서와 구분되는 인간만의 질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연을 약육강식의 질서로 이해하였으며, 인간에게 질서를 세울 수 있는 규범이 만들어지지 않는 이상 인간세계도 '만인이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가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그 누구도 자유로이 살아갈 수 없으며, 따라서 혼란상황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국가와 법률을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 반대편인 동양에 사는 사람들은 그와는 달리 생각했다. 인간질서는 자연질서에 합치되면 될수록 규범의 완성도가 높아진다고 보았다. 따라서 동양의 사람들은 법은 자연의 질서 속에서 인간질서를 발견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자연에 대한 치밀한 관찰 속에서 강자는 약자를 먹이로 삼지만 결코 약자를 모두 잡아먹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원금은 정기예금을 하고 나오는 이자만을 가지고 살아가듯이 자연 속에서 생산되는 잉여물을 먹으며 살아감으로서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여기서 인간에게는 다른 존재자들과 다른 능력이 있음을 알게되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다른 존재자의 생존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기준으로 언어사용, 직립보행, 도구사용, 사회구성 등을 든다. 하지만 그러한 기준들은 생태계의 연구를 통하여 의미 없음이 속속히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들뿐만 아니라 다른 생명체를 생육을 도와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은 충분히 구별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능력을 가진 인간은 단지 인간만의 삶뿐만 아니라 생태계 전체의 공존에 대한 책임이 있는 존재라고 파악한다. 따라서 인간의 규범은 인간만이 생존하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인간과 주위의 생태계가 모두 살아가기 위한 조건을 형성하는 것이었다.
오늘날 환경권이라는 것이 권리의 하나로 등장하고 있다. 인간은 쾌적한 환경에서 살 권리가 있으며 그러한 의미에서 환경을 보호하고자 한다. 예전에 개발의 대상에서 보호의 대상으로 그 인식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도 자연을 인간생존의 수단으로서 가치를 인정할 뿐이며 같이 공존해야하는 존재임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자연에 대한 올바른 이해 없이 행해지는 무분별한 개발 속에서 파생되는 재해를, 우리는 편리함이라는 이유를 들어 묻어버리려 하고 있다. 차가운 바람에 옷깃을 여미듯 우리에게 자연에 대하여 좀더 겸허한 태도가 필요한 것은 아닌지 반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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