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현돈(철학과 교수)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심하고 현실사회에 둔감한 젊은이들이 촛불을 들었다. 미선이와 효순이가 미군 장갑차에 치어 꽃다운 목숨을 잃었을 때도, 광우병 쇠고기 수입으로 온 나라가 들썩일 때도, 금수강산의 생태를 유린하고 환경재앙을 일으키는 4대강 개발에도, 청정한 평화의 땅을 중장비로 깔아뭉개 군사기지를 만들려는 국가권력의 횡포에도 애써 광장을 외면했던 그들이 아닌가.
 등록금 문제가 그만큼 절박했던 터수라 여기자. 시급 3~4천원을 받으며 새벽같이 알바를 하다 지친 기색으로 강의실 구석 자리에서 졸고 있는 학생들을 보면서 알바를 위해 공부를 하는 것인지, 공부를 위해 알바를 하는 것인지 조차도 헛갈릴 때 세상에 대한 알 수 없는 적의를 느낀 적이 어디 한 두 번이든가.
 이 ‘미친 등록금의 나라’에 마땅히 분노해야 한다. 지키지 않아도 좋은, 아니 지키지 않아야 더 좋을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의 다른 이름, 4대강 개발엔 목숨이라도 걸듯이 달려들면서 지켜야 할 반값 등록금 공약엔 어물쩍 넘어가려는 MB 정부의 뻔뻔스런 얼굴엔 침이라도 뱉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반값 등록금 투쟁이 등록금을 반으로 낮추라는 선언적 의제에만 매달려 천정부지의 등록금 그 이면에 있는 본질을 놓치고 있는 것 같아 대학에 몸담고 있는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쓴 소리를 하나 보탠다.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우리가 정작 제대로 알고 분노해야 할 것은 ‘미친 등록금의 나라’ 이전의 ‘미친 학벌사회의 나라’이다. 어디 한 번 곰곰이 따져보자. 세계에서도 유례없는 비싼 등록금의 나라와 세계에서도 유례없는, 80%를 웃도는 대학진학율, 이 두 지표 간의 메울 수 없는 괴리에 세계에서도 유례없는 공고한 학벌주의의 괴물이 버티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젊은이들이 운집한 거리에 나가 ‘어이 대학생!’이라고 부른다면 아마 열에 여덟, 아홉은 다 뒤들 돌아볼 것이다. 전국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언제 이런 대학이 있었냐고 고개를 갸우뚱거릴 생소한 이름의 대학 간판들을 자주 본다. 대학생이라서, 대학 졸업자라서 자부심을 갖지 못하고 오히려 그 자체가 부끄럽거나 초라해 보이는 사회, 그러나 아무리 하찮게 보여도 대학 졸업장을 손에 쥐어야 그나마 사람 행세를 할 수 있는, 수학능력에 관계없이 들어오기만 하면 졸업이 보장되는 학벌사회의 구조적 병폐부터 바로 잡을 생각은 하지 않고, 반값 등록금 타령을 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그런 구조악이 수백에서 수천 억의 적립금을 쌓아놓고, 부동산 투기나 일삼고 수익사업을 하며 고액 등록금으로 돈놀이에 혈안이 된 사이비 악덕 사학을 양산했다.
 80년대 이후 우리사회에서 심화된 학벌주의의 비근한 예를 보자. 60~70년대엔 신규 은행원의 90%이상이 고졸 출신이었다. 고졸의 학력이라도 일상의 은행 업무에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 80년대 이후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었다. 은행원의 90% 이상이 대졸 출신으로 충원되었다. 계산의 도구가 주판에서 컴퓨터로 바뀐 것 말고는 은행 업무의 질이 특별히 대졸 학력이라야 수행 가능한 정도로 변화된 것은 아니다. 공채로 임용된 5급 공무원(지금의 9급 공무원) 역시 90% 이상은 고졸 출신이었다. 상고를 나와도 고시에 합격하여 판사, 변호사를 거쳐 대통령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는 사회가 아니든가.
 경제 성장의 속도를 앞질러 갈수록 학력 인플레가 기형적으로 가속화되었다. 그것은 서울대를 정점으로 전국의 대학을 일렬로 줄 세우고, 질적 측면에 대한 고려 없이 실없이 몸집만 키워 대학을 오직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킨 역대 정부의 파행적인 대학교육 정책에 책임을 물어야 할 일이다.
 미친 학벌사회의 나라에 대한 근본적인 고뇌나 성찰 없이 등록금 문제만 부여잡고 있는 것은 중병으로 입원한 환자 앞에서 고액의 의료비를 초래한 발병의 원인은 도외시 하고, 병원비만 반값으로 깎아달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다름 아니다. 행정적인 통제는 강화하고, 재정적인 지원은 줄여 결국 부족한 재원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등록금 인상을 부채질 할 정부의 국공립대학 법인화에도 비판의 눈을 부릅떠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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