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참으로 혼란스럽다. 아침에 진실이 저녁에 거짓으로 뒤바뀌는 혼란과 혼돈 속에 살면서, 이쪽이 옳은지 아니면 저쪽이 옳은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TV 뉴스를 보면 여기저기서 이권단체들이 붉은 색 옷과 머리띠를 두르고 집단의 의지를 관철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물론 나름대로 명분과 논리가 있고,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방법이겠지만 사회의 모습이 너무도 양극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우리사회 속에 만연된 이기주의적 집단행동, 사회적 혼란과 불신 등에 의한 극단적인 현상들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과학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어제 사용했던 아날로그식 제품들은 언제 사용했는지도 모를 정도의 구식이 되어버린 디지탈 시대에 살고 있어서 그러한가. 그래서 우리들 사고도 복잡한 것보다는 간편한 코드(cord)식 논리에 친숙해지고 코드에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내편, 네편’, ‘아군이냐 적군이나’하는 이분법적 사고와 편협한 인간관계가 만연해져서 그러한가.
아니면 지난 수십년 동안 억압과 절제된 자유에서 벗어나 너무 많은 자율과 방임에 쉽게 익숙해져 공동체 삶 속의 질서와 규율을 망각해서 그러한가. 이렇듯 지금 우리들은 새로운 질서와 가치관이 채 정립되지 않은 신 격동기 시대에 살고 있는 듯하다.
인간이 사는 곳에 항시 혼란과 무질서가 있어 이를 법과 규율로 정리하듯 과학에도 자연의 혼돈에 관한 이론과 사물의 형태를 이분법으로 양분할 없다고 보는 이론이 있다. 카오스(chaos)이론과 퍼지(fuzzy)이론이 그것이다. 카오스란 말은 우리말로 ‘혼돈’이라는 뜻으로 번역되는 단어로 사전적 의미로는 ‘천지창조 이전의 대 혼란 또는 무질서’의 뜻으로 쓰이며, 코스모스(cosmos)와는 상대적인 개념의 단어이다.
최근 많은 과학자들은 대기의 흐름, 물의 흐름, 해안선의 생성된 모습 등 비 선형적 현상을 연구한 결과, 혼란스럽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 같은 매우 복잡한 자연 현상들도 일정한 규칙과 단순한 행동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혼돈 속에도 일정한 규칙이 있어 그 규칙에 따라 진행하는 것이 카오스 이론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퍼지이론은 어원에서 보듯이 일반적으로 ‘애매모호 함’이란 뜻이 있다. 인간의 말이나 행동, 사고, 평가는 매우 주관적이어서 구체적인 수치로 규정하기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
따라서 퍼지이론은 인간의 형태를 이분법에 의해 양분할 수 없다고 단정짓고 확률적인 이론을 도입하여 모호한 기준과 표현까지도 수용하여 파악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이렇듯 언듯 보기엔 너무도 혼란과 혼돈 속 있는 자연현상들이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정한 규칙 속에 움직이고 있으며, 퍼지이론으로 이분법적인 논리보다는 가장 인간적인 것을 찾아 내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다행스런 일이 아닌가?
우리도 언제쯤이면 내가 소중하듯 상대방이 소중함을 이해하고, 상호 이익 추구하면서 혼란스러운 것 같으면서도 그 속엔 질서와 믿음이 있는 세상에서 살 수 있을까?
잠시 머물다 두고 갈 우리 땅에서, 우리 제주에서, 보다 더 좁게는 우리대학에서 서로 다른 주장과 비판 속에 놓여 있는 문제들도 언제쯤이면 어느 길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기 어려운 이 혼란과 혼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제 아침저녁으로 스산함이 느껴지는 초겨울에 ‘무소유’의 삶을 살아가는 법정스님의 말씀인 ‘어제는 지나갔으니 내 것이 아니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으니 내 것이 아니오. 오직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만이 내 것이니....’을 한번쯤 되새기며 그래도 우리의 몫이 될 내일은 카오스이론으로 우리가 직면한 혼란과 혼돈 속에서 질서와 규칙을 찾아내고, 거기에 퍼지이론을 가미시켜 이분법적 논리가 아니라 서로 조금씩 양보하면서 서로를 보듬아줄 수 있는 아름다운 감정을 담겨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야 우리 젊은 대학생들이 희망과 믿음을 갖고 내일을 기다릴 수 있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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