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홍선(중어중문학과 교수)

 개강입니다.

 여름 방학 때 제가 만사 제쳐두고 꼭 하는 일은 2학기 수업 중 중국현대문학사라는 중어중문학과 필수 과목의 레포트 제목을 정하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두 가지 요소를 결합하는 것이 제 원칙입니다. 두 요소 중 하나는 중국현대문학사 최고의 명작이라 할 수 있는 노신(魯迅)의 「아Q정전(阿Q正傳)」을 읽힌다는 것이고, 나머지는 최근 국내외에서 발생한 기억할 만한 사건 혹은 방학 중에 제가 접한 학문적인 이론 등입니다. 그리고 이 제목들이 인터넷에서 유포되지 않을 것이어야 한다는 것도 고려합니다.

 「아Q정전」의 주인공 아Q에게는 인류의 취약한 단면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원래 아Q의 성격을 규정짓는 것은 ‘정신승리법’이라는 자기합리화입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객관적으로 분석 비판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분투해나가는 것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혹은 이상적인 모습이라면 아Q에게는 이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모든 상황을 자신에게 편리한 쪽으로 해석하고는 망각이라는 수단으로 하루하루를 아무 생각 없이 지내다가 결국은 자신이 왜 죽는지도 모른 채 세도가들에 의해 희생양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이러한 정신승리법이 원래는 아Q만의 것으로 혹은 당시 중국인들의 문제인 것으로 해석되었다가, 점차 인류 전체에게 내재되어 있는 본성의 일부로 해석되면서 「아Q정전」이 계속 관심과 연구의 대상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멜라민 파동이 났을 때, 저는 멜라민 파동과 아Q의 관계를 밝혀보라는 과제를 냈습니다. 그야말로 중국 근대화의 최대 과제였던 각성과 계몽이라는 문제마저 아직 해결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생명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 혹은 수단과 방법의 정당성의 결여라는 면에서 바로 연상되었으니까요. 배우 최진실이 자살했을 때는 아Q와 최진실을 비교해보라 했습니다. 한 사람은 극단적인 자기 합리화에 빠져 있고, 한 사람은 극단적인 자기비하에 빠져 있는 것으로 보여서 두 사람을 섞어 놓은 생활 태도가 우리에게도 필요하다는 답을 기대했습니다.

  프랑스의 심리학자 자크 라캉을 접한 다음 학기에는 학생들에게 자크 라캉도 소개하고 싶어져서 라캉의 이론으로 아Q를 분석해보라는 숙제를 낸 적도 있습니다. 타자의 시선을 의식함으로써 자기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자신을 객관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작년에 천안함 사건이 났을 때는 학생들이 한국의 현재에도 관심을 기울이기를 바라면서「아Q정전」과 천안함의 관계를 밝혀보라 했습니다. 자신의 운명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약소국 국민의 비극이 너무 닮아 보인다는 답을 바랐습니다.

 이번 학기 숙제는 제가 방학 때 학생들과 북적북적 프로그램을 통해 같이 봤던 『매트릭스로 철학하기』가 큰 도움이 되어 ‘아Q와 영화 매트릭스 비교해보기’입니다. 이번 학기 숙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면 안 되겠지요. 그러나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제가 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훌륭하고 기발한 레포트가 5~6편은 꼭 나오리라 기대합니다.

 위에서 제가 열거한 주제들은 대부분 언뜻 보기에는 전혀 상관관계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인문학에는 정해진 답이 없습니다. 생각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인문학의 최고 목표이고, 사람마다 다양하게 생각하고 그 생각에 근거해서 자신만의 논리를 세워나가면 다 정답이겠지요. 이를 위해서는 독서와 부단한 사고 외에는 답이 없습니다. 제가 모든 수업에서 과제물로 독후감을 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고 우리 학교 기초교육원에서 북적북적이라는 훌륭한 프로그램을 통해 독서를 장려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독후감과 레포트는 그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의 한계로 인해 중국현대문학사 수업의 레포트에만 이메일 형식으로 평가를 해주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레포트와 평가를 한 학기에 2회씩만 주고받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글쎄 그게 언제쯤 가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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