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시아를 보는 또 다른 시각

▲ 정창원(사학과 교수)

현재 국제사회는 거대한 힘의 이동에 주목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하나의 중심에서 벗어난 다(多)중심체제의 역학관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적 접근이 요구된다.

 새롭게 재편된 동아시아의 국제질서 속에서 중국은 대국으로 다시금 등장하였고, 동아시아인의 역사적 기억 가운데 잔재한 중화제국의 이미지 또한 점차 되살아나고 있다. 이로 인해 상생과 협력이라는 시대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난 중심과 주변이라는 종속적 개념의 질서가 재등장할 것이라는 위기감 또한 자연스럽게 대두되고 있다.

 전통시대 중국이 주도하였던 화이(華夷)질서는 서양 제국주의의 경제ㆍ군사ㆍ외교 등 전방위에 걸친 침탈과는 다른 대형(大兄)ㆍ종가(宗家), 혹은 종법적(宗法的) 관념에 의한 동양적 리더십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근원 자체는 예(禮)를 중심으로 하는 중국 중심주의적 관계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근대에 이르러 화이질서를 대체하며 등장한 일본 역시 ‘아시아주의’라는 명목아래 서양의 제국주의 침략모델을 아시아지역에서 그대로 답습하며 지역의 새로운 맹주로 자리매김하였고, 이후 패전으로 인해 아시아 공영권으로 포장된 전통적 제국주의 노선은 타의에 의해 마감되었다. 하지만 그들 스스로의 역사인식에서 보이는 태도는 주변국으로 하여금 불안감을 떨쳐버리지 못하게 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 국가가 동아시아 지역에서 새로운 패권으로 등장했을 때에는 주변국가에게 전근대적이고 불평등적인 질서가 타의적으로 요구되어지리라는 예측 또한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비록 주변에서 인식하는 전통적 관념의 제국 혹은 제국주의적 이미지가 현재의 상황에서 그대로 적용되어 질 수는 없겠지만, 동아시아 지역에서 두 개의 강대국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주변국에는 심각한 위기의식으로 인식될 수 있다.

 서로가 다중심적인 관계설정에서 벗어나 하나의 중심으로 자리매김 하려 할 때 중심과 대칭되는 주변은 필연적으로 생겨나게 될 것이고 더하여 그 주변에 대해 전통적 화이질서 혹은 일본제국주의 질서의 강요와 같은 어두운 역사의 기억이 다시 살아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줄만 알았던 제국 혹은 제국주의에 우리는 왜 아직까지 그토록 우려하며 집착하고 있는 것인가. 무엇이 오늘날 동아시아 지역사회의 협력과 공동번영에 장애가 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역사에는 전면적 단절이 있을 수 없으며, 또한 과거는 현재를 상당히 구속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 지역의 역사에는 커다란 하나의 중심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여러 개의 소중심이 서로 축을 이루며 대등하게 역사를 구성하고 있다. 제국과 제국주의에 의한 질서와 지배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야누스적인 의미를 지닌다.

 패권안정이론가들의 정치학적 표현에 의하면, ‘거인’이 국제체계에 출현할 때 질서가 형성되고 발전할 가능성이 커진다’라고 하지만, 이것은 단지 국제사회 전체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이타적 존재이기에 질서형성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평화보다는 자신의 국가이익을 더 중시하면서 질서를 구축하는 대단히 자기중심적인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동아시아에서도 이러한 거인들이 다시 등장하려하고 있으며 이들은 단지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단순한 물질적 욕구를 넘어 자국을 중심으로 한 역사의 왜곡된 서술로 자국의 역사를 미화하고 팽창하려는 정신적 욕구 또한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고래로 동아시아 지역에서 형성된 각국의 체제나 사회적 흐름은 서로의 지정학적 특성과 요구에 의해 진행되어 왔고, 이것은 전근대 사회에서 동아시아 사회의 흐름을 주도했던 국가와 그에 능동적으로 대응했던 주변국가의 정치적 또는 사회적 양상에서 기인한다. 때문에 지금은 바로 동아시아인들이 ‘미래지향적이고 다 중심적(혹은 주변중심적)인 새로운 지역공동체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과거의 일원적 질서체계로 회귀하고 말 것인가’라는 당면한 문제에 대해 탈 중심ㆍ탈 경계적인 흐름을 정확히 인지하고 성찰하는 것이 필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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