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신(에너지공학과 교수)

  지난 9월 미국에서 시작된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는 시위는 점차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월스트리트’는 아메리카 신대륙 정착 초기에 인디언의 공격을 막기 위해 성벽을 둘러친 것이 계기가 되어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이제는 세계의 금융 중심지가 된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는 구호에서 알 수 있듯이 시위대의 주장은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불러일으킨 금융자본의 탐욕을 무너뜨리겠다는 것이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귀가 아프게 들었던 이른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비롯한 각종 금융위기의 원인과 해결 과정에서 나타난 ‘이익의 사유화’와 ‘손실의 공공화’가 결국은 참다못한 시민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금융위기의 원인을 제공하면서 막대한 이익을 올린 이들이 금융부실의 손실을 공공에게 떠넘겨 놓고서도 이제는 탐욕의 요새가 된 ‘월스트리트’ 안에서 여전히 엄청난 보너스를 챙겼던 것이다.

 미국의 상위 1% 자산가가 미국 전체 부의 1/3을 차지한다고 한다. 미국보다 덜 하다고 하지만 우리나라도 이러한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에 발표된 가계금융 현황에 의하면 우리나라 순자산의 50%를 소득 상위 10%가 가지고 있다.

 불평등과 편중의 현상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용어로 이탈리아의 경제학자인 파레토의 이름을 딴 ‘파레토 법칙’이 있다. 80-20 법칙으로도 불리는 이 법칙은 100여 년 전에 파레토가 관찰한 이탈리아의 토지 소유 현황에서 유래한다. 당시 이탈리아 토지의 80%를 20%의 인구가 소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 그는 자신의 콩밭에서 나오는 수확의 80%가 20%의 콩깍지에서 나온다는 사실도 확인하였다고 한다.

 파레토 법칙을 설명할 때 백화점 매출의 80%를 20%의 고객이 올린다거나 제품생산의 80%가 20%의 근로자에게서 나온다거나 따위의 예가 많이 언급된다. 경제나 경영 분야에서 많이 활용되는 이 법칙을 시험 점수에 적용한다면 얻은 점수의 80%는 공부한 시간의 20%에서 나온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숫자는 큰 의미가 없다. 90-10일 수도 99-1일 수도 있다. 절대 다수의 결과가 절대 소수의 원인에 의한다는데 의미가 있다. 인위적으로 조절하지 않는다면, 예컨대 백화점에서 1인당 구매 한도를 소액으로 정해놓는 식으로 제약하지 않는다면, 소수의 원인이 다수의 결과를 낳는 많은 불평등과 편중의 사회현상을 비켜가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불평등과 편중의 사회현상은 불가피해 보인다. 파레토가 관찰한 또 다른 예가 있다. 그가 농민들의 소득을 살펴본 결과도 앞서의 경우와 유사하였다. 풍년이 들었을 때에도 하위 20%는 여전히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었고 아무리 흉년이 들더라도 상위 20%는 여전히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정확한 원인이야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개개인의 근면함과 효율성이 차이일 수도 사회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그저 운일 수도 있다. 운이야 하늘의 뜻으로 냉정한 확률이니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자연의 법칙이란 것이 불평등을 조장하는지도 모른다. 아니 원래 자연은 불평등하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는 성경 구절에서 연유했다는 ‘마태복음 효과’를 물리학자들이 정량적-실증적으로 입증한 논문을 발표했다니 말이다.

 운을 ‘자연법칙’에 맡기며 낮은 확률을 꿈꾸면서 불평등 속에서도 잘 참는 방법을 터득하며 살거나, 불평등을 강요하는 시스템에 맞서 싸워 바꾸거나, 불평등의 높은 확률 벽을 넘어서기 위해 효율적이고 근면한 삶을 살거나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물론 그 결과도 각자의 몫이다. 자연은 그저 냉정할 뿐이며 탐욕은 도처에서 누군가를 기웃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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