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일상(영어교육과 교수)

임진년 새해를 맞이해서 자비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자비(mercy)는 정의(justice)와 달리 그림처럼 순전히 개인적인 창조물이다. 신의 은총의 한 형태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자비란 정의의 규칙들 아래에서는 좋은 대접을 요구할 권리가 없는 사람에게 자진해서 희생하고 호의를 베푸는 행위이다. 어떤 예술 작품의 완벽한 정밀성을 훼손시키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자비로움은 정의를 변화시킨다. 자비는 융통성 없음과 단절하고, 융통성 없음을 넘어서서 가장 좋은 의미에서 매우 인간적인 결과, 즉 우리 모두가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의 미덕을 만들어낸다.

 셰익스피어(Shakespeare)는 자비의 행위를 예술적인 표현으로, 즉 엄격한 의미에서 없어도 좋은 장식품이지만 순전히 정신으로부터 나오는 행위로 간주한다.

 정의는 법에 의해 강요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법률도 자비를 강요할 수 없으며, 그 어떤 것도 우리가 자비스러워지도록 강제할 수 없다. 자비는 순전히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비는 전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자비란 무엇인가에 대해 가장 명쾌하게 규정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는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The Merchant of Venice)에서 여주인공 포오샤의 자비에 대한 연설이다.

 포오샤는 그녀에게 가장 위대한 순간으로 기억될 사건을 통해 완전히 다른 모습을 갖게 된다. 남편의 친구 안토니오는 자신이 한 약속 때문에 1파운드의 살점을 바쳐야만 했다. 이는 그가 빚진 돈을 갚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포오샤는 법정에서 남자로 변장한 판사로 등장해서 샤일록에게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간청한다.

 먼저 포오샤는 자비가 강제로 만들어지는 인간의 속성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자비는 자발적이어야 한다. 누구도 그것을 강요할 수 없다. 그것은 자유의지에 의해 주어져야만 한다. 포오샤는 자비는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에게 커다란 이익이 되며 더 많은 영향력을 가지면 가질수록 그 영향력을 이용해서 베푸는 자비의 선물도 더욱더 커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포오샤는 자비를 베품으로써 더 이상 강대해질 것이 없을 만큼 강하거나 중요한 사람은 없다고 강조한다.

 “자비는 그 성질상 강요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는 부드러운 비와 같소. 자비는 이중의 축복을 내려줄 수 있으니, 자비를 베푸는 자와 받는 자를 동시에 축복해 줍니다. 자비는 강력한 힘을 가진 이에게 더욱 큰 미덕이요, 국왕의 왕관보다 더 국왕답게 해주는 덕성이지요…(중략)…그러나 자비는 왕관의 위력을 훨씬 능가하는 것이오. 자비는 왕의 가슴속 깊이 자리 잡고 앉아 신이 은혜를 베푸는 것과 같은 것이오.”  

 포오샤는 간청하면서도 정의와 자비 사이의 경계를 역설하고 있다. 자비는 정의가 끝난 곳에서 시작된다. 순수한 자비가 되기 위해서는 자비를 받는 사람이 그것을 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 자비가 인간을 부족한 존재에서 더욱 풍부한 존재로 신기하게 변화시킨다는 포오샤의 주장은 그녀 자신의 변화에 의해서 잘 나타나 있다. 자비를 베푸는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일종의 연금술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자비는 가슴에서 우러나와야 하지만, 자비로워지는 것이 단지 영적으로 되는 것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매우 실제적인 것이다. 자비를 베푸는 것은 삼라만상 모두에게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다른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어 보자. 그러면 언제나 친구를 사귈 수 있는 힘이 생기고, 신기하게도 커다란 상쾌함과 진정한 권력의식을 즐길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긴다.

 흔히 남들에게 자비롭다는 사실은 당신으로 하여금 자신의 삶에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비를 구할 자격이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남에게 자비를 베풀면 당신은 굉장한 정서적 안락함과 개인적 자유를 향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아울러 당신 자신에게도 자비를 베풀어 보자.

저작권자 © 제주대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