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성조 법학과 교수
사람이 아는 바는 모르는 것보다 아주 적으며 사는 시간은 살지 않는 시간에 비교가 안될 만큼 아주 짧다. 이 지극히 작은 존재가 지극히 큰 범위의 것을 다 알려고 하기 때문에 혼란에 빠져 도를 깨닫지 못한다.-장자-

필자가 제주대 법전원으로 오기 전 대학원시절 은사님 한 분께서 나를 부르셨다.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의 교수로 임용된 것을 축하해 주심과 동시에 로스쿨에서의 교수방법을 친히 지도해 주시려는 뜻에서였다. 가르침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첫 강의 시간에 학생들로부터 자기소개서를 받으라는 것이었다. 학생들의 학부전공과 직장경력 등을 파악하고 출석부에 간략히 기재해 강의시간에 학생들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데 활용하라는 취지였다. 법전원 학생들은 다채로운 전공과 경력을 갖고 입학하기 때문에 형법강의시간에 차입매수나 조세포탈 등 경제범죄와 관련된 문제에 관해서는 상경계열 학생들의 도움을, 생명의료영역의 법적 문제에 관해서는 생물학이나 의학을 전공한 학생들에게 도움을 청하라는 것이다. 교수가 만물박사가 아닌 이상 한마디로 집단지성을 적절히 활용하라는 뜻이었다. 그것이 다양한 전공을 아우르는 로스쿨 제도의 취지에 부합되는 것이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법학 비전공 학생들의 사기를 북돋는 효과도 가져와 일석이조가 된다는 조언이셨다. 친절한 지도에 마음속으로 눈물이 핑 돌았다.

말씀을 가슴에 담고 내가 제주대에 처음 와 가장 먼저 들른 곳은 법전원 화장실이었다. 그런데 나는 거기서 전혀 예기치 못하게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는 것과 같은 큰 깨우침을 얻을 수 있었다. 말머리에 소개한 장자의 글귀를 접했기 때문이다. 이토록 가슴에 와 닿는 문구는 처음이었다. 사실 그동안 나는 다양한 학문을 두루 섭렵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법학을 전공하면서도 철학이나 뇌과학, 경제학, 심리학 등에 이르기까지 여러 인접학문을 법학에 접목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헌데 그러는 중에 나는 정작 혼란에 빠져 도를 깨닫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좀 더 소박하고 일상적인 세계에 눈을 돌려 주어진 법적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고 해결방법을 강구해야했던 것은 아닐는지.

지적으로 정돈돼 있지 못하다보니 내 삶에도 균열이 생겼던 것 같다. 실로 많은 것들을 되돌아보게 만든 경구였다. 은사님의 조언이 법학교수가 모든 것을 다 알려고 하지 말고 본분에 충실하면서 학생들의 전문지식에 도움을 활용하라는 뜻으로 다가왔다. 이러한 깨달음에 이르자 그동안 내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강박관념과 번민이 하나 둘씩 치유되기 시작했다.

법전원 학생들 중에는 지적 열정이 가득하고 다양한 스펙을 갖춰 성공에 대한 의욕으로 충만한 야심만만한 학생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일부는 개인적으로 방황을 하다가 법전원에 들어온 학생들도 있다. 나에겐 이들 모두에게 올바른 법이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가르쳐야 하는 막중한 책무가 주어졌다. 나는 학생들이 단순히 남들보다 더 많이 아는 유능한 법률가로만 성장하지 않고 언제나 자신과 주변을 성찰할 수 있는 반성적 법률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싶다. 이 과정에서 그들이 깨달음을 얻어 지적 성장과정에서 또는 사회생활에서 겪은 크고 작은 상처들이 잘 아물기를 바란다.

흔히 제주를 치유의 섬이라고도 말한다. 나는 법전원 학생들이 이기적 성취보다는 협력과 화합의 미덕을 깨닫고 자신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며 더 가지려 하기보다는 베풀 줄 아는 삶의 지혜로 학업에 정진했으면 좋겠다. 똑똑한 법률가는 많다. 그러나 존경받는 법률가는 요즘 드물다. 부디 학생들이 법전원에서 지식뿐만 아니라 진정한 치유와 깨달음을 얻게 되길 희망하며 로스쿨 신학기를 맞이해 신임교원으로서 감회와 포부를 짧게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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