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영수 경영학과 교수

오전에 도서관에서 빌린 ‘언어학 개론’을 펼쳐놓고 한가한 금요일 오후를 즐기려던 참에, 정말 오랫 동안 만나지 못한 고교동창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나 OO야, 지금 제주대학교 국제교류회관에서 심포지엄에 참석중인데, 너 어디 있니?”
 
고교 시절에는 잘 몰랐지만 대학교 교양과정 중에 같은 캠퍼스를 쓰는 바람에 몇 번 만나고, 그 후에는 가는 길이 달라 멀리서 소식만 듣던 친구가 뜬금없이 보잔다.
 
막 몰입한 책을 내려놓으려니 다소 서운했지만, 행사장으로 향했다. 환한 미소를 짓는 친구와 40여년 만에 나누는 악수는 즐거웠다. 발표자로 참석한 것이 아니고 후원자로 참석한 것이니 시간이 많다는 친구와 함께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의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쭉 학교에 있었으니 어떻게 지냈는지 뻔하고 이번 학기를 끝으로 정년퇴직인데, 너는 어디서 어떻게 지냈는지 자세히 좀 얘기해 봐라”는 내 말은 친구의 다양하고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라는 큐가 되었다.
고교 시절에 같이 젊었고 지금도 비슷하게 늙어 있지만, 그 사이에 있었던 긴 세월 동안 지낸 생활은 판이하게 달랐다. 가히 충격적인 정도였다.
 
일하던 회사가 속한 그룹이 IMF로 망하는 바람에, 그 당시 근무하던 유럽의 해외법인이 국제미아가 된 상황에서 회사를 2년만 운영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단다. 주변 사람들은 물론 600여 명의 현지종업원들도 망할 회사라고 체념한 상황에서 3년 만에 회사를 정상화시켜 놓고 그 회사를 떠난 후, 국내에 진출한지 얼마 되지 않은 합작법인으로 자리를 옮겼단다.
 
수조원의 매출액을 올리는 규모로 성장한 그 회사에서 오랫 동안 맡은 사장직을 내놓고 이제는 부회장으로 있으니 시간적으로는 여유가 많단다. 열심히 일했으니 업무에서 성공하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지만,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여가시간도 열심히 즐기는 정열이었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지금 3년째 철인경기에 참가하고 있는데 메달권이란다. 기타와 노래를 즐겨 종종 복지시설에 가서 공연하고, 댄스도 제법해서 얼마 전에는 공개 공연을 하고, 골프는 싱글 정도, 부부가 같이 하는 활동으로서는 매주 음악회에 참석한단다. 영어는 물론 불어로 회화가 가능하고, 일본어와 중국어는 업무상 필요도 했지만 별도로 노력하여 빠른 회화는 물론 강연도 한단다.
 
이 친구에게 “왜 그리 이것저것 죽자 살자 하는 거니?”하고 물었더니 재미 때문이란다. “그런데, 영수야, 골프도 재미 있고, 춤도 재미 있고, 노래도 재미 있고, 외국어를 배우는 것도 재미 있지만, 그런 건 다 잔 재미더라. 정말 깊은 재미는 일하는 것이더라.” “일의 어떤 점이 그렇게 재미있는 거니?” “일은 어렵잖니. 일을 하다 보면 사방이 꽉 막힌 것 같이 난감한 경우가 많은데,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고 이를 극복하는 방법을 찾고 실제로 극복하는 과정은 어렵기 때문에 더욱 재미있는 것 같아.”
 
심포지엄이 끝나 우르르 몰려나오는 사람들을 보며, 연찬회에 빠지면 곤란하다는 친구와 헤어져 사무실로 돌아오며 나는 생각을 정리하느라 바빴다. “평생 일만 했다고 억울해 하며 죽는 사람도 있는데, 일이 가장 재미있다니 그것도 좋은 생활자세일 수 있겠다.”
 
퇴직 후의 무한한 자유에 기대를 걸며 일터를 떠날 채비를 하면서도, 한편 “나는 무엇을 이루었는가?”하는 자문에 마음 한편이 불편했던 나는 대학생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찾지 못했다. 오늘 친구가 내게 그것을 주었다. 내가 본을 보이지는 못했지만,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에 경제기적을 만들어낸 주역들 중 하나인 이 친구를 모델로 소개하고 싶다.
 
오늘의 대학생들이 훗날 각자의 일터에서 성공하기 위해 이 말을 마음에 새겨두었으면 좋겠다.
 
“일이 가장 재미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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