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벌판을 달리며 한민족의 기상을 떨치던, 당연히 우리나라의 역사의 한 페이지이라고 생각했던 고구려사를 중국 정부 자신들의 역사라고 주장해 학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지난 2001년 북한이 고구려 고분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을 신청했다가 7월 심사 때 중국이 ‘보존상태가 불량하다’ 등의 이유로 이의를 제기해 등록이 보류됐다. 그 후 중국은 ‘고구려수도, 왕릉과 귀족무덤’을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으로 지난해 1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정식 신청했다.
그리고 지난해 9월 4∼10일 이코모스(국제기념물 유적협의회) 현지 실시를 받았다. 이를 위해 6개월 동안 3억위안(480억원) 정도를 투자해 ‘집안’과 ‘환인’지방의 고구려 유적을 대대적으로 보수했다.
일부학계에서는 북한이 고구려 고분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하지 않았으면 중국도 신청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1996년 장천 1호분 벽화가 도난 당했지만 중국 정부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또한 1930년대에 완벽한 모습이었던 국내성이 1990년 높이가 3m 정도 낮아졌고 1997년에는 아파트 화단으로 변했다.
이렇듯 중국이 고구려 유적에 대해 무관심을 보였던 중국정부가 갑자기 고구려사에 관심을 보인 이유가 무엇일까.
▲고구려의 전성기 영토 ©
사실 고구려사를 중국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노력은 과거부터 시도해 왔었다. 1984년 중국학자 왕청리·웨이궈중 등 발해를 ‘당나라예속 하의 지방민족’으로 규정했다. 또한 1989년 지린성 출신의 리뎬푸·쑨위량이 집필한 ‘고구려간사’에서 ‘고구려는 중국 고대 동북 경내의 예맥족이 세운 중국의 할거정권’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중국 정부는 고구려사를 자국사로 편입을 위한 논리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지난 2002년 2월부터 ‘동북공정’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동북공정은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東北邊疆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의 줄임말로 우리말로는 ‘동북 변강의 역사와 그에 따라 파생되는 현상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프로젝트’로 옮길 수 있다. 이 사업은 중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 북경의 사회과학원 산하의 한 연구소 주도로 동북3성(랴오닝, 지린, 헤이룽장)의 사회과학원과 연합해 추진하는 국책사업이다.
이 프로젝트의 주요 내용은 동북지방사와 민족사, 고조선, 고구려, 발해사, 주종관계사 등의 역사 연구와 동북변강 사회 안정화 전략, 한반도 형세 변화와 그것이 미칠 영향을 연구하는 현실문제 연구로 나눠진다.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중국 역사에 대한 재해석이다. 하지만 이것이 단순한 역사의 재해석이라면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이면에는 중국이 지향하는 ‘통일적 다민족국’의 원리가 숨어 있기 때문에 논란이 되는 것이다.
중국은 한족을 비롯한 56개의 민족이 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항상 한족을 중심으로 한 다수 민족이 ‘통일’을 견지해 왔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한편으로 ‘현재의 중국 영토 안에서 발생한 모든 역사적 사건은 중화민족의 역사’라는 시각과 같다.
지난해 6월 24일자 중국 공산당 기관지 광밍일보에 따르면 고구려가 한나라 안에 있었으며 고구려 유민의 절대다수가 중국에 동화됐고, 고려는 고구려와 무관하다며 삼한의 후예는 한번도 한반도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고구려사는 명백히 중국사의 일부라고 주장하고 있다.
즉, 평양천도 이전의 역사만을 중국 역사로 기록해왔던 기존의 입장을 바꿔서 고구려사 전체를 중국의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것이다.
중국측의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한국의 역사는 시간적으로 2000년의 역사밖에 되지 않으며, 공간적으로 한강 이남의 지역만이 한국사의 활동공간이 된다.
하지만 이런 중국측의 주장은 모순되는 점이 많다. 중국측의 사서인 ‘삼국지위지동이전’을 보면 지은이 진수는 ‘오환’과 ‘선비’ 및 ‘동이’를 다른 민족의 역사로 인식하고 서술하고 있다.
또 ‘부여’, ‘고구려’, ‘예’, ‘마한’의 경우 제천대회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이들 사회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는 의미는 “제후는 하늘에 제사를 지낼 수 없고 오직 황제만이 하늘에 제사를 지낼 수 있다”는 점에서 제후국이 아닌 독자적 정치체계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 표문을 보면 신라와 고구려 및 백제를 포함하여 삼국이라는 개념을 사용했고 이들 삼국은 중국과 다른 나라라는 것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다. 만약 고구려가 한국사의 일부가 아니라며 김부식은 ‘삼국사기’가 아닌 신라와 백제의 ‘이국사기’라고 표문을 부쳐야 했다.  
첫째,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남북한이 통일된 이후의 조선족 이탈을 막기 위해서다.
동북공정의 목표하는 지역인 동북 3성에는 조선족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으로 대부분의 조선족 자치 구역이 여기에 분포되어 있다. 이곳에는 아직 한국의 언어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문화적으로는 중국이 아니라 한국적 요소가 짙으며 경제적으로 한국에 예속되어 있다.
만약 통일이 된다면 비록 국경은 두만강과 압록강으로 갈리고 있지만 문화나 경제적으로는 한국쪽에 속하는 상태이기 때문에 기형적 형태를 유지 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이는 조선족의 중국 이탈은 불 보듯 뻔하다.
둘째 북한 지역에 대한 역사적 연고권까지 주장할 수 있다. 이는 북한에서 예기치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고구려사가 중국사가 되면 한강이남까지 중국의 땅이었으므로 그에 대한 개입 역시 정당화 될 수 있다.
또한 1905년에 맺은 을사조약이 무효가 되면 간도조약도 무효가 되기 때문에 간도로 인한 영토분쟁의 가능성을 역사 해석을 통해 미리 막으려는 것이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과 관련, 국내 역사학계와 고고학계는 올해 중국 쑤저우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산하 세계유산위원회(WHC) 제28차 총회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는 지난해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보류된 북한 고구려 벽화 고분에 대한 재심사는 물론 중국의 고구려 유적과 유물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한 것에 대한 최종 결정이 내려지기 때문이다.
만약 북한의 고구려 유적이 아닌 중국의 유적만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경우 고구려사는 중국사로 편입될 수 있는 역사적인 근거가 된다.
 우리의 2천년의 역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금까지의 중국의 역사 왜곡에 대한 안이한 태도를 버려야 한다. 전문가들의 철저한 연구와 국민적인 공감대 중국과의 외교에 얽매이지 않는 적극적인 범정부차원이 지원이 필요하다.
특히 같은 역사를 공유하고 대부분의 고구려의 유적을 가지고 있는 북한과의 연계가 가장 중요한 관건이라 할 수 있겠다. 이데올로기적인 시각의 차이에서 벗어나 우리의 역사를 지켜나가는 한민족의 단합을 보여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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