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건강문제란 단순히 아이를 가지고 출산하는 것이나 생식기의 질환을 넘어서 여성으로서 살아가면서 겪는 삶의 경험과 그와 관련한 불편함을 포함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성건강은 한 사회 안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위치, 여성의 지위를 총체적으로 반영하는 지표라고 한다. 여성건강증진이라는 과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사회에서의 여성의 지위가 낮고, 건강문제 해결에 필수적인 지식, 자원 및 정치적 영향력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것을 반영한다.
여성의 건강상태는 출생에서부터 차별을 받는 여성의 지위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드러난다. 뿌리 깊은 남아선호사상은 여성으로 태어날 권리를 박탈하면서, 출생성비에도 막대한 영향을 준다. 피임 실패와 함께 인공임신중절수술의 중요한 원인이 되는 여아임신은 여성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으나 그 결과는 정확하게 파악되지도 않는다.
우리나라의 여성건강에 대한 접근이 생식기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재생산(2세 출산)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는 문제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10세 초반부터 폐경에 이르는 거의 40년 동안 여성들이 경험하는 빈혈과 생리통을 포함한 월경증후군이다.
생리통으로 인해 습관적으로 진통제를 복용하고,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는다. 그러나 이에 대한 연구는 부족하고, 특별한 처치방법도 개발되어 있지 않다. 대부분이 남성인 과학자 혹은 의사에게 이 문제는 별로 대단한 문제로 인식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여성의 분만과 출산과정에 개입하는 과학적, 의학적 발달은 모성사망률이나 영아사망률을 줄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여성의 몸을 여성 스스로의 통제가 아니라 의학의 통제하에 놓이게 했다(높은 제왕절개수술의 비율, 특별한 이유 없이 행해지는 태아감시장치나 초음파술) 인간의 정상적인 과정인 분만이 거의 대부분 병원에서 이루어지듯, 노화의 자연스런 과정인 폐경 역시 여러 가지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치료를 받아야 하는 질병과정으로 인식되고 있다. 요컨대 고비용을 요하는 의학적 치료방법은 발달해 있으나 많은 여성들이 경험하는 사소한(?) 건강문제는 의학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별 주목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임신, 출산과 관련한 또 다른 문제는 혼전 임신이며, 이런 경우 중절수술을 선택하거나 미혼모가 발생한다. 혼인관계에서의 임신도 그렇지만 미혼 혹은 혼외 임신은 여성에게 더 많은 부담이 된다. 이는 남성피임법보다 여성피임법이 훨씬 더 많이 개발되어 있다는 사실에서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역시 이런 현상에 대한 통계는 단지 추정될 뿐이며, 또 예상되는 경우나 실제 일어난 경우에 대해서도 별 대안이 없다.
여성은 남성보다 오래 산다. 그러나 여성들은 질환 이환율과 외래 이용률은 높지만 건강검진 수진률은 남성보다 낮다. 그래서 생애의 약 삼분의 일은 만성질환을 포함하는 여러 가지 형태의 불편감과 고통을 가지고 보낸다. 여성들은 태어나서 노인이 되도록 성폭력과 가정폭력의 위험에 노출된다. 취업과 결혼을 위해 날씬해지고 예뻐지기 위해 건강은 물론 생명까지 담보해야 하며, 각종 성병의 온상인 매매춘 산업에 더 많이 투입된다.
낮은 여성의 지위는 여성건강의 출발인 임신, 출산, 수유 등의 생식 건강분야에서조차도 잘 계획된 공공 서비스가 미흡한 것으로 나타난다. 최근의 생리대 부과세나 생리휴가제도 폐지에 따른 논란은 정책입안자들의 성인지적 관점이 얼마나 중요한지, 여성건강정책에 여성의 참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여성들이 더 먼저 깨닫고 주장해야 한다. 여성이 건강해야 세상이 건강하다. 여성이 아프면 세상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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