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전선에 뛰어 들면서 점점 여성운동가가 되는 것 같아요.' 한 여성 취업 재수생의 말이다. 취업의 계절이 돌아왔고, 여성들은 이 통과의례의 좁은 문에서 다시 여성이라는 것을 절감한다. 올해는 경기 한파에 각 기업의 모집인원수는 줄어드는데, 신규 졸업자에 IMF시절을 피해 다른 진로를 찾았던 사람들까지 노동시장으로 몰려들고 있다. 그러니 각 기업들에서는 요구하는 이상의 자격과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달려든다고 즐거운 비명이지만 구직자들은 난감하다. 사정이 이런데 여성 구직자들의 사정이야 오죽할까.
잘 기른 딸 하나가 열 아들 부럽지 않다지만, 아들을 얻으려는 노력은 낙태되는 여아들의 소리 없는 울음을 외면한다. 예전처럼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요즈음 행해지는 부드러운 금지는 여전히 가정과 교육 현장에서 여학생들이 자질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제한하고, 능력 발휘의 장을 통제한다. 여자가 대학가서 뭘 하느냐는 말은 안 하지만, 암묵적인 전공선택 제한은 여전하다. 물론 이전 보다 대학에 진학하는 여학생들의 수가 급속히 증가했고, 여성들의 전반적인 취업율이 향상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현실은 유엔개발계획(UNDP)의 보고에서 확실하게 드러난다. UNDP가 발표한 2001년 우리나라의 여성개발지수는 146개국 중에서 29위이다. 그러나 여성권한척도는 64개국 중에서 61위로 차도르를 쓰고 사는 아랍계 여성과 비슷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여성들에게 교육은 시켜도 일, 사회에서 중요한 일은 시키지 않는다.
취업이 안 되어서 고민하는 여성들에게 우리가 사회가 내리는 처방은 하나다. ‘결혼이나 해요. 남자도 직장을 못 구하는데 여자들까지 나서요?' 효과도 없이 핀잔까지 섞인 처방에 '직장이 없으면 결혼도 못해요'란 답은 면접장에서는 공허하다. 채용 공고에서 실력과 자격을 내세우며, ‘용모단정'은 없으나 군필우대는 여전하고, 남성들은 전공성적과 자격증 소지 여부를 여성들은 용모나 인상, 성격이 채용 순위 결정에 여전히 1순위다. 자신의 배우자는 맞벌이 능력이 있는 여성이 좋지만, 동료는 미혼여성이 더 좋다. 결국 우리나라 여성들은 차도르-눈에 보이지 않아 인식하기 더 어려운-를 쓰고 취업이라는 좁은 문을 통과해야 한다.
여성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 통과해야 하는 문들이 남성들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누가 그 문들을 열어 줄 것인가? 누가 머리에서 발끝까지 드리워진 차도르를 걷어치울 것인가? 아니 그 문이 좁아서, 거추장스러워서 답답한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여성인 우리들 아닌가?
국가에 대해 공무원 채용, 승진에 여성할당제 하지 말고, 각 기업도 할당제 하게 하라고 요구하자. 말로만 남녀차별 하지 말라고 말고, 그런 기업에 대해 확실한 이득을, 세금혜택이라도 주라고, 아줌마들이 많은 회사는 더 많은 혜택을 주라고 요구하자. 기업에 대해 대차대조표 공개하듯이 매년 채용 직원 중 여성비율 공개하라고 요구하자. 그래서 그 비율이 낮으면, 그 기업에 대해 불매운동하자. ‘당신들은 우리가 필요 없다구요? 그럼 우리도 당신들 필요 없소'라고 당당하게 말하자.
당연히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여성들에게 쉬운 일이 있었나. 그래. 여성운동가가 되어간다고. 운동가여서도 어렵다면 전사가 되자. 지금, 우리가 하지 않으면, 내 동생, 내 딸, 내 딸의 딸도 나처럼 살 수밖에 없다. 우리만이 우리가 지나야 할 문을 넓히고, 우리를 뒤집어 싸고 있는 차도르를 걷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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