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제주에서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서 주최하는 세계자연보전총회(WCC)가 열렸다.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되고, 국내 최다 람사르습지를 보유한 것을 자랑스러워하면서, 세계환경수도가 되기를 꿈꾸는 제주로서는 큰 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IUCN은 9월 현재 국가 및 정부기관회원(GA) 200개, 비정부기구(NGO) 882개 등 총 1000개 이상의 회원으로 구성된 세계에서 가장 큰 환경단체다. IUCN의 활동 내용은 4년마다 열리는 WCC에서 결정하는데, 구성원들의 속성상 회의장에서는 자연스레 한편에서는 국가시책을 홍보하고 다른 한 쪽에선 그것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온다.
 
이번 제5차 WCC에서는 제주형 의제로 하논분화구 복원, 곶자왈 보전, 유네스코 국제보호지역 통합 관리, 제주해녀의 지속가능성, 세계환경수도 평가 및 인증 시스템 등에 대한 발의안이 채택되어 통과되었다.
 
그러나 WCC에서 무엇보다 주목을 끈 것은 강정해군기지와 관련된 발의안이었다. 주행사장인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7킬로미터 떨어진 강정에서 해군기지가 건설되는 것이 WCC 참가자들에게 알려지면서 강정해군기지는 그 어떤 의제보다 더 뜨거운 관심을 끌었다.
 
IUCN 회원단체인 ‘인간과 자연을 위한 모임’(CHN)이 전 세계 35개 회원단체들의 동의를 받아 제출한 발의안 초안은 해군기지 건설로 인해 강정마을의 역사와 문화유산, 그리고 환경적 가치가 훼손되는 것을 인지하고, 환경보전에 대한 여러 가지 국제협약들에 근거해서, 한국정부에게 1)공사를 즉각 중단하고, 2)독립적인 환경영향평가를 수행해 공개하며, 3)훼손된 지역을 복원할 것을 권고하는 내용이었다.
 
발의안 제출 과정에서 한국 정부 관계자들은 강정마을의 자연환경과 주민공동체를 보호하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을 집요하게 방해하였다. 결국 IUCN 발의안위원회에서는 초안을 일부 수정하여 상정하였다. 총회 마지막 날 발의안을 표결에 부친 결과, 찬성 289표, 반대 188표, 기권 188표로 발의안을 채택해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하지만 총회규정에 따라 정부기관에서 찬성 20표, 반대 68표, 기권 60표로 반대가 많아 발의안은 부결되었다.
 
이제 강정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강정해군기지문제가 불거진 지 5년 반이 지났다. 강정해군기지는 2011년 총선을 계기로 전국적 이슈로 떠올랐고, WCC를 통해 세계적 이슈로 확대되었다.
 
최근 민주통합당 장하나 국회의원은 강정해군기지가 미국 항공모함을 염두에 두고 건설되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를 제시하였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미국의 아시아 정책을 예의주시하는 중국이 그냥 보고 있을 리 만무하고, 그리되면 강정해군기지는 아시아, 더 나아가 세계의 갈등과 분쟁의 핵이 될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올해 연거푸 불어닥치는 태풍으로 바람코지(串)인 강정해안은 해군기지로 부적합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지난 8월 말 제주를 강타한 볼라벤 영향으로 강정해안에 투하된 해군기지 방파제의 뼈대인 케이슨(1개가 아파트 8층 높이에 무게만 8885톤, 가격은 15억여원이 된다) 7개가 모두 파손되었다. 그로 인한 국고낭비와 환경파괴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그런데도 공사업체에서는 강정마을에서 케이슨을 직접 제작하기 위한 흉물스런 철골구조물을 설치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평화, 종교단체들이 반대 목소리를 낼 때 외부세력이 개입한다고 비난하였고, 환경단체들이 WCC에서 강정해군기지 공사중단을 촉구하자 내정간섭이라고 비판하였다. 하지만 제주해군기지는 이제 강정마을과 제주도의 문제를 넘어섰다. 강정해군기지를 우리 국민이 막지 못한다면 세계인이 막을 것이고, 인간이 막지 못하면 자연이 막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는 너무나 많은 희생이 따르기에 그 이전에 강정해군기지 건설을 중지하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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