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평 - 제주4ㆍ3 영화 ‘지슬’과 22일의 고문이야기 ‘남영동 1985’

어느덧 대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우리가 원하는 차기 대권주자를 우리 손으로 떳떳하게 뽑을 수 있게 된 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우리의 정치는 근현대사 과정에서 피 흘린 수많은 이들의 희생을 빼놓고서는 논할 수 없다. 해방 이후 제주에서 일어난 4ㆍ3사건으로 영문도 모른 채 목숨을 잃은 무수한 제주도민들, 군부독재 시절 자행된 무자비한 고문과 탄압 때문에 죽거나 아직까지 후유증에 시달리는 사람들. 시대와 역사가 남긴 이들의 아픔을, 두 편의 신작영화는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영화 ‘지슬’과 ‘남영동 1985’이다.

제주4ㆍ3을 다룬 오멸 감독의 영화 ‘지슬’은 지난 21일 제주 영화문화예술센터에서 열린 후원인을 위한 특별시사회를 통해 제주에 첫 선을 보였다. 이 영화는 2012 부산국제영화제에서 4관왕의 영예를 안으며 지역영화의 주목할 만한 사례로 화제를 모았다. 제작 과정에서 부족한 제작비로 인해 작업 중단 위기에까지 처할 뻔했으나, 도민들의 후원을 통해 가까스로 영화를 완성시킬 수 있었다. 내년 3~4월 제주에서 개봉될 예정이며, 전국 개봉까지 달성될 수 있도록 개봉 서포터즈를 운영하고 있다. 영화 제목 ‘지슬’은 제주도 방언으로 ‘감자’를 뜻한다.
 
군부독재 시절 자행되던 고문의 과정을 생생히 다룬 정지영 감독의 영화 ‘남영동 1985’는 지난 22일 전국 첫 개봉했다. 이 영화는 민주화 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고 김근태 의원의 자전적 수기 ‘남영동’을 바탕으로 극화한 작품이다. 군부독재에 맞서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던 김근태 의원은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끌려가 무려 22일동안 폭행, 물고문, 전기고문을 당했으며, 고문 후유증으로 인한 파킨슨병으로 지난해 12월 작고했다.
 
두 영화는 그려내는 방법에 있어 차이가 있을지언정, 공통적으로 시대와 역사로부터 민중이 겪은 비극을 민중의 시선으로 조명하고 있다.


상황적 아이러니 통해 부조리와 비극성 강조
 

▲ 오멸 감독의 영화 ‘지슬’ 포스터
영화 ‘지슬’은 신위-신묘-음복-소지의 4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모두 제사와 관련된 용어들이다. 영화는 당시의 참상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기보다는 하나의 제의로 묘사해, 장면마다 4ㆍ3 영령들을 달래고 위무하는 진혼굿을 연상케 한다. 흑백의 영상미 역시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한다. 비극을 내재화시키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승화시키고 극복하려는 차원에까지 이르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분노만을 남기고 끝내는 게 아니라, 그 이상의 무언가를 더 깊이 생각하게끔 여지를 남기고 있다.
 
학살 장면을 자극적으로 묘사하지 않은 만큼, 영화 안에서 느껴지는 비극성은 죽임을 당하는 끔찍한 장면 자체보다는 상징적인 상황 설정을 통해 더 잘 드러난다. 영문도 모른 채 무작정 죽여야 했던 군인들과, 죽어야 할 이유가 없기에 시종일관 낙관적이고 무지하던 주민들의 모습을 통해 상황이 갖고 있는 아이러니를 강조하고, 그 본질적인 부조리와 비극성을 역설하는 것이다.
 
주민들이 쓰는 제주도 방언은 매우 사실적이며 거칠고 유쾌하다. 그들은 절박한 상황에서도 그 비극을 인지하지 못하며 극이 진행되는 내내 투박한 사투리로 평범한 대화를 주고받는다. 그들에게 벌어진 현실이란 도대체가 영문조차 알 수 없어 참으로 납득 불가능한 현실이었다. 자신들이 왜 군인들을 피해 동굴 속에 숨어 지내야 하는지, 그 근본적인 이유조차 알지 못했다. 그랬기에 그들이 힘들게 숨어 지내며 보여주는 일상적인 모습은 무고한 이들이 이유 없이 죽임을 당해야만 했던 상황의 부조리성을 되려 더 극대화시킨다.
 
군인들의 행동을 통해서도 부조리한 상황은 더욱 부각된다. 그들은 오직 명령에 따라 폭도가 아닌 사람들을 폭도로 간주하며 무차별적으로 죽여야 했다. 일부 군인들은 자신들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맹목적인 살육 행위에 회의를 느꼈다. 영화는 이렇듯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명하게 나누고 있지도, 가해자를 온전한 악인으로 그리고 있지도 않다. 영화 말미에 동굴 안 주민들과 동굴 밖 군인들이 대치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주민들은 군인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매운 고추를 태워 연기를 피운다. 주민들도 울고 군인들도 울지만, 한쪽은 두려움과 공포, 동료를 위한 마음에서 나온 눈물이고, 다른 한쪽은 독한 연기로 인한 생리적 눈물이었다. 같은 상황 속에서 똑같이 울었으되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 두 눈물. 곧 시대의 아이러니인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고문 장면… 진한 감정적 연대
 

▲ 정지영 감독의 영화 ‘남영동1985’ 포스터
반면 영화 ‘남영동 1985’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관객들에게 철저히 사실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주력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고문하는 장면이 극을 이끌어 가는 것이다. 수많은 고문 방법이 제시되고 그 모습은 적나라하고 생생하게 보여진다. 보는 내내 불편하기 짝이 없고, 때때로 고개를 돌리고 싶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만큼 영화가 주는 힘은 강력하다. 민주화 운동가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을 영화는 아주 직설적인 화법으로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진한 감정적 연대를 안겨주기 때문이다.
 
고문이 보여주는 무시무시한 시각적, 청각적 힘은 너무 큰 고통에 어쩔 수 없이 거짓을 고해야 했던, 악인들 앞에서 개처럼 길 수밖에 없었던 상황의 부조리함까지 온전히 납득시킬 만큼의 관통력을 지닌다. ‘지슬’이 상황적 아이러니를 통해 간접적으로 비극을 전달한 것과 달리, ‘남영동 1985’는 상황 그 자체를 직접적으로 극대화시켜 보여줌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당시의 비극성을 자신이 직접 고문을 당하는 것 마냥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지슬’에서의 가해자 입장인 군인들은 단결돼야 할 하나의 그룹이지만 그 안에 여러 양상이 나눠져 모두를 싸잡아 악인이라 칭하기에 무리가 있다. 반면 ‘남영동 1985’의 가해자들은 거의 모두를 악인으로 봐도 무방하다. 주목할 점은 ‘남연동 1985’ 속 악인들의 모습이다.
 
우선 이두한(이경영 역)이 극중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그 이상 악해 보일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악마이다. 다른 가해자들 또한 주인공에게 고문을 가할 때 그렇게 잔인하고 냉혈할 수가 없다. 그러다가도 그들의 일상적 모습, 이를테면 야구중계를 듣거나 여자친구 얘기를 하는 등의 장면이 번번이 등장한다. 그들이 자행하는 고문 행위와 평소의 일상적인 생활상은 서로 대비되면서 그로테스크한 광경을 연출한다. 그것은 이념을 앞세워 집단적으로 악행을 저지르면서 악에 대한 감각을 잃어가는 사회적 자아의 한 단면을 반영한다. 이들 악인은 일상에서는 보통의 사람과 조금도 다르지 않지만, 군부독재라는 거대한 사회적 테두리 내에서는, 그 안에서 세뇌된 이념 안에서는 모두가 한마음으로 악마가 된다. 그러면서도 그것에 대한 죄의식을 조금도 느끼지 못하고 무뎌져 간다. 이는 군부독재라는 시대가 낳은 또 다른 사회적 병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꼭 육체적으로 아프다고만 해서 아픈 게 아니다. 기본적인 윤리조차 잊어버리고 그것을 잘못이라 인식하지 않는 모습 역시 시대와 역사가 남긴 또 하나의 아픔의 산실이다.
 
당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과거를 알고 기억한다는 것은 다소 쓸데없는 일로 비춰질지 모른다. 그러나 실은 우리가 현재를 살아가는 밑바탕에는 반드시 과거가 존재하며, 과거 없이는 현재 또한 없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지금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며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데에는 과거 민중들의 수많은 ‘아픔’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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