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미열(간호학과 교수)

“머리 굵어진 4학년들은 가고
무한 가능성을 가진 70명의 새내기들이 내겐 큰 선물로…
세상 향한 발걸음에 용기를 더하는 신입생 되길”

2월에 부는 바람은 쓸쓸하고, 3월에 부는 바람에는 기대가 묻어 있다. 2월에 부는 바람은 아직도 겨울이 가시지 않아 살을 에이고, 4년 동안 자라난 학생들이 떠나가는 자리에 불어댄다.
 
선생이란 자리에서 학생들을 만나온 지 10년 째. 어릴 적부터 선생님의 말씀을 늘 새겨듣고 그것을 지키고자 애써왔던 나 역시도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무언가 영향을 줄 수있는 선생님이 되겠다는 꿈을 키웠고 삼십대 후반에 드디어 교수가 되었다. 욕심도 있었다. 진실하고 열정적이셨던 대학 은사님의 강의를 듣고 대학 3학년 때 이미 정신간호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했던 것처럼, 나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이 정신간호학에 남다른 애정이 생기길 바라는 욕심이 있었다. 그러나 웬걸... 대부분은 커녕 교수생활 십년을 맞이하는 이 때 서 너 명의 제자가 나와 같은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이 정도면 선생으로서의 평점은 낙제인 셈인가?
 
처음 맞이하던 졸업식이 떠오른다. 요즘은 학생들의 학년, 학번이 뒤섞이어 두셋이 같이 있으면 동기인지, 누가 선배인지 후배인지, 혹은 졸업하였는지조차 헷갈리지만, 처음 졸업식에서 떠나보낸 아이들만은 지금도 선명하다. 나름 마음을 다하여 키웠기에 학교를 졸업한 후 소식이 없는 그네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급기야는 섭섭한 마음이 들어 이후 몇 년간은 사은회 때마다 ‘아, 이 아이들하고도 오늘이 마지막이구나’ 하는 생각에 헤어짐의 골을 더욱 깊이했다.
 
나보다 먼저 교편생활을 하고 있는 남편이 제자들의 전화를 받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고맙다는 말을 몇 번씩이나 하는 것을 옆에서 들으며 ‘뭐이 그리 고마울꼬..’하는 생각을 가졌었다. 이제는 남편의 마음이 십분 이해가 되며 나도 그렇게 되었다. 제자들에게 선생이라는 사람이 바라는 것은 딱 하나. 자신을 가끔이라도 제자들이 기억해주는 것인가 보다.
 
내가 특별히 무엇을 가르쳐주었다는 기억을 하기를 바라기보다는 나라는 존재에 대한 기억, 아마도 인연의 겁을 더하며 사는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소박한 마음이 아닐까 싶다. 물론 제자들의 변도 있다. ‘잘 할 수 있을 때 찾아뵈려 했어요, 힘든 모습 보여드리고 싶지 않았어요...’ 등등.
 
학과장으로서 국가고시를 치러야만 하는 4학년 학생들과 유난히 얼굴 붉히며 지난 겨울을 보냈다. ‘성적 관리해라, 모의고사 때 지각하지 마라, OMR 카드 제대로 기입해라, 졸업은 할 거냐 말 거냐’ 등등 아침 8시면 시험장 앞에 버티고 서서 지각생들을 체크하고 협박을 일삼았다. 그 학생들이 막상 졸업을 한다니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난다.
 
선생에게는 학생들이 마치 자식과도 같다. 부모 말 거스르지 않고 속 한번 태우는 일 없이 잘 자라주는 아이나, 단 하루도 맘 편하게 해주는 일 없는 말썽꾸러기인 아이나, 다 내 새끼여서 어디 갖다 버리지 못하는 것처럼, 공부 잘하고 매사에 믿음을 주는 학생이나 아직 갈 길 몰라 끝없는 방황을 하고 있는 학생이나 나에게는 다 똑 같은 내 학생이다. 언젠가는 원하는 일을 찾아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 이 마음으로 내 학생들을 2월에 떠나보낸다.
 
3월에 부는 바람은 겨울바람 못지않게 매섭지만 대학새내기들의 풋풋함, 설렘, 순진무구함 들을 담고 있어 4학년을 떠나보낸 마음을 보듬어준다.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디에서 해방되고 싶은 건지, 앞으로 무슨 고민이 닥쳐올지도 모르는 채, 새터 무대에서 열심히 춤을 춰대는 새내기들을 바라본다. 머리 굵어진 4학년들은 가고, 무한 가능성을 가진 70명의 새내기들이 내게 선물로 또 다시 주어졌구나 하는 감사함이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3월이다.
 
누군가는 대학생활을 유목민의 그것과 닮았다고 하였다. 유목민처럼 여기 저기 강의실을 떠돌며, 여기 저기 사상의 산실들을 떠돌며, 여기 저기 새로운 인간 사이를 떠돌며 세상을 향한 발걸음에 무게를 더하고 지혜를 더하고 용기를 더하는 2013학번들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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