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봉수(윤리교육과 교수)
나와 너는 같은가 다른가? 남자와 여자는 같은가 다른가? 문명인과 야만인은 같은가 다른가? 이러한 질문에 우리 중 십중팔구는 깊은 생각 없이 ‘다르다’고 답한다. 이 대답은 내가 했던 여러 강의에서 수강생들에게 물어본 결과이기도 하다. 수강생들이 ‘다르다’고 답하면 나는 “그래요?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까?”라고 재차 질문한다. 그래야 고개를 갸우뚱하며 잠시 동안의 고심 끝에 비로소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합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러면 이번에는 당신과 생물(동물, 식물, 미생물, 세포)은 같은가 다른가, 당신과 무생물(물질, 분자, 원자 등)은 같은가 다른가를 묻는다. 앞선 질문과 대답이 있던 터라 수강생들은 ‘다르다’고 해야 할지 ‘같으면서도 다르다’고 대답해야할지를 망설인다. 그렇다. 역시 인간을 포함하여 모든 생명체는 ‘같음과 동시에 다름’의 존재이고, 원자나 쿼크 수준에서 보면 인간은 텅 빈 공간과도 ‘같음과 동시에 다름’이다. 한마디로 양자의 세계-물질의 세계-생명의 세계-인간의 세계-우주의 세계 모두는 ‘같음과 동시에 다름’으로 구성된 유기체적 공동체라 할 것이다.
 
우리는 나 중심으로, 인간 중심으로 세상을 보고 해석하는데 너무나도 익숙해 있다. 그래서 저러한 질문에 우리는 ‘같음’보다는 ‘다름’에 방점을 두고 대답하기가 십상이다. 그것은 인류의 문명사가 뿌리 깊게 간직해온 세계와 인간을 바라보는 철학적 관점이 우리에게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들은 그동안 인간만이 이성적 존재이고 생각하고 느끼는 마음을 가졌다고 믿어 의심치 않아왔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은 현대에 와서 모두 깨지고 있다. 오늘날 생물학, 유전학, 뇌과학 등의 첨단과학은 ‘생존경쟁 속에 우연히 살아남은 호모사피엔스’라는 다윈의 진화론적 관점이 맞다는 점을 증명해 내고 있다. 또한 상대성이론과 양자물리학, 우주과학 등은 이미 동양의 노장과 불교철학이 직관적으로 발견해냈던 ‘모든 존재는 같음과 동시에 다름으로 구성된 유기체적 공동체’라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입증해내고 있다.
 
‘다름’만을 강조하는 이면에는 차별과 지배의 철학이 숨겨 있다. 실제 인간들은 그동안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 인간들은 세계와 인간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을 수정해야 한다. ‘같음’이라는 점에서 우주 구성원들은 모두가 형제다. ‘다름’이라는 점에서 우주 구성원들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배려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한마디로 우주의 모든 존재는 이 세계를 구성하는 아름답게 수놓은 꽃들이다. 인간은 인간 아닌 존재들에 대해 훨씬 더 겸손해져야 한다. ‘같음’을 전제한 후에 인간의 ‘다름’을 논해야 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다름’은 무엇인가? 오늘날 첨단과학들이 저러한 사실들을 발견해내고, 나아가 마치 인간 삶의 모든 문제를 과학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주장하지만 그렇지 않다. 인간은 여전히 철학적 존재라는 사실을 방기해서는 안 된다. 생물학적 존재로서 동물과 인간은 같지만, 동물은 유전적 프로그래밍에 따라 살아갈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유전적 프로그래밍을 초월하고 거역할 수 있는 ‘자유’의 존재이다. 인간은 여전히 어떻게 살 것인가를 질문하는 철학적 존재이다. 이러한 질문은 어떠한 과학의 지식으로도 충족될 수 없다.
 
과학은 이러한 질문을 사유하지 않으며, 오히려 질문 자체를 무의한 것으로 일축해 버린다. 그러나 철학과 인문학은 그런 질문들을 사색하고 모색하는 일을 학문적 존재이유로 삼는다. 대학생활 동안 과학과 전공지식만을 축적하는 메마른 영혼이 아니라 인문고전과 철학 책 몇 권 정도는 읽는 제주대학교 학생이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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