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이 ‘정치, 삶을 만나다’를 주제로 지난 16일 오후 3시 벤처마루 10층에서 강연회를 열었다. 인문학 모임인 ‘유목민’과 ‘함께 꿈꾸는 제주’가 공동 주최하는 이번 강연회는 이규배(제주국제대) 교수의 사회로 2시간 가량 진행됐다. 다음은 이철희 소장의 강연을 요약정리한 것이다. <편집자>
 

▲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16일 오후 3시 벤처마루 10층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정치가 대중들의 삶 속으로 들어와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국민들은 내로라하는 정치 전문가이다. 이런 사람들을 상대로 정치전략을 강연하고, 연구하려다 보니 직업을 잘못 골랐다는 생각도 든다. 정치를 이론이나 책으로 배웠던 내용과 현실 정치는 크게 차이가 난다. 요즘따라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물음에 휩싸여 있다. 수많은 석학들이 논하는 정치의 정의를 알고 있으면서도 이런 생각에 빠져 있는 것은 현실 정치가 참 못났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정치가들은 언론을 통해 우리에게 싸우는 모습만을 보여준다. 아직도 우리나라의 정치수준은 후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정치는 결국 싸우는 것이 일이다. 다만 정치적 이해결사체인 정당으로 편먹고 싸우는 것이다. 영국의 유명한 정치학자 게리 스토커는 “숙명적으로 정치는 실망을 줄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정책에 따라 어떤 사회적 가치를 많이 가진 사람이 있고 적게 갖는 사람이 있다. 보수든 진보든 모두 해당한다.
 
정치의 수준과 질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 유럽의 경우 보수정당과 진보정당 중 어느 정당이 집권하느냐에 따라 인간의 삶도 달라진다. 제러미 리프킨이 ‘유러피안 드림’(european dream)을 말한 것도 결국엔 정치에 의한 삶의 모습이 미국과 유럽에서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결국 삶의 질, 삶의 구체적 양태는 정치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겠다.
 
또한 『불평등한 민주주의』(Unequal Democracy)의 저자 바르텔(Larry M. Bartels)의 분석도 있다. 기술변화, 세계화, 인구통계학적 변동 등 사회ㆍ경제적 힘들이 경제적 불평등을 야기하도록 강한 압박을 가하는 것은 사실이나 이를 강화하거나 완화하는 것은 정치와 공공정책이다. ‘정치가 경제를 주조한다.’ ‘경제적 불평등은 실질적으로 정치현상이다.’ 그의 명쾌한 결론이다. ‘정치엘리트의 이념적 확신과 당파정치가 국민의 경제적 삶, 특히 중산층과 가난한 사람들의 경제적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가 바르텔의 분석이다. 즉 세상의 모든 문제는 정치에서 비롯된다고 설파한다.
 
주지하듯이, 자본주의는 1원1표의 시스템에 의해 유지된다. 시장에서는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이 같을 수 없다. 100원 가진 사람과 1,000원 가진 사람은 시장의 결정에 개입하는 정도가 다른 ‘소비자’다. 그런데 민주주의는 1인1표의 시스템이다. 100원을 가진 사람이나 1,000원을 가진 사람이나 똑같이 1표를 가진 ‘유권자’일 뿐이다. 1원1표와 1인1표의 관계에서 정치가 발생한다. 1원1표에 의한 폭력, 차별, 불공정의 폐해를 1인1표의 원리로 바로 잡는 것이 정치다.
 
그렇다면 정치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지지받을 수 없기에 누구에게 욕을 먹을 것인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정당이 집권했을 때 지지기반에 충실한 정책을 펴는 것이 그들의 중요한 임무이다. 중산층과 서민을 대변하겠다고 표방한 정당이 있었다. 그러면 당연히 그 사람들에게 대한 정책을 펼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민주정부 10년은 그러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여러 토론회에서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논객과 논쟁을 벌이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할 말이 없게 하는 것이 ‘민주 정부 10년 동안 서민들의 삶이 더 힘들어졌다’는 비판이다.
 
우리나라는 정치인과 유권자간의 결속이 끊어져 있다. 정치‘권’이라는 단어가 그것을 대변해주고 있다. 유권자들은 후보자에 대해 알지도 못한 채 투표한다. 후보자가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에 대한 자료가 없기 때문에 그저 유명한 사람, 익숙한 사람을 찍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정치와 유권자는 건널 수 없는 다리를 사이에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결국 기득권층만 강화하는 데 유리한 것이다. 진정한 정치는 유권자 앞에 낱낱이 보여져야 한다. 제도 역시 미비하다보니 서민들의 지지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결국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도 정치의 중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가난과 빈부격차도 결국 정치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정치가 잘못되면 사회의 경제 양극화는 필연적이라고 주장했다.
 
우리 사회는 ‘가난한 민주주의’(poor democracy)에 빠져 있다. 가난한 이들이 자기배반적인 보수적 선택을 하거나 투표에 불참하기 때문에 정당 정책에 자신의 이해관계를 반영할 수 없어 사회경제적인 혜택으로부터 외면당하고, 그 결과 자신이 속한 사회도 가난해진다는 이중의 의미를 담고 있다. 사회경제적으로 불리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도 어느 정도 평등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체제가 민주주의다. 민주주의 아래서는 경제적 약자들도 선거를 통해 자신을 대변하는 정당을 선택하고, 정당을 통해 자신들의 경제적 불리함을 상쇄하는 방향으로 제도와 정책을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정치에서는 가난한 이들이 보수적 선택을 함으로써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더 견고해지고 있다.
 
새로운 정치의 핵심은 서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국민들과 다른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라 국민들의 삶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새로운 정치의 핵심이다. 소위 스펙(specificationㆍ경력) 좋은 사람들이 정치한다고 해서 좋은 정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과 삶을 같이 하고자 하는 정치인들이 정치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일반 대중들의 정치무관심과 냉소주의, 또는 정치불신으로 말미암아 보수적 성향의 정치인들의 기득권을 더욱 공고히 만든다.  일반 대중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이 지금보다 더 높아져야 한다. 이 관심 정도가 커질수록 기득권 정치인들의 술수와 계략을 간파하기 쉬워진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더이상 정치냉소에 길들여진 가난한 사람과 젊은 사람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현재의 선거제도는 잘못돼 있다. 4년간의 국회의원 활동을 잘하지 못하는 정치인에 대해 왜 낙선운동을 할 수 없는가. 왜 선거운동기간 외에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가. 평상시에 알고 있는 사람을 선택할 수 있도록 정치가 대중의 삶 속으로 들어와야 한다. 정치는 ‘나 몰라라’ 했다고 해서 내 삶속에 피해가 오지 않는 것이 아니다.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에게 직접적 피해로 돌아온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에 무관심하도록 만드는 것이 보수언론과 보수 정치권의 목표이다. 정치에 더욱 관심을 갖지 않으면 현재의 질서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 정리=김명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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