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뿐인 인생, 네 길을 걸어라

▲ 서명숙(제주올레 이사장)
내 어릴 적 별명은 ‘간세달이(움직이기 싫어하는 게으름뱅이)’로 매일 늦게 일어나고 동작이 느려 학교에 지각하기가 일쑤였다. 기자의 꿈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키웠다. 그 꿈을 안고 고려대학교 교육학과에 입학해 대학 학보사인 고대신문에 들어가 열과 성을 다했다.
 
그러다 엄한 길에 빠졌다. 유신독재시절에 학생운동에 관여하다 1979년 봄 교생 실습차 고향에 왔다가 서울로 압송됐다. 어디인지 모를 곳에 끌려가 몇 달을 갇혀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로 다시 학교에 돌아와 졸업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암울한 시대였다.
 
마침 운동권 경력을 흠 잡지 않는 잡지사에 취직했다. 이후 1989년 새로 생긴 시사저널에 아줌마 신입 기자로 입사했다. 제일 먼저 출근하고 밤새서 기사 쓰는 기자가 됐다. 운동권 출신에 늦은 사회생활 시작으로 또래 기자들에 비해 출발이 늦었다. 내 인생에 있어서 발목을 잡았던 조건이 오히려 밑천이 됐다. 고 김근태, 이해찬 등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정치부 특종도 많이 했다. 남자들의 세계라 여겨지는 시사주간지에서 최초 여성 정치부장과 편집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런데 근무하던 ‘시사저널’이 부도나고 새로운 발행인이 오는 과정에서 마음고생이 심했다. 휴가원을 내고 고향으로 다시 왔다. 각박한 도시에서 뒤처지지 않고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다 보니 편집장도 됐지만 고장난 기계처럼 몸은 망가지고 영혼은 춥고 쓸쓸했다.
 
그때 어른인 제가, 마음속의 아이에게 ‘다시는 너를 불쌍하게 놔두지 않을게, 가끔은 하늘도 보고 노을도 지켜보게 해줄게’라고 약속했다. 서울로 돌아와 사표를 던진 후 산책을 시작했다. 다시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산책을 계속하다 스페인의 순례자의 길 산티아고로 떠날 결심을 했다. 40대 중반부터 건강이 나빠져 시작한 운동이 걷기였다. 처음에는 15분 걸었다. 그러다 재미를 느꼈다. 내가 나에게 관대해지고 건강해지고 마음이 넓어졌다.
 
일 중독자로 심신이 너덜너덜해질 때 평화와 휴식을 선사하고 인생 후반전에 대한 답을 찾고 싶어 산티아고를 걸었다. 열정이 없으면 조금만 변수가 생겨도 걸려 넘어지게 돼있다. ‘가지 말라는 뜻이야’, ‘하지 말라는 팔자야’라며 핑계를 댄다. 만약 그때 떠나지 않았다면 제주올레는 없었을 것이다. 산티아고 길은 아름다웠다. 서울서 살던 30여년은 아침 새벽 눈뜨자마자 전철에서 화장해가며 출근하고 초주검이 돼서 마지막 전철에 실려 왔다. 옥수수밭, 포도밭, 배낭 멘 사람들, 성당 풍경 ‘이것이 인간다운 삶이다, 평화’라고 생각했다.
 
산티아고에서 고향 제주를 떠올렸다. 그토록 감동적인 풍경이 20일 정도 지나니 지겨워졌다. 귤밭은 왜 없을까. 돌담, 수선화, 동백 그런 꽃들은 왜 없는 것이지 그런 생각만 들었다. 제주는 새만 200여종이다. 산티아고에는 새도 거의 없다. 나무도 올리브나 포도 등 한두 종류가 전부였다. 마침 700km 가까이 걸었을 때 마주친 한 여성 덕분에 ‘올레’를 만들게 됐다.
 
길에서 만난 영국 여성과 국경을 넘는 수다를 떨었다. 길이 인생의 학교라고, 현대인들은 다 환자라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여성은 돌아가면 무엇을 할 것이냐고 했다. 당신 나라야말로 이런 길이 시급하다고 하더라. 그 여성은 한국에 두 번 와 봤다고 했다. 술도 대화를 나누기 위해 마시는 게 아니라 ‘원샷’하며 시합하듯 마시고, 미친 듯이 한 방향으로 달려가는 것 같더란다. 고층아파트와 지하철도 이야기 했다. 그 말을 듣고서 갑자기 벼락을 맞은 느낌이었다.
 
제주올레는 곡선이 많다. 직선보다 곡선이 주는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이 있다. 길은 폭이 1m를 넘지 않는다. 넓게 만들면 나무를 베어내야 한다. 우리는 풀만 깎고, 나무는 잔가지만 쳐낸다. 자연을 잠깐 빌리는 것이다. 우리가 걷자고 우리보다 더 오래 살고 있었던 나무를 베어내는 것은 안 된다. 정부가 길을 낸다고 하면 토목공사를 동반한다. 길다운 길을 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예산만큼 쓰려고 한다.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돈을 쓴다.
 
부모님이 살던 시대와 여러분의 시대는 다르다. 단 한번 뿐인 인생을 부모에게, 선생에게 맡겨놓고 내 선택이 아니라고 원망해서는 안 된다. 누구를 원망하거나 누구에게 핑계 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 혼자의 힘에 의해서만 ‘나’를 결정하고 인도하고 성장시킬 도리밖에 없다. 의지하고 기댈 곳이라곤 어디에도 없으니 어차피 한번 당차게 살아가야만 하는 운명적 존재일 바엔, ‘나’밖에 믿을 것이 없다.
 
내가 나의 주인이 될 때 나는 나의 것이며, 내가 오직 나의 것만이 될 때 비록 나는 고독할지라도 신념을 가지고 삶의 가시덤불을 굳건히 헤쳐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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