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부찬(법학전문대학원 교수)
14세기 아라비아의 역사가인 이븐 할둔(Ibn khaldun)은 1375년부터 1379년까지 『성찰의 책』(Kitab al-Ibar)으로 약칭되고 있는 방대한 분량의 역사서를 집필하였다. 그 제1부는 문명과 사회의 근본적인 특징을 다루고 있으며, 『성찰의 책』 전체의 ‘서문’과 ‘서론’ 그리고 제1부를 합쳐서 『무캇디마』(Muqaddimah) 또는 『서설』(Prolegomena)이라고 부른다.
 
20세기의 위대한 역사가인 아놀드 토인비(Arnold Toynbee)는 『역사의 연구』(Study of History)에서 이 책에 대하여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인간이 만든 역사철학 가운데 가장 위대한 작품”이라고 극찬한 바 있다. 『무캇디마』에서 이븐 할둔은 인간사회의 흐름에도 자연법칙과 비슷하게 일정한 법칙이 작용하고 있다고 하면서 어느 민족이나 국가의 발생과 성장 그리고 몰락에는 그 사회구성원들을 공동의 목표 아래 결집시킬 수 있는 ‘집단의식’(group feeling or consciousness) 또는 ‘연대감’(solidarity)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집단의식’ 또는 ‘연대감’을 아라비아어 발음으로 ‘아싸비야’라고 하며 영어 알파벳으로 표기하면 ‘asabiyyah’ 또는 ‘assabiya’가 된다.
 
이븐 할둔에 따르면 어느 민족이나 국가 문명은 고양된 ‘아싸비야’를 바탕으로 융성하고 발전하지만 ‘아싸비야’가 해이해지면 쇠퇴기에 접어든다는 것이다. 그의 역사관은 시대적ㆍ공간적  배경으로 중세까지의 아랍 문명권에 대한 성찰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한때 유라시아에 걸쳐 대제국을 건설했던 몽골의 역사는 물론 20세기 싱가포르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어느 정도 보편적인 유효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0여 년 전 싱가포르를 방문했을 때, 관련 학자들이 16세기 이탈리아의 정치철학자인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가 『군주론』(Il principe)에서 지도자의 성공과 관련하여 ‘포르투나’(fortuna), ‘비르투’(virtu) 그리고 ‘네체시타’(necessita) 등 세 가지 요소를 거론한 것을 언급하면서, 싱가포르는 자연적인 조건이나 운수(運數)와 연결되는 ‘포르투나’의 요소가 매우 열악했었지만 지도자(李光耀수상)가 탁월한 시대정신(‘네체시타’)과 역량(‘비르투’)을 통해서 싱가포르인들의 ‘아싸비야’를 획기적으로 고양시켰기 때문에 스스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고 평가하고 있는 것을 확인한 바 있다.
 
언제부턴가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서로 힘을 모아 무슨 일을 도모하거나 집단의 결속이 필요한 경우, 또는 뜻한 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을 때 ‘아싸비야,’ ‘아싸비아(assabia)’ 또는 ‘아싸라비아(assarabia)’라고 외치는 경우가 많아졌다. 사실 ‘흥’이나 ‘신바람’ 때문에 외치는 이러한 소리가 이븐 할둔이 『무캇디마』에서 언급하고 있는 ‘아싸비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고 필자는 오래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최근 우리나라 가수 싸이(Psy)가 공전의 세계적 히트곡인 ‘강남스타일’의 후속곡 제목으로 ‘아싸라비아’를 채택하자, 이 단어가 ‘ass’와 ’arabia’(Arabia)가 합쳐진 형태로 되어 있어서 아라비아 사람들에 대한 경멸이나 비하의 의미를 담은 것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다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우리말 ‘아싸라비아’에 아라비아에 대한 경멸이나 비하의 뜻이 전혀 없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다만, ‘아싸라비아’의 영어 표기인 ‘assarabia’가 만에 하나 오해를 유발할 소지가 있다면 이를 흔히 함께 사용하는 ‘assabiya’로 바꾸어 보면 어떨까? 그러면 이 노래는 아라비아를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아라비아의 위대한 역사서인 『무캇디마』의 핵심어인 ‘아싸비야’를 한국인 가수 싸이가 대신 홍보해 주는 셈이 될 것이며, 아라비아인들로부터 비난이 아니라 오히려 감사와 칭송의 대상으로 반전(反轉)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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