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은 무속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신앙 내용을 가지고, 신과 인간을 중재하는 심방(巫堂)을 청하여 인간이 신에게 간접 기원하는 집단의 의식이다. 그러므로 굿을 통하여, 저승과 이승을 구분하는 민중의 생사관(生死觀)과 “천지는 어떻게 창조되었으며, ‘우주(宇宙)의 중심(中心)'은 어디인가?"라고 하는 우주관(宇宙觀), “인간을 보살피고 수호 관장하는 신들은 주로 어떤 신들이 있는가?"라고 하는 신관념 등을 살필 수 있다.
그밖에도 제주 사람들은 장례가 끝나면 ‘귀양풀이'를 하여 망자의 한을 풀어주고, 제사 때는 먼저 문신(門神)을 위한 ‘문전제'를 하며, 부엌에는 조왕신(부엌을 관장해주는 신)의 제물을 올린다.
그리고 대한(大寒) 5일 후부터 입춘(立春) 3일 전까지의 일주일 동안을 ‘신구간(新舊間)'이라 하는 풍속이 있는데, 신구간은 ‘신구세관(新舊歲官)이 갈리는 기간'이다. 세관은 ‘태세지신(太歲之神)', 즉 한 해의 인간사를 관장하는 신이다. 신구간은 묵은해의 신들은 임기를 마쳐 하늘로 올라가고, 새로 부임한 신들이 지상에 내려오는 기간이다. 이때는 집안의 모든 일이 신의 권한에서 벗어나는 기간이기 때문에, 변소를 고치거나 집을 수리하거나, 이사를 하여도 재앙이 따르지 않는다고 믿는다. 이처럼 제주의 독특한 풍속이 되고있는 신구간도 집안의 신들, 이를테면 문전 조왕 칠성신 등이 없는 틈에 새해를 맞이하기 위하여 집안 단속을 하는 제주인 만이 지니고 있는 무속신앙과 관련되고 있는 것이다.
신구간이 끝나면, 입춘(立春)을 맞이하여 옛날에는 관민이 합동의 풍농굿을 벌였는데 이를 <입춘굿놀이>라 한다. 그리고 정월이 되면, 마을의 수호신에게 신년의 하례를 하고 오곡풍등(五穀豊登) 육축번성(六畜蕃盛)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을제가 마을마다 벌어진다. 여성들은 마을의 수호신을 모신 신당을 찾아가 심방을 데리고 당굿을 하였고, 남성들은 제관을 정하여 유교식 제사 형식으로서 이사제 또는 마을 포제를 하였다.
마을제가 끝나면, 집집마다 집안에서 모시는 조상들을 위한 가제(家祭)를 한다. 문신에게 사업의 번창과 가장의 안녕을 비는 문전제, 부엌의 신에게 집안 살림을 깔끔하게 처리하고 안주인의 부엌 살림을 보살펴 달라고 비는 조왕제, 그리고 고팡(庫房)의 신이며 부를 가져다주는 뱀신 ‘안칠성'과 뒷뜰에 모시는 곡물을 지켜주는 뱀신(蛇神) 밧칠성에게 집안에 부를 일으켜 달라고 비는 칠성제, 생업수호신을 위한 ‘용왕제', ‘산신제', ‘불미코(冶匠祭)', ‘칠원성군제(七元星君祭)' 등 집안의 가신신앙은 다양한 형태의 작은굿으로 치러진다.
이와 같이 제주도 무속신앙의 특징을 굿을 통해 살펴보면, 첫째 제주 사람들은 제주도가 ‘우주의 중심'이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큰굿에서 신을 제장에 모시는 <초감제>는 굿하는 시간과 장소를 신에게 아뢰는 대목인데, 여기서 굿판은 우주의 중심이고, 굿하는 시간은 원초적인 시간이다. 이는 무속신앙을 통하여 탐라는 독립국가라는 자각과, 본토의 변방이 아니라 세계의 중심이라는 탐라인의 세계관 우주관을 강하고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제주도는 1만 8천 신들의 고향이라는 것이다. 제주도의 민간신앙은 다신론적 특징을 지닌다. 신들은 하늘에도 땅에도 있다. 사람 사는 세상에 사람과 함께 살고 있는 마을의 수호신과 집안의 수호신들, 저마다 다른 역할과 기능을 가지고 인간을 보살펴주고, 제주 사람들은 굿을 통하여 하늘의 신과 땅의 신들을 불러들여 신들과 더불어 춤을 추고 즐기며, 신인동락(神人同樂)하면서 풍농을 기원하고 집안의 안녕을 보장받는다.
셋째, 제주도의 무속 신앙 체계 속에는 다양한 형태의 민간신앙을 내포하고 있다. 무속에 바탕을 둔 신앙으로는 문신(門神) 신앙, 조왕신 신앙, 칠성 신앙, 도깨비 신앙, 사신(蛇神) 신앙, 당신앙, 기자신앙, 미륵신앙, 풍수신앙, 해신신앙, 산신신앙, 풍신신앙, 일월(조상신)신앙 등이 있고, 무속을 발전시켜 교단을 이루고 있는 신흥종교로서 불교 계통의 ‘타불교'나 도교 계통의 ‘천지대안교'에서 침술과 찬물로 생수 생식하는 물법신앙 등이 있다.
넷째, 제주 사람의 생사관, 저승관을 보여준다. 굿이란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 신과 인간을 푸근하게 끌어안고, 저승의 맑고 공정한 법으로 이승 세계를 다스리고 정화(淨化)하는 의식(儀式)이다. 굿을 통하여 사람들은 인간계의 모순과 무질서를 바로잡는 기회를 얻게 된다. 신에 대한 믿음에서 병을 고치고 부정과 죽음을 물리치는 것이다. 굿을 통하여 저승세계와 이승세계는 다리가 놓이게 되고, 눈에 보이는 화려한 굿판과 눈에 보이지 않는 신비로운 신의 세계가 동시에 펼쳐진다. 굿은 이렇게 제주 사람들의 살아온 시간과 공간, 이상과 현실을 동시에 보여주는 정신문화다.
다섯째, 제주의 굿은 제주 사람의 미의식과 공동체 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제주 정신의 토대는 제주 사람들의 역사의 체험, 산과 바당에서의 생산 활동, 그리고 삶의 고통을 극복해 온 비판의 정서를 통하여 완성된 공동체 의식이다. 그리고 진정한 공동체의식은 조상을 모시는 제사(祭祀), 마을을 본향당신(堂神)을 중심으로 한 당신앙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이는 마을 소집단의 사회조직이 생산공동체, 제사공동체, 굿공동체의 복합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문무병(제주전통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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