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용준(영어영문학과 교수)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그 이름! 그러나 추사체, 세한도 정도로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정의 달 5월에 추사를 갑자기 떠올리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이다.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에 가면 추사유배지가 있다. 추사가 55세의 나이에 제주로 유배를 와서 근 10년 세월을 보냈던 곳이다. 지금은 추사유배지가 기념관으로 다시 태어나서 이곳을 찾는 많은 도내외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그곳에 가면 제주대학교 스토리텔링학과 양진건 교수가 지식경제부와 한국산업기술진흥원, 제주특별자치도, 제주대학교로부터 지원을 받아 조성하고 추사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추사유배길이 세 개의 코스로 조성되어 있다.
 
제1코스는 ‘집념의 길’이라는 코스로 추사가 제주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완성한 불후의 명작 추사체와 세한도(국보 제180호)를 떠올리게 하는 코스라 생각한다. 물론 나는 역사학자이거나 국문학자가 아니어서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5월은 가정의 달로 스승의 날(15일)이 있는데 ‘집념의 길’에 서서 세한도가 탄생한 배경을 생각해 보았다. 추사가 제주로 유배를 오게 되자 그를 따르던 수많은 제자들이 그의 곁을 떠나지만 오직 역관의 신분이었던 이상적이라는 제자는 머나먼 제주로 유배를 떠난 스승님인 ‘추사 김정희’를 위해서 한양에서 많은 도움을 드리면서 존경심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제자가 너무나 고마운 추사는 세한도를 그려 사랑하는 제자 이상적에게 주었다. 세한도에는 추사와 그의 제자 이상적의 사랑과 존경심이 스며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柏之後彫) :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드는 것을 안다”(공자의 논어에 나오는 말) 오늘날 특히 5월 스승의 날에 생각해 볼 일이다. 그리고 추사체를 완성하기 위한 추사의 집념과 노력을 떠올리게 되었다. 열 개의 벼루와 천 자루의 붓을 다 닳도록 쓰고 또 쓰고 해서 완성된 작품 [칠십년마천십연독진천호(七十年磨穿十硏禿盡千毫)]가 바로 추사체라는 것이다.
 
이를 생각해 보면 오늘날 우리가 초등학교 3학년부터 아니 어쩌면 유치원에서부터 시작하는 영어에 빗대어 말한다면 10권의 영한(한영, 영영)사전과 천 자루 아니 만 자루의 펜을 다 닳도록 공부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나는 영어영문학과 교수로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이 이야기로 첫 강의를 시작하면서 자신과 진로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제2코스인 ‘인연의 길’에서 다시 5월을 생각해 보았다. 추사가 머나먼 제주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사랑하는 아내에게 보냈던 편지를 보면 5월 가정의 달로 부부의 날(21일)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심지어 추사는 사랑하는 아내가 돌아갔는데도 그것을 모르고 편지를 보냈다는 이야기와 조선시대 사대부이지만 아내에게는 한글로 편지를 쓸 정도로 부부애가 남달랐던 것 같다. 오늘날 우리 젊은 세대 및 기성세대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분명히 있다.
 
5월 가정의 달에 생각해 볼 일이다. 그리고 차를 좋아했고 수선화를 좋아했던 추사에게는 초의선사라는 벗이 있었다. 신분이 달랐지만 그들의 우정은 돈독했던 것이 확실하다. 육지에서 추사가 유배와 있는 제주로 벗을 보러 왔던 초의선사나 그를 맞아 정성이 가득한 차를 다리고 서로 마시던 모습은 친구간의 따뜻한 우애라 아니할 수 없다. 이 또한 5월 청소년의 달에 떠올려 볼 일이다. 그리고 마지막 제3코스 ‘사색의 길’에서 추사의 흔적을 떠올리며[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5월 가정의 달에 혼자서 아니면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걸으면서 잠시 사색에 잠겨보는 것도 뜻 깊은 일이 아닌가 한다.
 
이 계절의 여왕, 가정의 달 5월에 추사유배길을 걸으면서 사제간의 정과 사랑, 부부간의 사랑, 친구간의 우정을 떠올려 보는 것도 뜻 깊은 일이라 생각한다. 추사유배길에서 5월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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