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꼴이 아주 비참하게 돌아가고 있다. 중부 내륙지방에 내린 백년만의 폭설로 만 하루 동안 국가의 대동맥이라 할만한 경부고속도로가 마비되었다. 국회는 56년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시키는 탄핵안을 의결했다. 검찰은 ‘경계인’ 송두율 교수에게 15년의 실형을 구형했다 .

친척 결혼식에 참석할 하객, 입사 시험 면접을 보러갈 수험생, 인천항에 선적을 해야 할 화물 트럭의 기사들이 설원으로 변한 암흑의 도로 위에서 발만 동동 구른 채, 주린 배를 움켜쥐고 나라를 원망했다. 지난 해 태풍 매미호가 급습할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재난을 예방하고 신속히 대응해야 할 국가방제 시스템은 올 스톱이었다. 굵은 눈발이 계속 퍼붓고 있는 데도 차량은 아무 통제 없이 도로에 밀려들었고 급기야 가도오도 못하는 수렁 속에 빠져버렸다. 이래서야 어떻게 국민들이 두 다리 뻗고 편히 잠들 수 있겠는가.

이런 와중에 대한민국 국회에서는 두 야당이 담합해 여당에 선거지지 발언을 한 대통령의 탄핵안을 의결했다. 대통령의 발언은 신중함을 결한 적절치 못한 발언이었다. 그렇다고 하여 기자회견석상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며 여당에 대한 립서비스 차원으로 한 말이 대통령의 직무와 관련해 국기를 뒤흔들만한 심각한 사안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따라서 탄핵소추의 요건을 충족시킬 수 없음은 자명하다. 그들이 대통령을 탄핵하면 국민들이 쌍수를 들어 화답할 줄 알았는가. 전면적인 총선용 정치공세로 밖에는 달리 볼 수 없는 그들의 ‘거사’는 명분도 실익도 없는 정치도박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민생 문제엔 아랑 곳 없고, 사사로운 이익에 쫓아 밥그릇을 늘리고, 선거구를 이리 떼다 저리 붙였다 하는 추태하며, 명백한 범법 행위자를 보호하기 위한 방탄국회를 열고, 구속되어 감옥에 갇힌 동료 의원에게 추잡한 동지애를 발휘해 합법적 ‘탈옥’을 결의한 낯두꺼운 야당의원들이 아닌가. 국민들로부터 탄핵을 받아도 열 번은 더 받아야 성에 찰 그들이 지금 누구를 탄핵하겠다고 의기투합했는가.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난에 국민들의 불안은 가중되고 있다. 주가가 폭락하고 국가의 대외신인도가 떨어지고 있는 불안한 정국을 보며, 그래도 역시 우리가 옳았다고 쾌재를 부르고 있을지 나는 그것이 자못 궁금하다.

탄핵 정국의 어수선함 속에서 우리의 공안검찰은 국보법이란 실정법의 칼날을 휘둘러 ‘경계인’ 송두율 교수에게 15년짜리 거물 간첩의 죄를 뒤집어 씌웠다. 문명사의 물줄기는 지금 탈냉전 세계화의 시대를 향해 도도히 흐르고 있다.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대세이다. 국가보안법은 냉전 시대에 남북의 극한적인 대치 상황 속에서 정통성이 없는 군부독재정권의 정권안보(국가안보가 아닌)를 위해 만들어진 구시대의 악법이다. 이 법이 악법인 이유는 이른바 정권안보에 조금이라도 위해가 된다고 보면 누구라도 이 법에 명시된 반국가단체 고무찬양, 잠입탈출, 회합통신 등의 죄목을 걸어 처벌할 수 있는 이현령 비현령 식의 법이기 때문이다. 민주사회에서 악법은 법적 규범의 정당성을 상실한다. 봉건사회의 신민이면 몰라도 민주사회의 시민이라면 당연히 악법에 저항해야 한다.

입법부와 사법부에서 자행된 이 작금의 사태는 문명국 세계시민들을 상대로 한 대한민국의 자해행위이다. 이 개명천지 문명 사회에서 결코 있을 수 없는 반시대적, 반민주적, 반통일적인 폭거 앞에 나는 망연자실한다. 요즘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간다는 게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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