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 정(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

수능시험이 끝나고 전공 지원서에 ‘한국어학과’를 적었을 때, 앞으로의 수많은 날들이 한국이란 나라와 이렇게 깊은 인연을 맺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한국 노래를 좋아하고 한국어 전공을 선택하여 한국의 땅을 밟게 된 모든 우연이 나의 필연적인 운명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제주도를 밟은 첫날을. 비가 많이 와서 비행기가 오래 지연되었다. 하지만 공항에 마중 나와 주신 선생님들이 열띤 얼굴로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고 오히려 우리를 위로해 주셨다. 2시간 전까지만 해도 귀에 익숙한 중국어가 맴돌고 있었는데 2시간 뒤에는 사방팔방에서 쏟아져 나오는 낯선 한국어가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과연 꿈인지 생신지. “정말 한국어 듣기 연습인 것 같아요!” 내가 불쑥 내던진 엉뚱한 말 때문에 선생님들이 모두 웃음꽃을 피우셨다. 나는 그제야 불현듯 상황을 파악하게 되었다. 여기가 바로 내가 그토록 바라던 한국이구나!
 
그 후에 이어진 날들은 마치 초콜릿 상자를 여는 것과 같았다. 어떤 맛일지는 모르지만 하나하나의 초콜릿은 너무나도 달콤하고 기대할 만했다. 한국 친구들과 함께 들은 첫 수업, 긴장으로 빨개진 얼굴로 서툰 한국어로 자기소개를 하였다. 처음 본 그들에게 나는 낯설었지만 그들의 눈빛은 분명 나에게 호의적이었다. 유학생회에서 주최한 한라산 등산 행사도 신나게 신청하였다. 등산에 처음 도전하는 나는 다리가 너무 아파서 2주 동안 대게처럼 다닐 수밖에 없었다. 참 재미있기도 고통이기도 한 경험이다.
 
그러나 시간이 빨리 달리고 진정한 고비가 다가왔다. 우선 언어가 아직 능숙하지 않아서 강의 들을 때 몹시 힘들었다. 교수님의 말투와 칠판 위에 갈겨쓴 글씨가 나에게 도저히 풀기 힘든 미스터리 같았다. 수업이 끝나고 한국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도 같은 이유로 뒷걸음치곤 했다. 이렇게 방과 후 매일 답답한 마음으로 기숙사로 향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힘들었던 점이 있었다. 고향을 떠나 먼 곳으로 간 사람에게 향수란 가장 큰 고비인 듯 내가 처음으로 부모님 곁에서 벗어난 흥분함을 누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외로움이 불현듯 찾아왔다. 마치 하늘에서 날리는 연처럼 몸이 자유롭지만 마음이 보이지 않은 선에 달려 있는 것이다. 아파도 의사 선생님과 의사소통이 안 될까 봐 병원에 안 가고 혼자 기숙사에 누워 있을 때, 열심히 일하고도 아르바이트 비를 제대로 받지 못했을 때, 전파를 탄 부모님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올 때 참고 참았던 울음이 터졌다. 그때 또 한 번 자신이 지금 사랑하는 부모님 곁에 없고 낯선 나라에 있는 사실을 깨달았다. 맨 처음의 설렘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오직 외로움과 무서움만이 남있다. 언제나 친구들에게 한국이 얼마나 좋은지 자랑하던 나는 이번에 친구들의 부럽다는 말 앞에선 침묵하게 됐다.
 
아마 이때부터 나는 더 이상 방관자가 아닌 게임의 참가자가 되었던 것 같다. 한국이란 나라가 처음으로 입체적으로 눈앞에 드러났다.  내게 보이지 않았던 외로움과 힘겨움이 가득 채워졌다. 하지만 참가자로서의 나도 오기가 생겼다. 최선을 다하며 이 낯설고도 익숙한 땅에서 뭔가를 남기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겼다. 이를 악물고 견뎌내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그런 다짐 후 4년을 넘겼다. 신기한 것은 내가 안 된다고 싶을 때마다 기적이 일어난 듯 매번 위기를 무사히 넘겼다는 점이다. 나도 모르게 식당에 가면 일인분만 시키고, 쓰레기를 버릴 때는 분리수거를 먼저 하고, 술자리에서는 상대방 잔에 술을 따라주면서 절로 ‘건배’를 외치고…. 언어의 장벽, 문화의 차이 등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자 한국 친구들과 사귐에서 그렇게 견디기 힘든 것이 아니었다.
 
어렴풋하게 한국에 와서 보냈던 첫 번째 추석날이 기억난다. 혼자 기숙사에서 라면을 먹다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윤기가 눈시울을 붉어지게 만든 그 장면. 잠시 화면을 돌려 다른 장면도 떠올린다. 작년에 아르바이트로 인해 난생 처음 외국에서 보내야 했던 설날 밤, 아는 한국 언니가 내가 좋은 케이크를 들고 찾아와서, 웃으면서 같이 제주의 바다를 보러 드라이브하자고 한 그날 밤, 함박눈이 폭폭 쏟아지는 시간 속에서, 신기하게도 나는 따뜻함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 나는 이제 방관자도 참가자도 아니다. 한국은 더 이상 초콜릿 담은 상자처럼  달콤함만 주는 낙원이 아니요, 가족과 친구들과 떨어지게 만든 외로운 객지도 또한 아니다. 어느덧 한국은 나의 두 번째 고향이 되었다. 그 길고 짧은 1400일의 날들은 분식집에서 자연스럽게 외치는 ‘김떡순’과, 버스에서 내릴 때 기사 아저씨에게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라 말하는 인사, 그리고 입장권을 구입할 때 당당하게 던지는 ‘도민 할인 없어요?’라는 질문으로, 하나하나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머릿속에 새겨진다.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친절한 한국 사람들에게, 그리고 나를  성숙하게 만들어 준 나의 유학생활에게. 갈 길이 아직 멀지만, 이 길고 짧은 한국 유학생활은 나의 나약한 어깨에 힘을 더해주며 나를 더 멀리 갈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나는 이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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