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승훈(라온그룹 홍보실장, 경영학과 83학번)

1983년 5월 어느 저녁으로 기억한다. 당시 제주대 사회과학대 중강당 위 제대신문 편집국(현재는 멀티미디어실). 이곳 편집국 중앙 칠판에는 ‘수습기자는 자기 몫을, 기자는 모범을, 부장은 확인을, 편집장은 책임을’이라는 글이 큼지막하게 쓰여 있고, 책상 위에는 1.8리터짜리 한일소주 됫병과 김치, 먹다 만 라면…, 그리고 제주대신문 몇몇 선ㆍ후배들이 모여 지역사회문제와 관련하여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었다. 당시 나는 학교 방송국 수습국원이었으며, 내가 처음 본 제주대신문 모습으로 기억한다.
 
80년대 대학은 학생들이 민주화 투쟁과 급격한 학사 정책의 변화로 몸살을 앓던 시기였다. 대학신문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학신문의 가장 큰 고민은 민주화였고, 대학신문 특성상 학술적인 성격이 강조됐다.
 
사회변혁을 주장하는 기사가 곧잘 등장했고, 청년문화운동을 비롯해 당시 진보적 성향의 대학문화를 조명하기도 했다. 학내언론이자 대안언론으로서 시대를 고민하는 치열함과 가슴앓이는 학생운동이 잦아 든 1990년대 중반까지 계속 이어진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교육방송국(JEBS)과 제주대신문은 경쟁관계이자 보완관계였다. 나는 방송국 PD 활동을 했기 때문에 취재현장에서 기자들과 직접 부딪히는 일은 없었지만, 양재식(한진중공업 부장, 사회교육), 정찬식(제주도체육회 운영과장, 영문), 김정희(제주대 교수, 경영), 김동윤(제주대 교수, 국문) 등의 동기들이 있어 부담 없이 드나들던 곳이었다.
 
학창시절 나는 제주대신문을 즐겨봤다. 지금 생각해보면, 투박한 감도 없지 않았지만, 순수와 열정, 정의감은 매우 충만했던 것 같다. 선ㆍ후배간의 정도 무척 돈독했다. 결국 신문사나 방송국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었고, 이런 만남을 통해 다양한 생각과 사상이 자유롭게 소통되는 따뜻한 공동체의 장이었다.
 
당시 신문사 기자들은 수당이 나오면, 제주시민회관 인근 태원반점이나, 남문통 한짓골 인근 주점, 칠성통 아주반점 앞 객주촌 등지에서 소주를 기울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개 술과 밥을 동시에 해결했다. 당시 5000원이면 3~4명이 술과 안주로 거나해질 수 있었다. 이곳에선 입영회식이 곧잘 마련됐다. 예나 지금이나 입대는 대한민국 남자라면 꼭 거쳐야 할 인생 최대의 관문 중 하나다. 그때 불렀던 입영전야(최백호)는 이후 입영열차 안에서(김민우) 이등병의 편지(김광석)로 바뀌었다.
 
난 대학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후배들에게 종이신문 보기를 권한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디지털매체가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지만, 신문은 방송이 가질 수 없는 장점이 있다.
 
우선, 신문에는 ‘정보’뿐만 아니라 다양한 생각이나 칼럼, 사설이 있다. 다른 사람의 의견과 주장을 보면서, 자신의 입장을 보완하거나 수정할 수 있다. 또한 사설이나 칼럼은 지금 회자되고 있는 사건들이 어떤 흐름을 타고 화제가 되었나를 보여준다. 어떤 사안과 맞물려 화제가 되는지를 풀어 설명해주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도 깊이 있게 다듬을 수 있다.
 
최근 들어보니, 대학신문 지원자가 줄어드는 추세란다. 인력문제에 대안이라면 상근 기자에게 장학금을 집중하고 나머지 콘텐츠는 구성원 공동체를 통해 조달하는 객원 혹은 프리랜서 제도를 적극 모색하는 것도 방법일 테다.
 
대학 4학년 2학기 때 잠시 서울에 있는 모 광고대행사에서 카피라이터 일을 했던 나는 이듬해 1월 제주신문 수습기자 시험을 치렀다. 당시 제주도내에는 일간지로는 제주신문이 유일했다. 물론 신문사를 지원하게 된 배경에는 제주대신문 선배, 동기들의 영향도 컸다, 신문과의 인연은 이후 17년 간 이어졌다. 제주신문과 제민일보, 그리고 도내 첫 인터넷신문인 제주투데이 창업에 참여하였다.
 
지금은 레저개발업체에서 홍보와 마케팅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생활의 많은 부분을 신문과 했고, 아직도 내 삶의 자양분이 되고 있다. 그 첫 인연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제주대신문이다.
 
글을 쓰다 보니, 문득 제주대신문 동기들이 떠오른다. 무척 보고 싶다. 지금 사는 모습이야 모두 다르겠지만, 같이했던 경험과 추억은 결코 강의실 안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이었기에 소중했고,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 일게다.

저작권자 © 제주대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