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한 장면. 극중 주인공 귀도가 탈출을 시도하다 독일군에게 들켜 끌려가는 과정에서 궤짝에 숨은 아들에게 아무렇지 않다는 듯 윙크를 해보이고 있다.

인생에 대한 고민은 인류에게 끊임없이 던져지는 근원적인 물음이다. 지금 내 삶은 행복할까, 나는 지금 올바른 인생을 살고 있을까, 진정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 물음은 끝이 없고, 거기에 대한 해답을 찾는 시도 또한 좀체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모두에게 수긍될 수 있는 정답으로써의 인생이란 사실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크든 작든 파동을 일으키는 어떤 삶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삶을 산 사람의 인생을 ‘아름답다’고 말한다. 1997년 개봉한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감독 로베르토 베니니)는 제목 그대로 아름다운 인생을 산 어느 한 인간의 이야기다. 전쟁의 비극 속에서도 인간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이 영화는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깊고 진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영화의 배경은 1930년대 말 극악한 파시즘이 당대를 지배하던 이탈리아에서 이뤄진다. 낙천적인 성격의 주인공 귀도(로베르토 베니니 역)는 초등학교 교사인 도라(니콜레타 브라시 역)를 보고 한눈에 반한다. 귀도의 유머러스하고 순수한 모습에 이끌린 도라는 정해진 약혼자가 있음에도 마침내 귀도와 함께 마을을 도망쳐 아들 조슈아를 얻는다.
 
그러나 나치가 이탈리아를 점령하면서, 유태인이었던 귀도와 죠수아는 강제로 수용소에 끌려오게 된다. 도라는 유태인이 아님에도 자원하여 남편과 아들의 뒤를 따른다. 수용소에 도착한 순간부터, 귀도는 조슈아에게 지금부터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재미있는 게임이라고 속인다. 조슈아는 귀도의 말을 사실로 믿고 아버지의 지시를 열심히 따른다. 귀도는 고된 강제 부역 속에서 지쳐가면서도 아들을 위해 끝까지 게임에 임하는 것처럼 연기를 계속한다.
 
마침내 독일은 패망한다. 그러나 혼란한 틈을 타서 탈출을 시도하던 귀도는 독일군에게 탈출을 들키고 만다. 총부리가 등에 겨눠진 채 끌려가면서도, 궤짝 속에 숨어 자신을 지켜보는 아들을 위해 마지막까지 우스꽝스러운 걸음걸이를 선보이는 귀도. 이 장면에 이를 때 우리는 희극으로부터 극대화되는 비극 속에서 끝내 터져 나오는 눈물을 막아낼 도리가 없다. 그러나 우리의 뿌연 시야 속에서도 당사자인 귀도는 여전히 유쾌하고 씩씩하기만 하다. 아들이, 아내가 무사히 잘 숨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을 향한 사랑은 본인의 죽음마저도 초연하게 만들고, 절망의 극단에서도 밝게 윙크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귀도의 인생은 비극이 아닌 희극이다. 마술처럼 조슈아에게 진짜 탱크를 선물하고, 마침내 사랑하는 가족이 이 ‘게임’의 상황에서 승리하게 만든, 눈물 나는 해학의 산물이다.
 
가치 있는 인생이 무엇인가를 논할 때, 사람마다 대답은 다를 수 있다. 누군가는 많은 부를 쌓아서 갖고 싶은 것을 쉽게 얻는 삶을, 또 누군가는 사회를 향한 확고한 신념하에 가진 것을 아낌없이 기여하는 삶을 인생 최고의 가치로 삼을지 모른다. 절대적인 것은 없다. 어떤 삶이 가장 가치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그 사람에게 있어 가장 가치 있는 삶이리라.
 
그럼에도, 우리의 머리가 아닌 가슴은 알고 있다. 귀도의 인생이 어떠했는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이전에, 자신보다 가족을 생각한 헌신과 그 바보같은 낙천성에, 이미 우리는 어떤 벅찬 감정 속에 놓이게 되는 것을. 여기에는 어떤 심오한 철학이나 거창한 신념 같은 것은 없다. 누군가의 아버지면서 또한 누군가의 남편인, 한 인간의 인생이 있을 뿐이다. 어느 누가 그의 인생을 아름답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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