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소설가

제주대학교는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ㆍ제주의소리와 함께 국제화 시민의식을 고취시키고 미래지향적 마인드를 키워주기 위해 대학생 아카데미를 마련했습니다. 국내의 명강사를 초청해 매주 화요일 오후에 열리는 대학생 아카데미는 오는 11월 26일까지 모두 10개의 강좌와 프레젠테이션 경연대회, 현장체험 등의 다채로운 행사로 마련됐습니다. 학생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자기계발서와 소설은 제목에서부터 큰 차이가 있다. 지난 2008년에 발간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아침형 인간’은 책이름만 봐도 그 의미가 분명하다. 하지만 이 ‘아침형 인간’이란 제목으로 소설이 나왔다면,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할까. 분명 우리가 생각했던 ‘아침형 인간’은 아닐 것이라고 판단된다. 소설은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파악하기가 어렵다. 소설은 자기계발서보다 훨씬 함축적인 뜻을 내포하며, 그 제목만 해도 더 많은 뜻을 생각하게 한다.
 
소설은 좋은 영향보다는 나쁜 영향을 미친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베르테르 효과’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문제아를 다룬 이야기인데 미국 청소년들이 가장 좋아하는 고전소설이 됐다. 나의 작품 역시 마찬가지다. 1995년에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로 등단했다. 이 소설은 동반자살을 계획하고 있는 주인공을 다루고 있다. ‘오빠가 돌아왔다’는 가출했던 아들이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를 때리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퀴즈쇼’의 주인공은 잉여인간으로 퀴즈 푸는 것밖에 할 일이 없다. 이처럼 본받을 게 없고 부도덕한 인간들을 그린 소설들이 만해문학상, 이상문학상, 문학동네상을 수상했다. 문학계는 이런 곳이다. 이상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면 잘했다고 상을 준다. ‘문학은 윤리적 판단이 정지된 땅’이라는 체코 소설가 밀란 쿤데라의 말이 새삼스럽지 않다.
 
인터넷에 무슨 기사가 올라오면 실시간으로 댓글을 달고 단죄하는 것이 요즘 사회다. 문학 바깥의 세상은 냉혹하다. 별것 아닌 실수도 용서받기 어렵다. 하지만 소설은 다르다. ‘안나 카레리나’의 주인공은 요즘으로 치면 장관 정도 되는 직책의 부인이다. 소설은 젊은 육군 장교와 바람이 나서 자식도 버리고 떠난다는 내용이다. 이게 신문 기사라면 말 그대로 큰일 날거다.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의 주인공은 70세가 된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늙어서 딸과 둘이 살고 있는데, 딸과 결혼을 약속한 남자로부터 딸을 구하기 위해 마지막 살인을 계획한다는 내용이다. 문학의 세계는 그보다 더 심한 일을 해도 욕하는 사람이 없다. 분명 바깥 세상과는 다른 논리가 적용된다.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쉽게 남에게 윤리적 판단을 내리지 않는 땅으로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소설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욕망, 현실화되기 어려운 욕망을 주인공들이 대신 겪는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는 동안은 노인이 이기길 바란다. 롤리타의 주인공인 변태조차도 이해하려는 마음을 갖게 된다. 소설만이 그런 세계를 지지한다. 교훈도 실용성도 없지만 정신이 쉴 곳을 제공한다. 이것이 우리가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소설을 읽을 때는 성공한 삶만이 의미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난다. 실패하거나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살아갈 가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은 대개 실패를 다룬다. 따라서 우리네 삶에 의미 있는 내러티브를 선사한다. ‘돈키호테’, ‘죄와벌’, ‘롤리타’ 같은 소설만 봐도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전 세계의 필독도서로 널리 읽히고 있다. 이런 책들이 인정받는 이유는 소설은 우리와 경쟁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나 성공을 꿈꾸며 경쟁하는 사회, 이렇다 할 무언가를 이루지 못해 나의 삶은 실패했다고 느끼는 순간은 정말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소설은 나보다도 매우 실패한 인물들에 대해 다룬다. 소설은 스펙을 쌓으라고 강요하지도 않고, 더 많은 것을 공부하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다른 세계관을 통해 지혜나 실패 같은 가치들을 말한다. 그것도 아주 성심 성의껏 그들의 행동하나와 심리하나하나까지도 낱낱이 의미 있게 알려주기 때문에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가 된다.
 
소설을 많이 읽다보면 자기 자신의 인생을 써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그런 과정을 통해 남을 이해하게 된다. 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이해를 가능하게 만드는 배경이 있기 마련이다. 소설이라는 건 자신의 인생을 참신한 방식으로 재구성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도 그렇게 된다. 이것이 진정한 소통이다.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은 이 내러티브의 욕구에서 시작된다. 좋은 글을 읽으면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또 나의 생각을 꾸려 세상에 전달하고 싶고 따라서 나만이 간직하고 있는 지금의 알 수 없는 내러티브가 타인에게도 인정받는 의미 있는 것이 되기를 바란다. 소설은 인생 그 자체다. 죽음이란 예정된 실패를 향해 가고 있는 인생을 위해 우리는 한권의 소설을 읽는다.

소설 속의 세계에서 비록 우울과 어둠, 희열을 맛볼지라도 소설을 읽음으로써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매력에 빠지게 된다. 개인이 가진 사회적 조건, 능력의 한계, 우연성 때문에 경험할 수 없는 다른 삶의 세계에 대한 간접적 경험과 철학적 성찰을 가능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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