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세상-케빈에대하여>

▲ 영화 ‘케빈에 대하여’ 포스터

영화 ‘케빈에 대하여(We Need to Talk about Kevin, 영국, 2011)’는 여행가로서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던 에바(탈다 스윈튼 역)와 그런 그녀를 탄생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괴롭게 만드는 아들 케빈(이즈라 밀러 역)에 관한 이야기다. 에바는 자신의 자유를 억압하는 케빈의 존재를 달갑지 않게 여기고, 그가 성장하면서도 그 마음을 완벽히 떨쳐내지 못한다. 그런데 케빈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마치 그녀의 마음을 간파라도 한 듯 에바를 증오하고 괴롭힌다. 그리고 그의 난폭한 반항 심리는 점점 파국으로 치달으며 에바의 삶을 지옥으로 이끈다.
 
영화를 보고 많은 사람들은 부모의 애정과 훈육이 자식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역설한다. 악한 인간을 만드는 근본 원인은 그 자신의 문제보다는 가장 가까운 가족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코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설명되기 힘든 점이 있다. 아무리 어머니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자식이 직관적으로 인식했다 해도 단지 그것으로 말미암아 살인까지 저지르는 이는 드물다. 이것을 단순히 부족한 모성에 의해 후천적으로 생겨난 ‘악’이라 보기에는 무리가 있으며, 케빈에게는 태생적으로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옳을 듯하다. 영화를 보는 우리들은 대다수가 ‘선’한 감정을 어느 정도 지니고 있기에, 이러한 절대악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므로 더 이상 우리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악을 우리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포용하려 애쓰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인정해야 한다. 인간세계는 이해할 수 있는 것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에바의 심리를 시각화한 ‘붉은 색’에는 그녀의 자유분방한 열정, 쾌락도 담겨 있지만, 그것과 상반되는 피, 악함, 고통 같은 것들이 양날의 검처럼 공존한다. 즉 인간의 감각과 감정은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에바의 강박에 가까운 모성(母性)이다. 그녀는 케빈의 온갖 악행에도 불구하고 아들이기 때문에 그런 그조차도 이해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짊어지고 산다. ‘아들이기 때문에.’ 에바에게 그 이상의 설명은 무의미하다. 아들의 악행을 대신 속죄하고 살면서, 처음으로 흔들리는 아들의 눈을 보고 그의 몸을 끌어안으면서, 그녀는 관습적으로 받아들이던 모성을 끝내는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이것은 단순한 모성애의 차원으로 귀결될 만한 것은 아닌 듯하다.
 
인간은 덧없는 존재이며, 아무리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하려 한들 무엇으로도 통쾌하게 설명될 수 없다. 이미 유한한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 자체가 설명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가 우리 삶을 지탱하는 근원은 아닐까. 에바가 앞으로도 평생을 감내해야 할 이 숙명은 그녀가 스스로 만들어낸 삶의 의미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지옥 같은 삶을 살면서도, 끝내 자신을 지옥으로 몰아간 아들의 손을 놓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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