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이란 한자로 면(面), 면구(面具), 가수(暇首), 가두(假頭), 가면(假面), 대면(大面, 代面) 등으로 표기한다. 우리말로는 탈, 탈바가지, 광대, 초라니로 불려져 왔으나 현재는 일반적으로 ‘탈’혹은 가면(假面)으로 통칭되고 있다.

  탈이라는 말은 가면을 뜻할 뿐만 아니라 ‘탈나다’의 말처럼 재앙이나 병을 말하기도 한다. 그 예로 음식을 잘못 먹어 배가 아플 때 ‘배탈’이 났다고 하듯이 무슨 일이건 잘못되면 ‘탈났다’ 라는 말로 표현한다. 즉 잘못된 재앙을 물리치는데 ‘탈’을 사용한다.

   우리와 유사하게 탈로서 병을 고치고, 죽은 자를 애도하기 위한 탈을 만들고, 물의 신(神), 불의 신(神), 전쟁의 신(神) 등 아시아 일부 지역에서도 탈로 만들어 사용해왔다. 뉴기니에서는 새 집을 짓을 때도 박공에 탈을 붙이고, 아프리카 어느 부족에서는 손님이 찾아 올 때 탈을 쓰고 맞이하기도 한다. 이는 재(災)와 액(厄)을 막기 위한 주술, 벽사의 의식들이다.

 

이렇듯 인간은 고대부터 인간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 막을 수 없는 재앙 혹은 두려움의 대상에 대항하기 위하여 탈을 만들어 사용해왔다. 또한 체계화된 종교가 전파되지 못한 곳일수록 탈은 더 오랫동안 신앙의 대상으로 의식의 도구로 사용되어왔다. 지금의 현대 문명사회에서 그 의미는 퇴색되었지만 흔적은 지금도 세계 도처에 남아있다.

  장례 행렬에 방상시(方相氏 탈)가 창과 방패를 들고 맨 앞에 지나간다. 신당에 탈을 모셔두고 무속인이 치성을 드린다. 궁중에서는 섣달그믐에 처용탈을 쓴 무용수가 처용무를 추었다. 이것은 근래까지 이어져 오던 벽사의식 혹은 민간 신앙의식이었으나 미신이라는 이유로 사라진 탈과 관련된 우리의 옛 모습들이다.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우리의 탈춤도 ‘전통문화 계승’ 이라는 의미가 아니라면 이 또한 흔히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의술과 현대과학이 느린 속도로 진전됐다 하더라도 지금도 얼마든지 ‘전통문화’라는 포장을 하지 않은 채 탈은 우리의 실생활과 함께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조선 중·후기 우리나라에 탈놀이가 흥했던 것은 당시 봉건제도 속에서 서민들의 해방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철저한 반상(班常) 관계 속에서 그나마 서민들이 가슴에 맺힌 한을 토할 수 있었던 장은 바로 탈춤판이었다. 외형적으로는 주술적 오락적 성격이 있었지만 내면적으로는 일정기간 탈을 쓰고, 내 얼굴을 감춘 채 평시에 쌓였던 불만이나 하고 싶었던 말들을 탈춤판에서는 내 뱉을 수 있는 서민들의 언로(言路)의 장이기도 했다.

  탈을 만들고 탈놀이를 하는 계층은 대체로 서민들이었다. 서민의 입장에서 탈을 만들고 서민의 입장에서 놀이를 하였기에 놀이에 등장하는 탈들도 지배계층 즉 양반이나 샌님, 도령은 언청이, 곰보, 코가 삐뚤어진 삐뚜루미, 홍백양반(홍백양반: 얼굴의 반쪽은 붉은색 또 반쪽은 흰색의 얼굴로 붉은 쪽은 홍씨가, 흰색은 백씨가 만들었다는, 탈놀이에서 두 아비의 한 자식을 말함) 등으로 만들어 나약하고 병들고 부도덕 한 존재로 비하했다.

  그러나 탈놀이의 주인공격인 말뚝이, 마부 등의 탈들은 탈도 크고, 힘이 센 당당한 존재로 표현해 놀이에서 지배층의 모순이나 부당함을 들추어내어 관객과 함께 즐기며 카타르시스를 유발시켰다. 이렇듯 탈과 탈춤은 서민의 입장에서 만들어지고 놀아왔기 때문에 지배계층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불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놀이하는 광대를 해(害)하면 재앙이 온다하여 탈놀이 기간 동안은 누구도 광대들에게 간섭을 하지 못했다. 더구나 경비를 부담해주고 후원하는 쪽은 지배계층으로서 이는 약자인 서민들의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어 계층간의 충돌을 피하고 생산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사회적 장치로도 볼 수 있다.

  이렇게 사용되어온 탈들은 일부는 놀이가 끝나면 태워 없애기도 하고 어떤 것은 계속 보관해오며 사용하기도 한다. 처음 만들어진 것을 계속 보관하며 사용했다. 대표적으로 하회탈을 들 수 있다.

  고려 중엽 약 12세기경에 신의 계시를 받은 허도령이 만들었다는 하회탈은 놀이의 도구 차원을 넘어 미학적으로도 탁월한 작품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양반탈은 가면미술의 극치라는 평까지 받고 있다. 하회탈은 얼굴의 골격과 근육의 움직임을 이용하여 사람의 실제 얼굴과는 전혀 다른 모양이나 우러나오는 표정은 각 신분의 특성과 매우 사실적으로 일치된다.

  ‘양반은 길을 가다가 소나기를 만나도 경망스럽게 뛰어 다니지 않는다’ ‘양반은 물에 빠져도 개헤엄은 안친다’ ‘양반걸음 팔자걸음’이라는 말처럼 여유와 체면을 중시했던 신분으로서 양반탈도 이 말들과 걸맞게 여유있게 웃는 표정을 짓고 있다. ‘부러질지언정 휘어질 수는 없다’는 옛 선비처럼 선비 탈은 두 눈을 부릅뜨고 노기를 띤 채 꼿꼿한 표정을 짓고 있다. ‘선비걸음 황새걸음’이라는 말도 성큼성큼 걷는 군자의 당당한 걸음걸이를 말함이다.

  양반의 종으로 등장하는 영악한 초랭이 탈은 옥다문 입에 불만이 가득하고 일그러진 얼굴에 바보처럼 웃고 있는 탈은 선비의 하인인 이매탈이다. 실눈 뜨고 능청스럽게 웃고 있는 중탈은 수도승이 아니라 놀이에서 여자를 탐하는 파계승으로 등장한다.

  이렇듯 하회탈은 아홉가지 모두가 놀이에서 주어진 신분의 성격에 걸맞은 자기다운 표정을 지니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탈들은 앞에 언급했듯이 지배계층의 탈들은 비하되어 대체로 답지 않게 만들어져 있다. 

  이러한 탈을 사용한 탈놀이는 우리 전통사회에서 계층간에 일어날지도 모를 반목과 충돌을 피할 수 있는 효과적인 윤활유 역할을 했다고 본다.

  현대사회에서도 문제가 있는 곳, 즉 탈이 난 곳에 그 내용을 풍자와 해학을 담아 탈춤화하여 허심탄회하게 풀어놓으면 풀리지 않을까? 탈의 의미를 통하여 선조들의 지혜를 다시금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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