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중연 지음『탐라의 사생활』도서출판 삶창 펴냄

간혹, 역사는 불안정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그 시대를 견뎌낼 수 있는 힘을 주곤 한다. 특히 전시대를 살던 인물들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시대의 문제에 대한 나름의 해결책을 가지게 된다. 이런 점에서 제주의 여인 김만덕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하나의 길을 제시해주는 인물이 될 수 있음에 틀림이 없다.
 
유년시절의 어려움을 극복해가며 조선 제일의 거상으로 성장하였고, 시대적 모순을 극복하였으며 나아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형으로서 하나의 신화화된 인물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 힘입어 최근까지 김만덕을 소재로 한 다양한 콘텐츠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김만덕 열풍은 최근 들어 다소 침체되어간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개인적으로 그 이유를 김만덕을 소재로 한 대부분의 작품에서 보이는 정형화된 패턴 때문이라 진단하곤 하는데, 이 시대 속 김만덕을 구성하는 신화가 점차 확고하게 굳어진 결과 이제 웬만한 독자들은 김만덕이란 단어만 들어도 그 작품이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예측가능해진 것이다.
 
이때 개인적으로 조중연의 『탐라의 사생활』을 접했을 때,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다른 김만덕 작품들과 달리 처음부터 예측할 수 없는 긴장감이 작품 전반을 구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와 현재를 오가며 작품 속 작중인물들이 제시하는 진실의 조각들을 우리는 하나하나 조심스레 다루어야 했다. 역사와 현재 사이에 벌어진 틈을 작가는 상상력을 통해 그 경계를 무너뜨리고자 노력했다.
 
작가는 소설의 시작에 앞서 “이 글은 소설이며, 소설로만 읽혀야 한다.”고 독자에게 당부한다. 나는 이 소설을 읽기 전, 누구든 그 당부를 무시해선 안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소설의 페이지를 넘길수록 역사적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작가의 상상력으로 구성된 플롯이 역사적 진실로 믿겨져버린 순간 우리는 순간 큰 충격에 빠지게 된다.
 
이쯤이면 소설의 시작 전, 일러두기의 작가의 말은 당부가 아닌 작가 스스로의 자신감이 아닐까.
 
소설은 한라산자락에 한 사내가 살해당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형민이란 인물은 그 사내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파헤쳐간다. 그리고 이 소설은 또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데 바로 김만덕의 이야기다. 이 소설에서 그려내는 김만덕은 상찬계의 결성, 조신선과의 인연, 제주도민 구휼, 양제해 사건의 전모 등 기존 김만덕 작품에서 볼 수 없던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이형민과 김만덕의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두 인물 모두 특정한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이형민은 한 사내의 죽음을, 김만덕은 상찬계의 존재를 밝혀내려 하며 그들은 진실을 감추려는 세력과 대립한다.
 
소설의 치밀한 구성에 독자는 분명 역사적 사실이라는 활시위를 문학이라는 과녁에 당기고자 할 것이다. 하지만 문학이 그 활시위의 과녁이 됨은 부당한 일이다. 왜냐면 문학, 특히 역사를 소재로 한 작품의 경우 작가의 상상력 개입은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여기엔 필연적으로 허구의 허용은 당연히 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허구가 역사적인 사실의 입장에서는 분명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독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된다면 허구를 허구가 아닌 것처럼 위장시킨 조중연 작가의 이야기꾼적 재능은 분명 대단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독자는 『탐라의 사생활』을 통해 이 소설이 가진 탄탄한 구성, 흡입력, 그리고 진실을 위장한 허구를 읽는 재미에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할애해도 좋을 것이라 추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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