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환자입니다. 양보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최근 ‘심장이 뛴다’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응급차 양보에 대한 시민의식이 화두가 되고 있다.
 
그 중 가장 화제가 되었던 방송편은 ‘남’을 도와주려다 한쪽 다리가 사이에 끼어 절단되어 응급후송 되던 이모씨다. 신체가 절단되었을 경우 복구를 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6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그 응급 수송차는 11km의 거리를 5시간 30분이나 걸려 도착하고 접합 수술은 실패했다. 이 시간은 응급 환자를 싣고 있는 응급차가 그 도로에 있던 일반 차와 별반 다를 것 없는 ‘그냥 차’가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 예능을 통해 보여지는 우리 시민들은 앞만 보는 삶을 살고 있었다. 자신의 가족이 그 응급차 안에 있을지 모르며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그 차 안에 있을지 모르는 그 상황에서 응급차의 앞을 가로 막고 있는 차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단지 ‘앞’만 보았다. 너무 열심히 ‘앞’으로만 가느라 ‘뒤’나 ‘옆’을 봐 응급 환자들을 도울 생각은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자신의 목적지만을 향하는 그 운전자들 사이에서 응급차는, 그리고 그 응급차 안에 있는 보호자와 응급환자는 1분이 1시간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나라의 시민의식 문제점이 더욱 더 화두가 되고 있는 점은 다른 나라의 응급 수송 시 동영상과의 다른 점 때문이다.
 
다른 나라의 경우, 사이렌 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차들은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갈라져 응급차가 빠르게 병원으로 갈 수 있는 길을 터주었다.
 
나는 우리나라와 응급 선진국의 차이가 ‘공동체 의식’의 유무라고 생각한다. 응급 선진국의 시민들은 위에서 거론했듯이 저 응급차 안에 있는 누군가가 자신의 가족이 될 수 있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더 신속하게 양보를 해주었을 거라 생각한다. 반면의 우리나라 시민들은 그렇지 못하다. 그 응급차 안에 있는 사람들과의 작을 수도, 클 수도 있는 연결고리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조금 더 나아가 보자. 외진 곳에 있는 주택가를 보면 응급차, 소방차가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도로의 폭이 좁거나, 좁은 도로인데도 불법주차가 되어있는 차들이 있어 응급차, 소방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높은 시민의식이 필요함과 동시에 질 높은 도로시설 재정비가 필요할 것이다.
 
우리나라 시민들이 계속 낮은 시민의식을 갖고 응급차, 소방차의 주행을 막는다면 그들은 결국 총을 자기 자신에게 겨누고 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언젠가는 느낄 것이다. 그 전에 자신의 시민의식을 고양 시켜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데 손을 얹는다면 얼마나 풍족한 나라가 될까.

우리 지역에서는 한시가 긴박한 응급상황에 아름다운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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