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제 문화에 학교 떠나기도
학내 퀴어 안전지대 없어
“퀴어는 당신 가까이 있다”

성소수자 인권의 달 6월 - 사라진 대학 퀴어를 찾아서

LOVE IS LOVE 어떤 모양과 형태를 한들 사랑은 사랑이다.
LOVE IS LOVE 어떤 모양과 형태를 한들 사랑은 사랑이다.

매년 6월은 성소수자 인권의 달(Pride Month)이다. 성소수자 자긍심 고취와 인식 개선 도모를 위해 글로벌 기업들은 ‘프라이드 에디션’을 출시하는 등의 행보를 보인다.  그런데 국내는 조용하기만 하다. 하물며 작은 사회인 대학에서 그 움직임을 찾기란 더욱 어렵다. 대학 퀴어(성소수자를 지칭하는 포괄적 단어)들에게 이는 여전히 이름만 거창한 기념일일 뿐이다.

퀴어들이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낼수록 혐오의 목소리는 커졌고, 그 혐오는 대학가까지 번지고 있다. 발 디딜 공간도 없는 대학에서 퀴어들이 어떻게 앞으로 걸어 나갈 수 있을까. <제주대신문>이 대학에서 지워져가는 퀴어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5월 25일 기자의 개인 번호로 인터뷰에 지원한다는 한 통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사라진 제대 퀴어를 찾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인터뷰 지원 모집 글을 올린 지 몇 시간 채 되지 않아서다. 인터뷰 진행 방식에 대해 의견을 묻는 기자에게 그는 선뜻 대면 인터뷰를 제안했다. 그렇게 제주시 모 카페에서 이재희(가명)씨를 만날 수 있었다.

재희씨는 카페 음악보다 백색 소음을 선호해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카페 구석에서 주위를 살피던 기자의 행동이 유난스럽게 느껴졌다. 그는 기자에게 인사를 건네며 이번 기획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제가 생각하는 제주대는 정말 보수적이거든요. 지인들 얘기도 들어보면…. 그래서 더 반갑고 감사하고 그러네요.”

재희씨는 중학교 3학년 무렵 성 지향성을 깨달았다. 평소 꿈을 잘 꾸지 않던 그였지만 하루는 동성 친구가 꿈에 등장했고, 그게 일종의 연애감정임을 인지했다. 그는 “생일이 아니고서야 친구한테 종이학 천 마리를 접어주진 않는다”며 애틋했던 당시를 추억했다.

2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부터 그는 이성에게도 끌림을 알았다. 하지만 그 사람의 성별에 매력을 느낀 것인지는 미지수였다. 그래서 재희씨는 본인을 범성애자로 판단하기로 했다. 이처럼 퀴어는 ‘별’ 게 아니었다. 성별을 따지지 않고 ‘사람’으로서 상대방을 사랑하게 되는 것만으로 이미 퀴어(범성애)다. 사고만 바꾸면 언제든지 퀴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8년 전 타 지역에서 제주로 넘어오며 도민이 된 재희씨는 유독 제주가 더 좁게 느껴졌다. 제주는 지역 특성상 중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는 얼굴들이 많아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형성하기 힘든 구조다. 그나마 익명이 보장되는 어플로 연락을 주고받거나 간혹 조심스레 만나는 게 전부다. 아웃팅(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에 의해 성 정체성이 드러나는 행위)의 위험도 간과할 수 없었다.

서울퀴어콜렉티브가 퀴어의 삶의 궤적을 화살표로 시각화한 데이터 <당신은 어떤 궤적을 그리고 계신가요?>(2020)를 살펴보면 지방에서 서울로 향하는 화살표가 가장 많은 것으로 확인된다. 사람이 많은 대도시의 경우 어플로 사람을 만나기도 수월하고 다양한 오프라인 행사에 참여할 기회도 주어진다. 조성된 환경이 지방에 비해 훨씬 퀴어 친화적이다. 적어도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데 그렇다.

재희씨는 퀴어 커뮤니티가 활성화하려면 카페, 책방, 클럽 등 성소수자들이 안전하게 모일 수 있는 장소가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면할 수 있는 ‘오프 장소’가 제주에는 부족한 것이다. 오프라인 모임은 단순히 만나는 행위를 넘어 퀴어의 사회적 연결감 구축에 의미를 둔다.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부재는 대학도 마찬가지다. 서울권 대학 내 비공식 성소수자 동아리들이 중앙동아리로 인정받으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는 한편, 제주대 퀴어 커뮤니티 퀴여움은 가인준 조차 받지 못하고 작년 해산했다. 그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대학에서 퀴어는 더 꼭꼭 숨을 수밖에 없다.

재희씨의 대학 친구들 중 몇 명은 성소수자를 배제하는 학내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학교를 떠났다. 의도치 않은 말과 행동들이 그들을 떠나게 했다. 퀴어들은 늘 공기처럼 학교를 떠돌았다. 분명 있지만 보이지 않는 존재다.

“면전에 대고 네가 성소수자라 불편하다거나 더럽다고 말하는 사람은 극히 적어요. 자잘한 것들이 모이는 일상적인 불편함이죠. 아무도 우리를 의식하고 있지 않다는 걸 퀴어들은 감당하고 살아가야 해요. 허무함이 커요. 성소수자로 겪는 스트레스는 함부로 표출할 수도 없고요.”

반면 온라인 대학 커뮤니티 속 혐오 표현은 과격해지는데 그에 대한 검열과 규제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제주대신문>이 ‘에브리타임’에 게시한 인터뷰 지원 모집글에도 성소수자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댓글이 쏟아졌다. 에브리타임과 관련해 작년 11월 인제대 성소수자공동체 IQ가 ‘성소수자 혐오 발언 규탄 및 대책마련 촉구 공동기자회견’을 개최한 바 있다.

재희씨는 “혐오는 상대가 만만할 때 난무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다”며 “내 옆의 소중한 사람이 소수자라면 절대 그렇게 말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혐오자에게 “퀴어가 당신 가까이에 있다”고, 퀴어들에게 “우리가 여기에 있다”고 당부했다.

재희씨는 퀴어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다면 계속 ‘기억’하길 바란다. “드러내지 않을 뿐 우리는 항상 있어요. 말하지 않으면 전달되지 않는 게 너무나도 많잖아요. 그래서 이렇게라도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었어요.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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