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도태되고 말초적 관심만 늘어나
자본주의적 과시는 ‘허영의 코스프레’

 김동현제주민예총 이사장국어국문학과 91학번
 김동현제주민예총 이사장국어국문학과 91학번

세상은 무도하고, 희망은 우리 곁에 없다. 우리의 발길은 끝내 절망으로 향하고 말 것인가. 한때 역사의 수레바퀴는 전진한다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을 신뢰하며, 함께의 힘으로 무도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아름다운 시절은 지나갔다. 남은 것은 비천한 욕망뿐이다. 차마 마주하고 싶지 않은 우리 시대의 밑바닥이다. 유명 배우의 마약복용과 운동선수의 스캔들이 연일 포털을 가득 메운다. 성관계를 했느니 마느니 하는 말초적인 관심이 여과 없이 유통된다. 법을 어겼으니 책임을 지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대중의 관능적 시선은 법적 형벌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씹고 뜯고 맛볼 먹잇감을 노리는 짐승의 시선이다. 마치 주인을 물어뜯겠다는 못된 심보를 가진 들짐승을 길들이기 위해 내던진 뼈다귀에 달려드는 형국이다. 보아야 할 진실은 사라지고 말초적 사실만이 가득하다. 

김포를 서울로 편입하겠다는 여당의 발표에 수도권은 난리다. 구리시도 메가 시티 바람에 들썩인다. 이러다 전 국토가 서울특별시가 될 판이다. 행정수도 이전이 ‘관습헌법 위반’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대로라면, 김포시의 서울시 편입은 관습헌법 상 타당한 판단인가. 준비도 명분도 없는 발표는 다가오는 총선을 겨냥한 것이다. 선거에서 이길 수만 있다면 욕망을 자극하는 일쯤은 아무렇지도 않다. 

집값이 오를 것이라고 부추기는 선동 정치다.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불쏘시개가 된다. 오늘의 욕망이 내일을 불태운다. 이번만이 아니다. 오래 전 ‘여러분 부자 되세요’라며 유명 여배우가 유혹처럼 말했던 때가 있었다. 어느 순간 우리 사회는 금기의 빗장을 열어 버렸다. 욕망을 좇는 일이 부끄러움이 아니라 삶의 치열함을 드러내는 징표가 되어 버렸다. 한때 유행처럼 번졌던 코인 투기나, 주식도 매 한가지다. 

김애란은 단편 ‘홈파티’에서 경제자본과 문화자본을 동시에 획득한 우리 시대 중산층의 속물 의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들만의 홈파티에서 소설 속 인물들은 “대출 상상력이나 금융 감수성”을 이야기하며 고아원 출신들의 명품 가방 구매를 비웃는다. 그것이 그들의 철없음이나 허영심이 아니라, “그나마 그게 가장 잘 가릴 수 있는 가난”이기 때문이라는 점을 매끈한 교양으로 무장한 중산층의 시선은 외면한다. ‘주식 시장에서 이익을 보는 사람이 칠 프로’ 정도라는 이들의 비웃음은 투자는 합리적 경제 행위가 아니라, 인맥과 정보가 좌우하는 ‘투기’라는 점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들의 미소는 속물성을 감추는 알리바이다. 봉사활동은 이타적 동기가 아니라 자기 위안의 합리화를 위한 수단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을 이해한다’는 말은 계급성과 속물 의식을 감추는 자기 위안이다. 

‘부자 되세요’라는 말은 합리적 투자와 경제행위로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중산층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악마의 속삭임이었다. 실질 임금만으로는 천정부지의 부동산 가격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노동자가 아니라 투자가가 되어야만 살 수 있다는 금융화의 이데올로기는 우리 스스로를 착취의 무한 경쟁으로 뛰어들게 했다. 다들 그렇게 사니 반성은 사치다. 

우리 시대의 가난은 더 이상 눈에 보이지 않는다. 잘 차린 유니폼과 명찰 뒤에 가난은 숨겨져 있다. 모두가 평등한 것처럼 보이지만 아무도 믿지 않는다. ‘플렉스’라는 말이 보여주듯 자본주의의 시각적 과시는 불신과 불안이 만들어낸 ‘허영의 코스프레’다. 이제 진실을 말하는 이들조차 없다. 믿고 싶은 사실만을 진실의 방패로 삼는다. 무지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명백한 증거처럼 여겨진다. 모두가 악인이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모두가 악인이 되어 버리는 시대, 과연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답은 보이지 않고, 전망은 쉽게 오지 않는다. 하지만 끝까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절망이 절망을 절망하지 않는, 악무한의 시대에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폐허야말로 혁명을 생산하는 힘이다. 묵은 풀이 썩어 문드러져야 새로운 풀씨가 자란다. 오늘 우리는 기꺼이 썩어가야 한다.

저작권자 © 제주대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