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단은 나카가미군에 위치한 류큐대학교를 방문했다. 류큐대학교는 오키나와 유일의 국립대이다. 우리는 류큐대학교에서 문화인류학과의 카미야 교수와 이케다 교수, 문화인류학과에 재학중인 나가미네 학생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들을 통해 오키나와 현지인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미군기지 당장 전면철수하긴 어려워”
“제주해군기지 문제, 오키나와서 배워라”

▲ 나카가미군에 위치한 류큐대학교는 23개 학과로 이뤄졌다. 류큐대학교는 제주대와 학술교류 협약을 맺고 있다.

미군기지는 서서히 없어져야

문화인류학과 카미야 토모야키 교수는 미군기지와 관련해 오키나와 인들이 생각하는 입장을 모두 설명해줬다. 오키나와의 평화를 위해 미군기지가 사라져야 한다는 입장과 지역경제를 위해 필요하다는 입장을 들려줬다.

카미야 교수는 “기지가 들어서야 한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오키나와 경제와 연관시키고 있다. 미군들이 오키나와에서 소비해 주는 것이 오키나와 경제의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은 미군기지가 서서히 없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오키나와는 미군의 섬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군들이 한 번에 철수하는 것은 센카쿠 열도 문제, 경제 문제 등으로 인해 영향이 크므로 바로 전면 철수하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빨리 기지가 없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는 분들도 있으나 이는 소수에 불과하다.”

카미야 교수는 오키나와의 지정학적 위치를 설명하면서 미군이 상주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1609년까지 오키나와는 류큐라는 하나의 나라였다. 일본의 침략으로 류큐 왕국은 무너지고 일본이 오키나와를 간섭했다. 그러나 메이지유신 이후 오키나와는 일본 땅이 됐다. 그 때는 서양국들이 동양으로 많이 오던 시점이었는데 이 때 오키나와는 일본을 통과하는 바닷길로 매우 중요했다.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이 일본을 공격하기 위해 오키나와를 공격한 이유도 이와 같다. 일본을 고립시켜 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서이다.”

카미야 교수는 이어 전쟁 이후 오키나와 인들이 생각하는 일본과 미국에 대해 언급했다.
 
“전쟁에 징병됐던 세대는 자신을 오키나와 사람이지 일본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 사람들은 전쟁이 끝난 후 오키나와로 돌아오면서 미국으로 인해 경제가 발전하면서 일본 본토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았다. 1960~1970년대에 태어난 세대는 오키나와가 일본으로 편입되면서 일본을 이겨야 되는 상대라고 봤다. 일본 본토 사람은 오키나와 사람을 무시했고 그로 인해 오키나와 사람들은 일본에 대해 반발심을 더 크게 가졌다. 세대는 일본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하고 있다. 일본 본토 사람도 오키나와 사람들에게 호감을 갖기 시작하면서 우리 세대에는 일본과 마찰이 없었다. 20대는 일본 자체에 대해 아무런 감정이 없다. 그냥 우리나라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오키나와 사람이 아는 미국인은 대부분 미군기지 내의 군인이 아니면 그 가족이다. 그러다 보니 미군기지가 없는 남부와 북부 사람은 미국 자체에 관심이 없다. 하지만 중부 지역 사람들은 미군기지가 있다 보니 영향이 크다. 어떤 주민은 미군으로 인해 장사가 잘 되니 호의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고 다른 사람은 미군이 일으키는 성범죄 등으로 인해 무섭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미국과 관련해서는 일본처럼 세대별로 다르게 보는 시선이 없는 것 같다.”
 
카미야 교수는 제주 해군기지와 관련해서는 오키나와 미군기지 사례를 들면서 해군기지를 반대한다면 완공되기 전에 반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오키나와의 경우에는 기지들이 들어선 지 오래 됐고 지역사회에 영향력이 크다. 그러다 보니 반대하는 사람들도 빨리 철수하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제주 해군기지는 아직 들어서지 않았다. 제주 해군기지가 건설된 이후에는 경제 등 다양한 이유로 없애기는 어려울 것 같다. 반대한다면 건설되기 직전에 철회시키는 것이 옳다고 본다.”

▲ 취재단은 류큐대학교에서 한국과 제주를 잘 아는 교수와 학생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왼쪽부터 카미야 토모야키 교수, 이케다 에이시 교수, 나가미네 마키코 학생.

대부분 학생 미군기지에 반대…
하지만 관심 크지 않아

한국에 유학한 적이 있는 나가미네 마키코(25)씨는 오키나와에 거주하고 있는 20대들이 생각하는 미군기지를 설명했다.
 
“미군기지와 관련해 오키나와 남부와 북부 지역에 사는 학생은 관심이 적고 기지와 밀접해 있는 중부지역 학생만 관심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지역을 구분할 필요없이 대부분의 학생은 미군기지를 반대하고 있다. 그 이유는 미군 범죄 관련 뉴스를 많이 접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반대는 치안과 관련된 부분이다. 다만 부모님이나 자기 주변에서 미군과 밀접한 일을 하는 학생들은 반대의 목소리를 잘 내지 않는다. 또 관심 있는 학생만 관심을 가질 뿐 입장 표명을 하지는 않는다. 다만 총학생회는 매년 행사를 개최하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오키나와는 평화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어

오키나와에서 평화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이케다 에이시 교수는 “오키나와의 관광은 처음에는 전쟁 희생자를 애도하고 사망자를 기리는 목적에서 평화운동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전적지나 평화기원자료관은 오키나와 전쟁을 통해 사망하신 모든 분들을 기리고 평화의 목적에 부합되는 장소를 만들고자하는 뜻에서 시작했다. 처음에는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을 찾고 자료를 모았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전적지가 관광지로 변하는 것에 대해서 큰 불만은 없는 것 같다. 대부분의 사망자가 일본인이었고 사망자와 이들 가족을 위해 만든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전적지를 단순한 관광지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애도하고 평화의 의미를 되새기는 데 더 중점적인 측면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케다 교수는 오키나와에서 평화활동을 통해 오키나와의 문제를 풀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평화 활동을 하는 것은 오키나와가 평화를 상징하는 곳이 됐으면 하기 때문이다. 오키나와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됐지만 이 전쟁을 바탕으로 평화의 초석이 돼 모든 이들이 전쟁의 두려움을 알고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했으면 한다.”
 
4ㆍ3을 겪은 제주, 6ㆍ25전쟁을 겪은 한국에서 새겨들어야 할 조언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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