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청춘의 감옥 / - 시대와 사람, 삶에 대한 우리의 기록 이건범 지음

▲ 내 청춘의 감옥시대와 사람, 삶에 대한 우리의 기록 이건범 지음

 ‘좌우파사전’으로 2010년 출판문화상을 수상한 이건범은 시각장애 1급 판정을 받은 장애인이다. 그는 서울대 사회학과 83학번으로, 흔히 386세대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삶을 살았다. 대학시절에는 군부 독재에 저항하다가 두 번 투옥된 일이 있고,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교육사업에 뛰어들어 잘 나가는 벤처기업의 CEO가 되었다. 하지만 2006년초 수십억원의 부채를 안고 회사 문을 닫았다. 그리고 2010년에 13명의 공동집필자와 함께 우리 사회의 핵심적 쟁점을 좌파와 우파라는 두 개의 시선으로 정리해낸 ‘좌우파사전’을 내놓았다.
 그런 그가 최근 ‘내 청춘의 감옥-시대와 사람, 삶에 대한 우리의 기록’이라는 신간을 내 놓았다. 본래 이 책은 그가 페이스북에 올린 ‘징역’의 일상 기록에서 출발한다. 그가 개인적인 공간에 올려놓은 글을 징역 경험을 가진 주변의 운동권 선후배들이 한마디씩 댓글로 거들면서 본격 연재되었고, 결국에는 단행본으로 나왔다. 그는 이 글을 올린 페이스북의 아이디를 ‘thistiger(이건 범)’라고 할 정도로 해학이 넘치는 사람이다. 하지만 아무리 ‘몹쓸 사회가 감옥을 권한다면 명랑하게 즐겨 주리라!’고 마음을 먹었다고 해도, 그 몹쓸 사회와 감옥의 이야기를 ‘낄낄대면서’ 읽는 것은 점잖지 못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과거를 회상하면서 글을 쓴다는 것은 화자의 시선(視線)이라는 본질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화자는 으레 두 개의 관점으로 과거를 바라본다. 현재를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과거를 좀 더 지독하게 힘들었던 것으로 과장해서 기억한다. 이에 비해 현재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과거를 좀 더 행복했던 것으로 포장해서 추억한다. 물론 현재를 긍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과거를 좀 더 낙관적으로 추억하거나, 반대로 현재를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그러한 현재를 낳은 과거를 더욱 뼈아프게 반성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이유로 어떤 사람이 자신의 과거를 들추어내는 글을 읽노라면 상당히 부담스럽다. 특히 사회문제와 관련하여 치열하게 살았다는 사람의 회고록은 대개 영웅담 아니면 고백록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가 제시하는 대의명분이나 피해의식에 일정 부분 동의하지 않는 한에서는 몰입하기가 힘들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대하기 전에는 김지하 시인이 겹쳤다. 시인이 생명과 율려사상으로 전환하면서, 그를 뒤따르던 후배들은 ‘김지하가 변절했다’고 생각했다. 오죽하면 ‘아무래도 시인의 머리는 민주주의를 잊은 지 오래인 모양이다. 하여,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으로, 네 이름을 이렇게 지운다. 김지하여!’라는 패러디가 나왔겠느냐는 말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책에서는 과거의 미성숙했던 결정, 그에 따른 회한과 변명이 드러나 있지 않다. 오히려 굴곡진 삶을 살아왔던 작가가 회고하는 시대의 문제점을 찾으려고 해도 검색어조차 찾을 수 없는 젊은 세대들에게 유쾌하게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식의 위로 대신, 담담하면서도 해학적으로 자신의 청춘을 드러내 놓는다. 사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그가 그의 기억을 더듬어 ‘방황하는 건 아주 당연한 일이다’이라고 위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그랬다, 아니 더 그랬다’는 식의 위로가 언제나 순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보자. 70년대와 80년대의 청춘보다는 이 시대의 청춘이 더 아프다. 하지만 ‘그러니까 위로를 해줄게’라는 식으로는 문제해결이 되지 않는다. 차라리 이건범처럼 골계미(滑稽美)에 넘치는 작품 한 편을 쓰고, 그것을 읽게끔 하는 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한 마디 해주고 싶다. 우선 그가 던지는 웃음에 흠뻑 빠져 즐기라. 충분히 즐겼으면, 그 웃음 뒤의 현실을 직시하라. 그래서 어떤 문제의식을 발견했다면 참여하고 연대하라. 그게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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