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으로 살아가는 것일까! 사랑의 기쁨과 아픔을 통하여 얻는 지혜와 나도 모르게 찾아온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동식물 세계에서도 사랑을 통하여 자손을 퍼뜨리며 긴 역사를 만들어 왔고 우리들도 하늘이 맺어준 귀한 사랑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세상을 크게 발전시키며 살아가고 있다.나는 약 3년 전 제주대학교와 인연을 맺었다. 이젠 약속된 모든 임무를 마치고 떠나야 할 시간이다. 아름다운 제주대학교의 캠퍼스에서 내 생애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고 이젠 떠나야 할 시간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큰 꿈을 심어
“부르주아지는 자신들의 지배권을 얻은 곳에서는, 모든 봉건적, 가부장제적, 목가적 관계들을 파괴하였다. --- 사람과 사람 사이의 노골적인 이해관계, ‘현금 계산’ 이외에 아무런 끈도 남겨 놓지 않았다. 부르주아지는 신앙적 광신, 기사도적 열광, 속물적 감상 등의 성스러운 외경을 이기적 타산이라는 차디찬 얼음물 속에 집어넣어 버렸다. 부르주아지는 인격적 가치를 교환가치로 용해시켜 버렸으며, 문서로 보장된 혹은 정당하게 얻어진 수많은 자유들을 단 하나의 파렴치한 상업 자유로 바꾸어 놓았다.”칼 마르크스가 평생의 동지 프리드리히 엥겔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 모두가 피할 수 없는 것이 시간의 흐름이고, 나이 들어감일 것이다. 80대부터 90대에 이르는 고령의 환자들로 가득 찬 병실과 요양시설의 모습은 나에게,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현장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우리보다 앞서 고령사회를 경험하고 있는 일본의 경우를 살펴보자.일본 도쿄 신토미(Shintomi) 요양원에서는 로봇이 안내하는 운동 지침에 따라 많은 노인들이 둘러앉아 잘 알려진 동요를 박수치며 함께 노래를 따라 부르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고 한다. 아직은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우리는 지금 소통하
공평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고른 것을 말한다. 조세 공평주의라고 한다면, 조세부담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고르게 배분되는 것을 말한다. 모든 국민이 똑같은 금액을 내도록 하면 공평할까? 예를 들어, 누구나 세금을 매달 50만원씩 내도록 한다면 공평할까? 공평하지 않다. 세금을 부담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월 소득이 5천만원인 사람에게 50만원은 큰 부담이 아니다. 소득의 1%에 불과하다. 그러나 월 2백만원 받는 사람에게는 큰 부담이다. 소득의 25%나 된다.그렇다면 같은 비율로 과세하면 공평할까?
한반도의 긴장에 있어서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전 1968년 보다 더 긴박했던 때가 있었을까 싶다.1968년 1월 21일 북한의 124군 특수부대의 청와대 침투사건을 필두로 해서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미 해군 정보함 푸에블로호 나포사건 등등 1968년을 회고해 볼 때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으로까지 치닫지 않은 것이 놀라울 뿐이다. 아니 어쩌면 보이지 않는 평화의 손이 개입된 기적이 아니었을까 여겨질 정도이다.그런데 50년이 지난 2018년 오늘의 이 시점에서의 한반도는 어떠한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군사적 긴장지수를 자랑(
새로운 학기가 시작될 쯤 익숙한 메일들이 도착한다. 내가 가르치는 과목의 수강신청에 실패했는데 개강 후 사인을 해줄 수 있는지를 묻는 메일이다. 사전에 지정한 인원이 꽉 차서 수강신청을 못한 모양이다.메일을 받으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학생들이 보낸 메일을 읽으면서 생각이 왔다 갔다 하기도 한다. 어떤 메일은 부탁을 들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어떤 메일은 읽은 후 화가 나기도 한다. 이유는 설명하지 않더라도 대략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개강 후 또 하나의 풍경은 교수 연구실 앞 복도에 길게 늘어선 줄이다. 내가 속해있는 단과대학
#오겡끼데스까(お元氣ですか)지난 6일 오후 7시를 기준으로 제주시에는 41년 만에 가장 많은 눈이 내렸다. 닷새째 발효됐던 대설경보는 7일에 해제되었지만, 아라동 캠퍼스에 2주째 쌓인 눈은 그대로다. 첫사랑을 닮은 누군가가 “오겡끼데스까?”라고 안부를 물어도 아무렇지도 않을 만큼 말이다.그래서일까. 내내 누군가에게 안부를 묻고 전하는 “러브레터”를 쓰고 싶었다. “죽은 사람을 그리워하며 쓴 편지, 그리고 그에게서 온 답장. 이들을 연결하는 이 편지엔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요?” 개봉한 지 25년도 더 지난 영화를 읽어주는 나지막한
움베르토 에코가 1970년대 정도에 쓴 시사평론들을 모아서, 1993년에 조형준이 번역, 출판한 책의 제목이다. 원제목의 순서는 뒤집었다.기호학적 언어, 해체주의적 사고를 다시 심각하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다. 작년 11월 12일 광화문 촛불집회에 ‘혜성처럼’ 등장했다는 ‘장수풍뎅이연구회’ ‘깃발’이 그것이다. 그날은 마침 ‘민중총궐기’ 당일이었다고 한다. 이 깃발에 대한 이야기는 인터넷 공간에서 아직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민중총궐기’라는 그 어마어마한 구호 속에서, 그 흐름에 참여하면서도 벗어나려는 듯한 ‘장수풍뎅이들’. 순
필자는 세포나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를 토대로 연구를 진행하는 사람이다. 오랜 기간 연구를 진행하며 잊혀 지지 않는 몇 가지 장면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대학원생 시절에 경험한 것이다. 그날은 실험용 쥐의 태아 세포를 키우는 실험을 진행 중이었는데, 세포 배양 접시 속에 있는 여러 세포 중 어느 한 세포가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그것은 고요한 다른 세포들 사이에서 마치 숨을 쉬듯 콩닥이고 있는 점이 특이했는데, 바로 심장 조직을 이루는 세포였다. 마치 현미경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그 세포를 집중해서 바라보았다. 생명
10월 28일 제주도에서 퀴어축제가 열렸다. 여기에 강력하게 반대한 집단들이 있었다. 그들의 구호는 대충 이랬다. “제주의 ‘아름다운 미풍양속’에서 아들딸을 키우고 싶다.” “동성애 퀴어 집회를 허가한 제주 시청은 청소년 에이즈 확산의 원인이다.” “제주 정서와 성 윤리 붕괴하는 동성애 퀴어 집회를 반대한다.” 이들의 ‘혐오’ 감정의 밑바닥에는 두 가지 편견이 깔려 있다. 첫째는 동성애가 ‘비정상’이라는 것이다. ‘미풍양속’이라는 고색창연한 말은 스스로가 생각하는 ‘정상’이 아닌 것은 모조리 ‘비정상’의 범주에 몰아넣고 ‘악’의 낙
문학과 예술은 사람들에게 순간적인 재미나 즐거움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깊은 감동과 깨달음을 선물하기도 한다. 특히 어떤 영화들은 시사적 메시지도 적절히 던져줌으로써 일상에 지친 시민들에게 위로를 보낼 정도로 훌륭하다.시간이 지났지만 예전에 본 영화이야기를 해보자. 역대 관객수 1위인 2014년 과 7위인 2015년 . 둘 다 모두 훌륭한 배우와 감독 때문이기도 하겠거니와 어려웠던 시절, 온 몸과 마음을 바쳐 대의를 추구했던 인물 들을 감동적으로 묘사하였던 것이 큰 반향을 불러왔다. 의 안윤옥이 가상의 캐릭터면
100세 장수시대로 접어들었다지만, 우리의 무병장수를 위협하는 요인들은 오히려 증가한 듯하다. 해마다 봄가을이면 황사와 미세먼지가 우리의 호흡기를 괴롭히고 있으며, 가습기 살균제, 환경호르몬을 비롯한 각종 유해한 화학물질이 일상생활 속에서 부지불식간에 내 몸에 들어오고, 매일 먹는 달걀같은 식재료에서조차 건강에 치명적이라는 농약성분이 검출되어 먹거리마저 불안하기 짝이 없다.매일 가는 학교의 환경 또한 안전치만은 않다. 최근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방학동안 석면이 해체된 초·중등학교의 교실 등에서 석면성분이 검출되어 등교거부와 휴교사태
올해 필자가 소속된 대학의 가장 많이 달라진 모습은 회의가 다반사(茶飯事)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전에도 물론 회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회의가 많아지면서 현안에 대한 교수들의 관심과 참여가 지대해졌다. 학교 현안들에 대해 세세한 의견까지 수렴하다보니 식사하며 회의를 해야 하는 경우까지 생겼다. 회의를 거치며 연구와 교육, 다양한 사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더 많은 정보 공유의 목소리가 확대되고 있다. 시민윤리와 인성을 전공 주제의 하나로 삼는 필자로서 이러한 소통과 교류를 환영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촛불 정국 이후 세상이
내가 현재 거주하는 교직원아파트에서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 길은 길고 곧게 난 숲길이다. 글로 표현하면 느낌이 온전히 전달되지 않지만, 우리 학교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제대아파트 버스정류장에서 학교 쪽으로 이어지는 가로수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재작년 초가을, 처음 부임해온 날 그 길을 걸으며 설레었다. 하루 일과를 마친 밤에 숲길 모퉁이 정류장에서 버스 타고 장 보러 아랫마을 다녀오는 목가적인 장면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한 주 동안은 그랬다.첫 일요일, 마을로 내려가 볼 일을 보자 밤 9시가 넘었다. 정류장에 내렸더니 가
매년 5월만 되면 학과 제자와 졸업사진을 찍곤 했었다. 매해 그 수가 줄어들더니 금년에는 희망자가 한 명도 없어 아예 그런 이벤트 자체가 없어졌다. 여러 원인 중에 하나는 졸업예정자의 취업에 대한 불확실 때문이라고 한다. 대학 졸업장이 취업을 보장하지 못하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대학생들은 취업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시대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대학은 진리의 상아탑에서 취업교육양성소로 전락했다는 비판의 소리도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1990년대 시행된 ‘대학 자율화’ 정책으로 대학 정원은 꾸준히 증가했고, 대학을 졸업
지난 5월 10일 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는 문재인 대통령 취임을 축하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대학정책도 적폐청산의 과업에서 예외가 아니”라며 “성급한 재정투입보다 어디가 어떻게 잘못됐는지를 사려 깊게 살펴 근원적인 문제 해결에 나서 달라”고 문대통령에게 당부했다. 성명서에서 밝힌 바와 같이 지난 9년간의 정권이 추진해온 무모한 대학정책에 시달려온 대학들은 새 정부의 대학정책에 대해 관심과 기대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지난 정권들이 시행했었던 대학정책들은 막대한 재정과 인력을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을 갈등과 혼란으로 몰아넣었을
어떤 사람들은 우리사회를 규정짓는 기본이념인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특정한 이념을 덧씌워 정의한다는 것은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무식’의 소치다. 민주주의라는 개념에 대해 무지할 뿐만 아니라 ‘자유’의 의미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의견이 공론의 장에서 경쟁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가능한 정치적 힘과 경제적 힘으로부터 자유로운 토론을 통한 합의에 도달해야 한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생각에 귀 기울이고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는 실
학령인구가 줄며 대학은 입학 정원을 감축해야 하는 상황으로 받아 들이고 긴장하는 모습이다. 일면 교수대 학생수는 적을수록 충실한 대학교육이 가능하기에 좋을 것으로 입학생 감소는 오히려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현재의 교수대 학생 비율을 당연시 여기고 맞추어야만 하나싶다. 비용을 문제삼지만 교육에 대한 투자는 단기 이익보다 장기적 성과를 겨냥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대학은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하는 능력을 배양하는 교육을 하는 최적의 교육장임에도 효율성만을 추구했던 우리의 정서는 바뀔 조짐이 없어 보인다.유
지난 겨울은 그다지 춥지 않았던 것 같다. 실제 기온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가슴에서 느끼는 기온은 따스함을 넘어 뜨겁기까지 했다. 바로 촛불 때문이었다. 10월 말부터 불타오르기 시작한 촛불은 겨우내 주말마다 온누리를 밝히면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외쳤다. 그 조그만 촛불들은 어느새 1600만 물결이 되어 출렁거렸고 마침내 헌법을 무시한 불통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혁명을 이뤄냈다. 우리 현대사를 보면 4ㆍ19혁명, 5ㆍ18광주민주화운동, 6월항쟁 등 고비마다 국민들이 새 역사를 써왔지만 이번의 촛불혁명이야말로 가장 명예롭고 위
연합뉴스는 올해 2월 26일 뉴스에서 일본 교도통신을 인용하여 대만의 과거 국민당 정권이 원주민을 학살한 2ㆍ28 사건 당시 숨진 한국인 박순종(朴順宗)씨가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피해자로 인정받았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박씨의 딸로 현재 대만 신베이(新北)에 거주하는 박영심씨가 2ㆍ28 사건 기념기금회에 배상을 신청했다는 소식에 이어 2ㆍ28 사건 피해자 보상 인정을 담당하는 재단법인은 사망한 박씨를 피해자로 인정해 유족에게 600만 대만위안(한화 약 2억2천200만원)을 지급하도록 결정했다는 것이다.대만 2ㆍ28 사건의 외국인 희생